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중적인 태극권은 건강용이고 일본의 스모는 오락용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레슬링, 권투, 태국의 무에타이, 몽골의 씨름(부흐)은 전투용이다.
“씨름이 레슬링이나 몽골씨름과 비슷하긴 한데, 실제 전투에서 써먹을 수 있나?”
“샅바 때문에 생긴 오해일세.
고려나 조선 초기만 해도 씨름은 전투용이었네.
샅바는 없었네. 두 팔로 서로의 옷을 잡고, 손발을 이용하여 넘어뜨려 승부를 냈지.
레슬링에 가까운 격렬한 싸움이었네.”
고려 충혜왕 때, 왕이 용사(勇士)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친히 구경하였다. (고려사)
두 사신이 목멱산(木覓山:지금의 남산)에 올라가 활을 쏘고 역사(力士)들에게 씨름을 시켰다.
군사들이 말 타고 창 던지며 활 쏘는 것과 격구, 모구(毛毬) 치는 것을 구경하였다. 동시에 두 사람이 각각 피두창(皮頭槍)을 가지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서로 대들기도 하고 좌우로 충격을 주기도 하였으며, 다섯 사람의 역사(力士)를 모아 씨름을 시키고 등급에 따라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다. (세종실록/권 31/세종 8년/1426)
“용사(勇士), 역사(力士)들이 씨름했다고 기록하고 있네.
용사나 역사는 싸움을 특별히 잘하는 사람을 일컫네. 전쟁, 전투, 군사, 무사와 연관된 군사용어이지.
말을 타거나 활을 쏘고, 창을 던지는 것은 군사 훈련의 기본이며, 격구나 모구(毛毬)는 기마병 전투 훈련일세.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투를 실제로 진행할 수는 없네.
따라서 가상의 적과 일정한 규칙을 정해 훈련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만들었지.
씨름은 레슬링이나 몽골씨름처럼 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개인 전투기술 훈련이네.”
“씨름을 시켰다고 기록했는데, 씨름을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좋은 질문일세.
씨름을 시킨 것은 군사 훈련의 필요성 때문이지. 차등을 두거나 상을 준 것은 훈련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당근 정책이네.
그런데 개인형 군사 훈련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지.
바로, 훈련 당사자가 아닌 관람자가 즐거움과 쾌감을 느낀 것이네.
왕이나 장군, 귀빈들은 자주 관람 목적의 씨름을 시켰지.
긴장, 반전, 제압, 승리라는 싸움을 보면서 도파민 쾌감을 느끼기 위함이네.”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를 보고 열광하는 관중과 비슷하군.
씨름은 대중적인 스포츠였는가?”1)
“조선 초기, 지배층이 좋아했던 놀이는 사냥이었네.
말타기와 활쏘기, 몰기 따위가 결합한 전형적인 전투용 놀이일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북방 여진족 출신이었네. 왕이 되어서도 사냥을 자주 다녔지.
하지만 사냥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사치 놀이였네.
사냥놀이를 비난하는 선비들의 상소가 빗발쳤네.
조선은 완전한 농경사회였네. 호랑이와 표범이 득실거리는 산에서 사냥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기도 했지.
지배층의 사냥놀이가 축소되면서 독립적인 활쏘기 놀이가 되었지.
여전히 지배층의 놀이로 머물렀네. 정조 임금은 활쏘기 중독자였다는 소문도 있지.
조선 후기는 태평성대였네.
병자호란 이후 100년 이상 전쟁은 없었고 조공무역, 중개무역, 농업혁명으로 경제적 호황을 누렸지.
백성들의 생활도 좋아졌네.
갓을 쓰고 가죽신을 신었네. 향낭과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단 찰랑거리는 도포를 입었고 긴 곰방대나 접부채를 흔들며 소고기를 구어 먹었지.
머슴들은 김치에 고봉밥을 먹고 후식으로 복숭아 10개를 거뜬히 먹었네.
백성들의 욕망이 들끓어 올랐지.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들어온 담배로 욕망을 달랬네.2)
새해가 되면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석전(石戰)을 벌였지.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네. 사람이 죽고 다치자 어명으로 금지하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지.
