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2025년 하반기 한반도 주변 정세는 거대한 전환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기를 굳히면서 세계적 권력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편승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속하며, 북한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며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구도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시험대 위에 놓였다. ‘국민주권정부’가 과연 박근혜·윤석열 탄핵 정부의 대미 추종을 넘어서고, 지난 민주당 3대 정부의 대미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적 균형 외교를 펼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한국 정부와 국민의 자주역량 발휘는 국내 민생경제와 한반도 평화협력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 실현, 세계 다극화 질서로의 재편에도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한일·한미 정상회담과 대미 의존
8월 23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다양한 협력과 미래 비전을 강조했지만, 본질적으로 한국을 미·일 안보 질서에 종속시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본의 과거사 책임 회피를 묵인했고, 일본군 성노예·강제동원·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반인륜적 행위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북 핵 문제에는 제재와 압박 위주로 접근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고,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 19.5%를 무시한 채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에 한국을 편입시켰다.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 태도를 연속 치켜세우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본질은 ‘현찰 주고 어음 받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회담 직전 트럼프의 ‘한국 숙청·혁명’, ‘교회 압수수색’, ‘미군기지 정보 수집’ 발언은 노골적인 내정 간섭이자 주권 침해였다. 단순히 ‘오해였음’을 확인하며 넘어간 것은 주권과 자존을 망각한 사대주의의 연장에 불과하다.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은 북미·남북 관계 현실을 반영한 접근일 수 있지만, 자주적 대북정책 결행 없이 한반도 평화를 미국에 의존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실현은 요원하다. ‘전략적 유연성’에는 동의하기 어렵고, ‘미래형 전략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국방비 최대 증액과 미제 첨단무기 구매, 군비 확장 현실과 맞물려 국민 혈세로 미국 군수자본의 배를 채우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복지와 민생이 희생되고, 동아시아의 대립과 긴장이 고조될 우려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안미경중(安美經中) 시대는 지나갔다며 안보와 경제 모두를 미국에 의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남아공 중심의 확장된 BRICS+는 2025년 기준으로 세계 GDP의 45%(구매력 기준 50% 이상)를 차지하고, 인구 비중은 전 세계 약 55%에 달한다. 미 패권 약화와 세계 다극화 추세 속에서 이 넓은 시장을 외면한 채 미국만 우선시하는 외교는 한국을 예속과 약탈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위험을 내포한다.
SCO 정상회의, 다자 네트워크 확대와 한국 정부의 소극성
전승절 직전인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톈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린다. 중국은 SCO와 전승절을 연계해 미국의 관세 전쟁과 서방의 견제에 대응하며 다자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SCO에는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 5개국·인도·파키스탄·이란이 참여하며, 회원국 인구는 35억 명으로 전 세계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 GDP의 25%를 구성한다.
SCO는 단순한 안보협의체를 넘어 미국의 일방주의와 서방 제재 체제에 대한 대안적 다자협력 틀로 기능한다. BRICS+와 연계한 에너지·금융·통화 협력 강화 논의는 달러 중심 금융질서와 서방 무역체제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다. 초기에는 국경 분쟁 조정과 테러 대응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교통·에너지 인프라, 디지털 경제, 식량 안보, 기후 대응까지 포괄하는 경제 협력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NATO와 달리 군사동맹이 아닌 다층적 협력 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국은 현재 미국·일본 중심의 협력 구조에 치우쳐 SCO와 BRICS+와 같은 다자적 경제·외교 네트워크에 소극적이다. 그러나 한국 전체 수출입에서 아시아 신흥국과 SCO 회원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에너지, 원자재, 반도체 소재, 식량 등 전략적 물자 대부분이 이 지역과 직결되어 있다. SCO와 BRICS+는 한국이 특정 국가 의존을 줄이고, 당장 벗어날 수 없는 미국·일본 중심 동맹 틀 속에서도 독자적 선택권을 확보하며 다극 질서 속에서 균형 외교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 공간이 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전승절 참석과 국제적 위상 강화, 북중러 결속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전승절)는 동북아 질서 변화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북·중은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을 발표했으며, 중국은 참가 26개국 정상 중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 순서로 김정은 위원장을 발표했다. 북중러 연대를 전략적으로 강조하는 의도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은 북·중·러 전략적 공조를 공식화하는 큰 사건이다. 시진핑 좌우에 김정은, 푸틴이 한 무대에 나란히 서는 것은 군사·외교적으로 반미 전선의 강화를 상징한다. 이는 미국 주도의 한미일 군사협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구도이다. 북한은 전승절을 계기로 국제 제재의 틀을 돌파하고, 정상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2015년 전승절 70주년에는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 북조선의 최룡해 노동당 비서(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가 참석했다. 따뜻한 한중관계와 차가운 조중관계의 반영이었다. 반대로 이번 80주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참석하게 되었다. 남한이 한미일 동맹 강화로 외교 공간이 축소된 반면, 북조선이 북중러 협력으로 위상이 확대하는 ‘남북 외교 역전’을 보여준다. 북중러 연대 강화는 미국에 대한 협상 압박 수단이 되며, 제재 강화에도 중국·러시아의 외교·경제 지원으로 북한은 고립되기는커녕 위상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5월 전승절, 중국의 9월 전승절은 반파시즘 승리의 역사적 의미를 넘어 미국 중심 패권에 대항 전선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무대의 중심에 등장하는 것은 북한이 ‘반미·반패권 전선’의 중심 중 하나임을 공언하며, 국제정치에서 그 정당성과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 북한이 북러-북중-북중러 관계를 넘어 SCO·BRICS+ 등 다자 네트워크 속으로 확장하는 공세적 의미를 갖는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신냉전 위기냐 평화협력이냐
현재 동북아 정세는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 구도로 요약된다. 2025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약 8;9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중국 견제 인도·태평양 억제 구상(PDI)에 약 99억 달러가 배정되어 전년 대비 약 8% 증액됐다. 일본의 국방비는 전년 대비 9.4% 증가한 8.7조 엔(약 551억 달러)이다. 장거리 미사일 능력 강화, 무인 시스템 및 드론 역량 확대, 이지스 시스템 탑재 구축함 추가 건조, 군사 훈련 및 실전 대비 등 국방 강화 조치를 강행하고 있다.
