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회적 문제가 있음에도 김홍도가 씨름을 소재로 풍속화를 그린 이유는 뭔가?”

“소재 선택 문제로 예조와 규장각 관리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을 것이네.
영조, 정조 시대에는 개인성을 바탕으로 한 백성들의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네. 이것은 경제적 안정에 따른 시대 흐름이었지.
욕망은 경쟁을 부르고, 경쟁은 욕망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네.
백성의 욕망이 투영된 씨름을 막거나 금지할 수 없었네. 욕망을 누르면 다른 곳으로 팽창할 뿐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네.”

씨름판의 주인공은 씨름꾼인데, 씨름꾼과 아울러 많은 관중을 그려 넣어 거리풍경처럼 표현했다. 씨름꾼과 관중은 하나이다. 씨름꾼만 그리면 영웅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스포츠 스타를 경계한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씨름판의 주인공은 씨름꾼인데, 씨름꾼과 아울러 많은 관중을 그려 넣어 거리풍경처럼 표현했다. 씨름꾼과 관중은 하나이다. 씨름꾼만 그리면 영웅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스포츠 스타를 경계한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도화서 대표인 별제가 심각한 얼굴로 부른다.

“이보게 단원, 규장각1)에서 씨름 풍속화에 대해 걱정이 많네. 빼야 한다, 반드시 넣어야 한다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네.
어쨌든, 넣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정하긴 했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씨름이 영웅주의나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백성의 삶이고 생활입니다.
씨름 고유의 경쟁과 긴장을 핵심으로 하되 최대한 밝고 경쾌하게 그릴 것입니다.”

“웃고 떠든다고 영웅이 없어지겠는가?”

씨름은 외부 세력과의 전쟁이 아니라 내부 경쟁이다. 씨름꾼의 가죽신과 미투리를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그렸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 관계라는 정서를 반영한 표현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씨름은 외부 세력과의 전쟁이 아니라 내부 경쟁이다. 씨름꾼의 가죽신과 미투리를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그렸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 관계라는 정서를 반영한 표현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그래서 우측에 씨름꾼 신발을 나란히 그렸습니다.
신발을 한곳에 모았으니 좌우상하로 편이 나눠질 일이 없지요.
경쟁하되 같은 편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좋네만, 신발만 가지고 되겠는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네.”

“제가 누구입니까? 조선의 최고 화원입니다. 비책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그렇지. 자기 입으로 조선 최고라고 하더니, 흠흠...
아무튼, 그 비책이 뭔가?”

“씨름꾼을 크게 그리겠지만 훨씬 많고 다양한 모습의 구경꾼을 그릴 것입니다. 관객, 즉 백성이 없는 씨름판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지요. 백성은 관객이자 씨름꾼입니다.”

“씨름판의 주인공인 씨름꾼만 그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렇게 많은 구경꾼을 함께 그리다니, 획기적이고 참신한 구도일세.
구경꾼을 대충 그리지 않고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것은, 세계 미술사에 드문 일일세.
과연 자화자찬할 만하네. 하하하.”

“[씨름]은 김홍도 풍속화의 대표 그림으로 알고 있네. 미술 조형적으로 특별한 것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씨름꾼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구경꾼의 형태가 독특한 원형 구도를 만들고 있다고 하네.
씨름판에서 이런 원형 구도는 특별나지 않네. 만약 한쪽에 병풍을 두고 무대를 만들었다면 ㄷ형 구도가 되었을 것이네.
마당이나 공터 중간에 씨름판이 열린다면, 구경꾼은 원형을 이룰 수밖에 없지.
김홍도는 없는 구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씨름판을 그대로 화면에 담았을 뿐이네.

이 그림의 조형적 특징은 선택과 집중일세.
장터와 같은 곳은 사람이 많이 모이고 주변에 여러 건물과 장사치의 좌판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씨름과 관련한 부분을 빼고는 모조리 삭제했네.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제거하여 집중력을 높인 것이지.

배경을 없앤 구도법은 김홍도가 처음은 아닐세.
혜원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의 풍속화에서도 배경은 생략되어 있지.2)
이미 검증된 구도법을 사용한 것이네.

씨름꾼은 정면 시점으로 그렸고, 구경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법 시점으로 그렸네. 두 개의 다른 시점을 결합하여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현실을 창조한 것이지.
이런 다시점 구도를 두고 어떤 사람은 파격이라고 하네. 하지만 파격이 아니라 당시에는 전통이면서 일반적인 구도일 뿐이네.”