단오와 추석같이 특별한 날에 씨름 경기를 열었지.
왕이나 귀빈, 고위 관료만 즐길 수 있는 씨름을 백성들에게 개방한 제한적 보상이었네.
씨름을 맛본 백성들은 환호했고 더 많은 씨름 경기를 원했지.
백성들이 소리치며 민원을 넣었네.
‘선비들은 비싼 활과 넓은 궁장(弓場)을 사용하며 활쏘기를 즐기고 있다. 비싼 활을 살 돈도 없고 격식을 차리는 것도 귀찮다. 우리에게 씨름을 달라.’
선비들이 동조했네.
‘왕이나 권력자가 쾌락을 독점하면 나라가 부패한다. 백성이 즐거워야 한다.
백성들은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도르핀의 쾌감을 원한다. 이 쾌감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과 미래를 개척하는 용기를 얻는다. 씨름이 곧 민본정치이다.
여봐라, 팔도 관청에 명을 내려 더 많은 씨름 경기를 개최하라 이르라.’
씨름은 여전히 위험했지. 자칫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될 수 있는 격렬한 싸움이었거든.
위험성을 제거해야 했네.
그래서 샅바라는 족쇄를 채웠지.
처음에는 허벅지에만 샅바를 걸었다가 점차 허리까지 확장했지.
경기 규칙도 간단했고 모래판과 샅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씨름을 살 수 있었지.
17세기쯤 대중 스포츠로 거듭났네.”
“로마제국은 검투사 경기와 빵으로 통치했다는 소문이 있네.3)
통치 수단으로 씨름을 이용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일설에는, 성균관 관노 세력과 마포나루 짐꾼 세력이 씨름으로 경쟁했다고 하네.
성균관 관노는 소 도축과 판매권을 가지고 성균관의 재정을 충당하는 막강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마포나루 짐꾼들은 그야말로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네.
백정 같은 관련 종사자나 노비 신분은 성균관 관노 편을 들었고, 뱃사공이나 상인, 육체노동자들은 마포 짐꾼 세력 편을 들었네. 이 두 세력의 경쟁에 백성들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일세.
이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네.
샅바라는 강력한 통제가 있음에도 욕망은 꿈틀대며 폭주하기 마련이지.
인간의 경쟁 본능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 차별하고 과도한 쾌락은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네.
영조가 씨름을 금지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과의 싸움, 노비와 평민과의 싸움은 사회분열과 계급차별 따위의 사회문제는 민본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지.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켰지만, 조선은 씨름을 버리지 않았네.” (계속)
[참고]
1) 영국 귀족의 스포츠는 승마, 폴로, 테니스이다. 축구는 대중 스포츠이다.
축구의 대중화는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에서 시작된다. 1870년부터 1880년에 걸쳐 급속히 진행된다.
미국의 야구도 비슷한 시기에 대중화된다.
2) 담배
남령초를 흡연하는 법은 본래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사람들은 이를 ‘담박괴’라고 하며, 원산지가 서양의 어떤 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20년 전에 처음으로 들어왔는데 지금은 관직에 있는 이들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초동목수(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백 사람이나 천 사람 중에 겨우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장유/1587~1638년)/계곡만필/1635년 저서)
담배 중독의 주요 원인은 니코틴이다. 니코틴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이를 통해 쾌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3)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가 1세기 말과 2세기 초에 쓴 풍자시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로마 시민들이 정치적 권리나 참여보다는 식량과 볼거리로 만족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빵’은 주로 곡물로 제공되는 식량, ‘서커스’는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사 경기, 전차 경주 등 대규모 오락과 여흥을 의미한다.
황제들은 자신들의 통치에 대한 반발을 줄이고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료 식량 배급과 콜로세움 등에서 펼쳐지는 엔터테인먼트를 대대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펼쳤다.


따라서 가상의 적과 일정한 규칙을 정해 훈련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만들었지.
씨름은 레슬링이나 몽골씨름처럼 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개인 전투기술 훈련이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