지난 21대 국회 시기인 2021년,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명의 의원은 「교육법」에 명기된 ‘홍익인간’ 이념을 ‘민주시민’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했다가 자진 철회한 바 있다. 가벼운 헤프닝 같지만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의원들의 역사의식을 드러낸 사례로 회자되곤 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단군이래 이어지는 우리나라 건국이념, 국시(國是)이고, 대종교인인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시기인 1949년 제정된 「교육법」에 교육이념으로 자리잡아 1997년에 제정된 「교육기본법」에도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로 명시돼 있다.
최근 소대봉 박사가 자신의 박사논문을 다듬어 내놓은 『홍인인간과 삼균주의의 미래』(선인)는 우리 고유의 홍익인간과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재조명하고 조소앙(1887~1958)의 삼균주의, ‘홍익정치론’을 살핌으로써 오늘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 고유의 사상을 ‘선도(仙道)’로 명명하고, 우리 건국이념 ‘홍익인간’을 “한국선도에서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으로 추구하는 최종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홍익인간은 ‘공생(共生)’을 핵심가치로 하고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뜻하는 ‘삼균주의’로 이어진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대해 학계 일각에서 ‘유교이념이 사상적 기반’이라는 주장이 나돌고 있는 점이다.
저자는 이책의 목차 2장 한국선도의 홍익인간사상과 홍익정치 전통, 3장 1910~1920년대 대종교의 성통·공완 실천과 홍익정치론의 토대 마련, 4장 1930~1940년대 대종교계선가들의 홍익정치론 모색과 전개, 5장 1930~1940년대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홍익정치론의 구체화, 6장 광복 이후 삼균주의의 계승과 발전 등에서 보듯 역사적 맥락을 살펴 이에 반박하고 있다.
특히 1910~1940년대 일제시기를 ‘대종교’를 중심축에 놓고 살피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유교나 서구사상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전통 신교를 되살린(重光) 대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구나 조소앙은 기본사상의 ‘체’(體)를 화랑에 두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고, 저자는 이를 ‘접화군생의 풍류’, 곧 고유의 선도사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종교가 홍익인간과 삼균주의를 이어주는 날줄이라면 씨줄은 정인보의 홍익인간 재조명과 안재홍의 신민주주의 주창을 꼽고 있다. 조소앙과 동시대인으로서 정인보, 안재홍 등 대종교에 뿌리를 둔 ‘홍익정치론자’들의 노력이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자양분을 공급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삼균주의는 ‘수민균평위 흥방보태평(首尾均平位 興邦保泰平)’, ‘(저울의) 머리와 꼬리 수평을 잘 잡으면 나라가 융성하고 태평성대를 보장받을 것’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고려사』 「김제위열전」에 실린 「신지비사(神誌祕詞)」의 문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는 삼경(三京)의 균형있는 운영으로 해석해 오던 것을 조소앙이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으로 해석하고 ‘삼균제도’로 지침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조소앙이 역사 연구에서 혁명의 무기로 찾아”낸 것이라는 평가다.
특히 조소앙이 기초한 1941년 임시정부의 「대한민국건국강령」은 ‘삼균제도’가 7회나 언급되는 등 ‘삼균제도’로 수미일관하고 있고, 이는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민주주의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로 이어지고 있다.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헌법의 핵심가치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인이 이 책을 접할 경우 일제 강점기라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공간에, 「신지비사」나 대종교와 성통공완(性通功完) 등 낯선 개념들까지 겹쳐 쉽게 책장을 넘기기는 어렵겠지만 오늘 우리의 좌표를 이해하는데 본질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알아간다는 깊은 울림이 있을 것이다.
특히 홍익인간의 역사 기점을 단군 이전의 환웅, 신시배달국으로 삼는다든가, 수행을 통한 깨달음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연결시킨 점, 삼균주의에서 정치·경제에 더해 ‘교육’의 균등을 특색으로 부각시킨 점, 무엇보다도 조소앙의 사상적 뿌리를 전통 선도, 대종교에 둔 것으로 파악한 점 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특히 “수행을 통해 개개인의 양심이 깨어나고(성통) 양심이 깨어난 개인들이 대사회적인 실천(공완, 홍익인간)으로 양심이 깨어 있는 밝은 세상(이화세계)를 만든다는 한국선도의 ‘수행-실천론’에 주목”한다고 강조하고,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 현실을 조소앙의 삼균주의 잣대로 평가할 때 경제적 불평등이 두드러짐을 짚어내고 있다.
물론, 전통사상이나 수행론 등에 대한 공인된 학설이 없는 조건에서 저자 역시 한 명의 연구자로서 많은 연구 내용을 담았지만, 유교 인성교육의 목표를 ‘개인적인 영달을 추구함’으로 간주한다든가 ‘단학(丹學)’과 국학기공 수련법을 한국선도의 본류로 내세우는 대목 등은 동의를 끌어내기 어려워 보인다. ‘기(氣)일원론적’ 세계관 등 저자의 전통사상에 대한 파악도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저자는 “조소앙이 경험한 다양한 사상들은 최종적으로 대종교 형태로 역사 무대에 재등장한 선도사상으로 귀일되었다... 삼균주의 사상 기반에 대한 구구한 주장들이 있으나 변하지 않는 그 핵심은 조소앙이 명언한 ‘홍익인간’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