8월 29일, 한국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2026년도 국방예산을 약 66조 2,947억 원으로 편성했다. 올해 국방예산(약 61조 2,000억 원)보다 약 5조 4,780억 원, 전년 대비 약 8.2% 증가한 수치로,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증액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42%이고 올해 2.32%에서 0.1%포인트 상승했다. 국방부는 미래 전쟁 대비 강화를 위해 첨단 전투기(KF-21) 개발·양산, 드론·로봇 기술 연구개발, 방산 스타트업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미일은 2025년 들어 세 차례 연합 훈련을 실시하며, 훈련 범위와 강도를 확대했다. 훈련 내용에는 대잠수함 작전, 미사일 탐지 및 요격, 해상 작전 통합 지휘 능력 강화가 포함되며,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뿐 아니라 중국 해군의 동중국해 및 서해 활동까지 겨냥한 조치다. 2025년 3월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미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미 해군 함정 4척과 한국 해군 세종대왕함(이지스 구축함), 일본 해상자위대 이카즈치함(구축함) 등 총 7척이 참가한 연합 해상훈련과 6월 연합 공중훈련이 실시되었다.
경주 APEC 정상회의, 북미 대화 재개와 자주 균형 외교의 시험대
그러나 대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우세 속 종전 국면으로 기울고 있으며, 유럽 내 피로감이 커져 미국 부담도 증가했다. 미국 유권자의 58%가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를 지지하고 있어,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 두 전선을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에서 보듯이 트럼프는 푸틴과 친분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미국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중국·러시아와의 이완을유도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북미 대화 재개의 실질적 계기가 될 수 있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다자 경제회의를 넘어 북미 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 전환의 실질적 시험대가 된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동시에 참석하는 자리에서 미국이 전쟁연습, 제재 등 대북 적대 정책을 중단하거나 조정하는 신호를 보낼 경우, 북미 대화가 재개되고 한반도 긴장이 실질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가 북 비핵화를 거론하지 않고, 역대 남북 합의 이행의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영토 조항과 흡수통일 관련 개헌, 국가보안법의 폐지 또는 개정을 단행한다면 남북관계 복원과 평화협력 재개를 이룰 수 있다.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미중 관계와 북미 관계의 중재자로서 국제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다.
한국 외교와 자주 세력의 과제
2025년 하반기 한반도 외교는 신냉전적 압력과 평화협력 가능성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는 자주역량 강화, 균형 있는 외교 전략, 동북아 평화 공동체 구상, 그리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로 요약된다.
첫째, 자주역량 강화이다. 한국은 단순히 미국 중심의 동맹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벗어나기 어려운 동맹 안에서도 자율적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적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남북 간 군비통제 논의를 재개하며, 재래식 무기 감축과 실질적 군축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자주역량은 한반도 안보를 외세의 전략적 필요에 종속시키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기반이 된다.
둘째, 자주 균형 외교이다. 한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와의 다자 협력 문을 모두 열어두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편향적 종속 외교는 안보·경제적 위험을 확대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성과 협상력을 훼손한다. 균형 외교는 동북아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권을 확대하는 핵심 수단이다.
셋째, 동북아 평화 공동체 구상 추진이다. 한중일, 남북, 러시아, 미국을 포함한 새로운 다자 대화체를 구축하여 군사적 긴장 완화와 경제적 불균형 해소를 도모해야 한다. 기존의 군사적 억제와 제재 중심 전략은 한계가 명확하며, 다자 협력을 통한 실질적·지속 가능한 평화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넷째, 시민사회의 자주화운동 참여이다. 한미일 군사·경제 공조 비판, 반미·탈미 평화·민생 수호 운동, 민간 중심의 남북 교류 협력 복원, 국제 평화 연대와 다자 협력 네트워크 강화 등 시민사회 활동을 외교적 영향력으로 확장해야 한다. 시민사회 참여는 국가 외교의 민주성과 정당성을 강화하고, 외세 종속을 방지하는 실질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2025년 하반기 한반도는 신냉전과 평화 국면 사이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전승절에서 드러난 북중러 결속은 대결 압력을 상징하지만, 경주 APEC 회의에서 북미 대화 가능성은 평화의 여지를 보여준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자주적 균형 외교를 선택할 때, 한국은 전쟁동맹의 변방국이 아니라 평화의 중재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최종 결정의 열쇠는 한국 사회 자신에게 달려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