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승 / 자주연합 청년위원회(준)

 

1945년 9월 9일, 미군은 서울로 진주해 38선 이남지역에 대한 군정을 선포하면서 이날 오후 4시30분 조선총독부 정문에 걸린 일장기를 내리고 그 자리에 성조기를 게양했다. [사진출처-통일뉴스]
1945년 9월 9일, 미군은 서울로 진주해 38선 이남지역에 대한 군정을 선포하면서 이날 오후 4시30분 조선총독부 정문에 걸린 일장기를 내리고 그 자리에 성조기를 게양했다. [사진출처-통일뉴스]

자주냐 예속이냐

지난 9월 6일은 80년 전 조선인민공화국이 세워진 날이다. 또한, 이날은 과거에 묻힌 날이기도 하다. 해방 후 들어온 미군정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 이후, 조선 인민은 해방의 기쁨 속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를 발족시켰다. 한민당과의 지속적인 갈등, 임시정부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압박, 내부 갈등 속에서도 건준은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출범시키며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꿈을 키워갔다.

이어서 27개 정강을 발표했는데, 이 내용은 일본 제국주의의 법률 제도를 즉시 폐기하고, 제국주의와 민족반역자들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며,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18세 이상 남녀 인민에게 선거권을 보장하고, 여성해방,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확립 등 일제 치하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자주독립국가라면 지켜져야 하는 원칙들이었다. 그것은 해방 후 민중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한 첫걸음이었으며, 36년 일제 식민지 억압을 끝낸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세우려는 방향성이었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이 세워진 바로 다음 9월 8일, 외세가 등장했다. 이 군대는 조선 인민에게 환영받으며 인천항에 상륙했으며, 이어 서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미군이었다. 미군의 한반도 상륙과 동시에, 더글라스 맥아더장군은 포고령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일제를 항복시킨 승전군으로서 우리는 북위 38도선 이남 조선지역을 점령할 것이며,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시킬 것이란 것이 그 내용이었다. 친일 관료와 경찰 들은 “종래의 직무에 종사”할 것을 명했으며, 그로인해 다시 친일 세력들이 권력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민중이 쌓아 올린 자주적 권력은 무참히 부정당했고, 그 대신 외세와 친일 잔재의 결탁이 이 땅을 지배했다. 불과 이틀 벌어진 두 사건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갈림길이었다. 하나는 자주, 다른 하나는 예속이었다.

좌절된 자주독립국가(自主獨立國家)의 꿈

주지하다시피, 9월 9일 미군정 설립 이후 한반도는 둘로 갈라졌다. 신탁통치가 시작된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 진입하는 것을 두고 각각 점령과 해방으로 규정했고, 스스로를 군정과 민정으로 자칭했다. 이러한 차이점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바라보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소비에트군은 조선인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으나, 조선인민공화국 산하의 평남인민위원회, 북조선5도인민위원회 등과 협력했다. 비록 소련의 영향력 아래였으나 조선 인민들은 자율적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농민들의 생계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미군정으로부터의 직접통치를 표방하며 38선 이남의 인민위원회들을 강제해산시키거나 친일세력들을 기용했다. 이어 10월 10일 공식 성명을 통해 38선 이남에는 미군정 하나의 정부만이 있음을 공식 천명하였다. 조선인민공화국이 우리의 주권은 미국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민투표를 조직하자, 주요인물에 대한 검거와 구속을 진행했다. 결국, 미군정에 의해 38선 이남에서의 활동은 더는 불가능해졌고, 실질적으로 와해되고 말았다. 한때 자주의 이름이던 인민공화국과 지역위원회였던 인민위원회는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지금까지 과거에 묻혀있다.

미군강점 80년, 예속과 수탈의 역사

80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이 땅에는 완전한 해방이 오지 않았다. 이 땅의 주인은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미군기지는 여전히 우리의 땅에 존재한다. 사드 배치와 한미연합훈련은 대중국견제와 북에 대한 선제타격을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우리의 의사랑 전혀 무관하게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강요, 미군 범죄의 면책, 작전권 박탈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 체제는 방위조약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을 군사적 전초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 고정시켜왔다. 미군 주문의 비용은 한국 민중이 부담하고, 미국의 군수산업은 그 속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겨왔다. 그 결과 동맹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지배하는 굴종적 구조로 굳어졌다. 1945년 9월 8일로 시작된 미군의 점령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더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발 금융·투기 자본은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외국인 투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유연화와 민영화를 강요했다. 노란봉투법 같은 진보적이고 자주국가라면 당연히 시행되어야 하는 법률조차 “시행된다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며 온갖 경제적 위협과 압박을 일삼았다. 한미FTA로 한국의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상품들을 값싸게 수입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관세를 지렛대로 한국 기업의 투자 방향까지 간섭하며, 안보를 협박수단으로 삼아 직접적인 경제 수탈과 산업 종속을 강요하고 있다. ‘동맹’은 더 이상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한국의 주권을 묶어두는 족쇄로 기능하고 있다.

외세 없는 진정한 해방,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나라를 향해 나아가자

우리는 묻는다. 해방 8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정치·군사·외교·경제 전반에서 미국의 자본과 미군의 군홧발 아래 놓인 현실이 진정한 해방이라 할 수 있는가? 조선 민중이 피와 땀으로 쟁취한 해방은 완전한 자주와 민주, 통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9월 8일은 자주의 날이다. 우리 청년들은 오늘의 과제를 이어받아, 내일 이어질 굴종과 예속의 고리를 끊어낼 것이다. 동맹을 빌미로 강요되는 종속을 근본적으로 청산해야 한다.

미군점령 80년,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외세 없는 진정한 해방,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나라를 향해 나아가자!

지난 8월 15일, 자주연합이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이날 출범식에서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는 양병승 자주연합 청년위(준) 회원(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출처-자주연합]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