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씨름은 원형 구도라고 여긴다.
씨름꾼을 중심으로 관중이 둥글게 앉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9시 구도이다.

“시계의 9시라는 말인가?”

“오해 말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9시 구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네.
관중이 둥글게 앉아있으니 시계의 원형과 같네.
씨름꾼은 위를 향해 수직으로 서 있고, 엿장수 총각은 좌측으로 서 있네.
이를 도식으로 만들면 시계의 9시가 되는 것이지.”

씨름꾼의 무게 중심을 축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이를 좌측 엿장수 총각이 무너트리고 있다. 시선으로 좌측으로 쏠리자 더 많은 관중을 좌측에 그려 보완하고 있다. 신발의 방향이 우측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씨름꾼의 무게 중심을 축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이를 좌측 엿장수 총각이 무너트리고 있다. 시선으로 좌측으로 쏠리자 더 많은 관중을 좌측에 그려 보완하고 있다. 신발의 방향이 우측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혹시, 오전 9시에 씨름판이 열렸다는 뜻이 아닐까?”

“오전부터 씨름판이 열렸을 가능성은 크지만, 시간 개념은 현대와는 다르네.
9시 구도는 원형 구도의 안정성을 무너트리고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하네.
사실, 씨름꾼이 경기하는 장면만으로도 씨름의 모든 것을 함축할 수 있지.
그런데 김홍도는 불필요한 관객을 넣었네. 관객의 행동이나 표정은 씨름꾼에게 향하는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여기에 더해, 씨름꾼과 관객 모두를 무시하고 엉뚱한 엿장수 총각을 배치했지.
이것은 의도했다는 말일세. 엿장수 총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씨름꾼이 2명, 관객은 19명이나 등장하는데, 엿장수 총각은 단 1명이네.
단 1명으로 21명이 만들어내는 안정된 구도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엿장수 총각을 지웠다. 횅한 공간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엿장수 총각의 배치를 기획했다는 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컴퓨터 그래픽으로 엿장수 총각을 지웠다. 횅한 공간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엿장수 총각의 배치를 기획했다는 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일단, 이 그림에서 엿장수 총각을 빼면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세.
엿장수가 없어도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네. 오히려 씨름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지.
엿장수가 빠진 자리에 관객을 채워도 큰 문제는 없네.
하지만 김홍도는 최대한 좌측 공간을 비웠고, 심지어는 씨름꾼의 공간마저 빼앗아 엿장수를 배치했네.”

“그러고 보니, 엿장수가 관객 속이나 밖이 아니라 씨름판 안에 들어와 있네?
씨름 경기에 방해가 되는 황당한 표현이네.”

“잘 보게. 관객 중에 엿장수를 바라보거나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야, 씨름의 승부가 결정되는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이지. 야구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순간에 예쁜 치어리더를 보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지.”

“그렇다면, 엿장수도 씨름꾼을 보고 있어야 하네. 하지만 엿장수는 씨름의 승부와 관계없이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네. 엿장수는 유령 같은 존재로 혼자 놀고 있는 것이지.”

엿장수는 씨름판 안쪽에 들어와 있다. 씨름꾼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경기에 방해가 될 정도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엿장수는 씨름판 안쪽에 들어와 있다. 씨름꾼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경기에 방해가 될 정도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도대체 이유가 뭔가? 김홍도는 왜 이렇게까지 엿장수에게 집착하는 것인가?”

“김홍도는 엿장수를 반드시 그려 넣고자 했네.
씨름 경기를 하는 것과 그림으로 그리는 문제는 전혀 다르네. 그림은 선택과 집중일세. 선택에는 이유가 있지. 그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면 졸작이 되어버리네.
엿장수는 씨름의 내용을 규정하는 요소이기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네.
그렇다고 씨름의 구도를 무너트릴 수도 없었네. 씨름판의 구도를 유지하면서 엿장수를 배치하는 방법으로 9시 구도를 사용했네.”

“그렇다면 엿장수는 뭘 뜻하는가?”

“엿장수의 존재와 역할을 따져보기 전에, 이 그림에서 빠진 부분을 알아야 하네.”

“씨름 같은 경기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마련이지. 씨름꾼이 온 힘을 다해 싸우는 목적이 필요하네. 우승 상금과 명예 따위의 보상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
만약 황소 한 마리가 보상으로 걸렸다면, 씨름꾼의 치열한 경기에 관객은 열광하겠지.
아, 생각만 해도 짜릿한 승부가 될 것이네.”

“공감하네.
하지만 그림 어디에도 황소와 같은 보상품은 보이질 않네.”

“설마, 엿장수가 파는 엿이 보상품이라고 말하려는 건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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