좌우 손을 모두 잘못 그렸다. 모사하는 과정에서 화원이 실수한 것이다. 검수하는 과정에서 확인했지만 고쳐 그리지 않았다. 판매 목적이 아니라 습작이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좌우 손을 모두 잘못 그렸다. 모사하는 과정에서 화원이 실수한 것이다. 검수하는 과정에서 확인했지만 고쳐 그리지 않았다. 판매 목적이 아니라 습작이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오른쪽 아래에 오른팔을 뒤로 뻗고 앉아 있는 남자의 손이 좌우가 바뀌어 그려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그냥 잘못 그린 것이네. 천하의 김홍도가 손의 좌우를 잘못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네. 여러 번 모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일세.
조선의 그림은 ‘오직 한 점’의 함정에 빠지면 이해하기 어렵지.”3)

“누어서 구경하는 사람은?”

“씨름판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의미일세. 일단 시작하면 최종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반나절 이상 시간이 걸렸다는 말이지.”

“신발을 벗고 무릎을 세워 앉은 사람을 다음 선수라고 보던데?”

“개연성이 충분하네. 씨름꾼이나 다음 선수도 장년인데, 장년 체급 경기라는 말이지. 신분과 관계없이 어린이, 청년, 장년으로 체급을 나눠 참가할 수 있다는 것 말하지.”

“심판이 보이지 않는데?”

“구경꾼이 곧 심판일세.
물론, 단오와 같은 큰 씨름판에는 심판이 있었을 것이네. 판정 시비로 종종 싸움이 벌어졌으니까 말이지.
경기형식은 토너먼트 단판제였을 가능성이 크네. 이 그림에서도 단판제로 보이네.”

“아무리 찾아봐도 황소나 상품은 보이지 않네. 우승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었나?”

“상품(賞)은 뛰어난 사회적 업적이나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사회적 보상으로 증서, 돈, 물건을 일컫네.
상금을 걸려면 관과 지역 유지의 돈을 추렴해야 하네. 단오와 같은 명절에는 가능했을 것이네.
하지만 장터에서 열리는 씨름판에 무슨 상금이 있겠네. 장터 상인들이 막걸리나 고기를 내놓았겠지. 경기가 끝나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었지.
우승자는 상금보다는 명예를 얻었네. 강한 남자의 우쭐거림으로 충분한 것이지.”

“엿장수 총각을 그린 이유는?”

“장소를 규정하는데 더없이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네.
또한, 씨름과 관계없이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엿장수를 통해 시선을 분산시켜 구경꾼에 관심을 유도하는 역할도 하네.
미술 구도의 관점으로 보자면 과도한 집중에 대한 반작용 장치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역할이지.”

“미술 관점에서는 그럴싸하네.
하지만 엿장수 총각의 존재는 씨름꾼, 관객과 대등해 보이네.
사실, 엿장수 총각이 없어도 화면 구성이나 내용 전달에는 아무 문제가 없네.
김홍도가 엿장수에게 엿이라도 얻어먹은 것인가?” (계속)

[참고]

(1) 규장각-왕의 비서실 역할을 하며 종 1품을 비롯한 100여 명의 관리로 꾸려진 정치조직이다.

(2)

신한평/자모육아도/종이에 담채/23.1*31cm/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 – 심규섭]
신한평/자모육아도/종이에 담채/23.1*31cm/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 – 심규섭]

풍속화의 배경을 생략한 구도법은 김홍도 이전 신한평의 그림에서도 보인다.
신한평은 혜원 신윤복의 아버지이자 도화서와 자비대령화원이며 어진을 그려 벼슬을 했던 당대 최고 화가였다. 김홍도는 이미 검증되고 완성된 구도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진정한 대가이다.

(3) 모작은 죄가 없다.

/[씨름]을 비롯한 김홍도 풍속화는 모작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가정책사업인 풍속화는 애초에 수십 점 이상 제작했다.
조선 팔도의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려면 모사가 필수였으며 원작과 모작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이는 전문미술가들의 공식적인 견해이다.

조선 미술계는 모작에 관대했다. 그림을 수신과 교양의 수단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림의 외형인 선묘나 색상, 묘사, 개성보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는데, 성리학의 핵심은 교육을 통한 고양인의 양성이다.
그림은 훌륭한 교육자료이자 세계관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좋은 그림을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기 위해서는 베끼는 방법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모작이 많을수록 명작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복제본이 많이 팔릴수록 좋은 작품으로 인정한다.

/‘오직 한 점’인 그림은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 그림의 정신 가치는 물질 가치로 바뀌면서 거래 품목이 된다. 원작 외에는 위작으로 취급하면서 값을 올린다.

/조선의 모작 문화는 디지털시대와 잘 맞는다.
스마트폰, 자율주행 자동차, AI, 넷플릭스, 만화, 음악, 유튜브 따위는 디지털 기반이다.
디지털은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가 없어 독점할 수 없다.
사용하는 주체의 수준과 능력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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