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상임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안내하는 사람이 김진기를 불렀다. 잠깐 갔다 오겠다고 하는데 바쁠 테니 그냥 일 보라고, 둘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조금 있다 김진기가 위원장과 함께 왔다. 인사를 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했다. 신돌석씨야 요즘은 마땅한 명함이 없어서 문자 남기겠다고만 했다. 김진기가 신돌석씨를 거창하게 소개해서 좀 쑥스러웠다. 임형택은 조합원이지만 위원장과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닌 듯했다. 위원장과 김진기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갔다.

임형택과 둘이 남았다. 대리운전노조에 대해 물었다. 그도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자세히는 모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대략을 말해 주는데 신돌석씨도 놀랐다. 전국적인 노조로 출범한 것이 2012년이니 벌써 13년이 된 것이었다. 법적으로도 신고서류를 접수한 것이 2019년이고, 신고필증을 받은 것이 2020년이었다. 그 동안 투쟁도 무수히 많이 하였다. 그런데도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냥 스쳐 지나갈 정도였다.

시작은 2005년 대구지역에서였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대리운전이란 것이 그렇게 광범하게 이용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돌석씨 기억에도 회사에서 회식하고 집에 갈 때 대체로 차를 두고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체로 간부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너도 나도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것으로 풍토가 바뀌었다. 그러더니 어느덧 대리운전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20만 명이 된다고 하였다.

노조를 만들 때 거의 언제나 그렇듯 설립 전후에 현안이 있고, 투쟁이 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대구지역대리운전노동조합도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은 취소벌금 폐지 요구였다고 한다. 취소 벌금이란 것은 배차를 받고 목적지를 확인해 보니 맞지 않아서 취소를 하면 회사가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았는데, 이를 폐지하자는 요구가 호응을 얻어 노조를 결성하였고, 노조를 만들어 결국 관철시켰다.

저도 경기지부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렇게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는지는 정말 몰랐어요. 대구에서 시작된 뒤 청주, 대전 등에서 지부를 결성하고, 마침내 2012년에 전국조직을 결성했대요. 그런데 당시는 이명박 정권 때인데 특수고용자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을 때라서 전국단위노조 설립 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2017년에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전국조직으로 변경 신고를 했지요.

그 사이에 전국 각 광역단위 시도에 지부가 결성되었다. 명실상부한 전국노조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노동부는 변경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변경 신고가 아니라 전국노조로 신고를 했다. 그래도 설립신고필증 교부에 미온적이었다. 결국 당시 위원장이 19일 단식투쟁을 포함하여 45일간의 농성투쟁을 국회 앞에서 전개하였다. 문재인 정권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2020년에나 설립신고증이 교부되었다.

노조에 가입한 뒤 교육을 통해서 또 먼저 가입해서 활동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정말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지속되었다면 노조 인정은 꿈도 못 꾸는 거지요. 하지만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어도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요. 결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한 거지요. 그런 점은 지금 정부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만약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동안 싸워온 노동자들의, 민주진보세력의 역량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신돌석씨는 임형택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너무나 명백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뭉개는 자칭 촛불정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퇴행적인 수구정권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은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고, 그것이 노동조건을 저절로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 임형택의 말로는 이번 윤석열 탄핵투쟁에 대리운전노조의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윤석열의 내란 성공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윤석열 파면과 구속에 성공했지만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불안해해요. 촛불혁명의 빛이 바랬듯이 또 다시 그런 결과가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거지요. 물론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고, 이재명 정부의 노동조건 개선 의지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요.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요. 여전히 수구세력은 계속 노동조건 개선을 비롯한 개혁과제의 실현을 막으려고 하고 있잖아요.

이 문제는 신돌석씨 생각으로는 단순히 민주당 정부의 개혁 추진이냐, 수구세력의 개혁 방해냐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가 900만 명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이들을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있는 가운데 과연 민주당 정부가 이에 대해 확고한 의지로 대처하겠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는 문제이다.

물론 그 놈이 그 놈이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주장을 제 주변에서도 많이 하는데, 그것은 허무주의 내지는 활동가들, 이론가들의 자기만족만을 낳을 뿐이지요. 2019년만 해도 대리운전자 중에서 산재보험대상자는 4명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2022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18만여 명으로 급증했다고 해요. 우리가 싸우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요. 수구정권에서는 아예 불가능하고요.

신돌석씨는 임형택의 말을 듣고 내심 좀 놀랐다. 얼마 전까지도 임형택은 국힘당보다 민주당을 더 많이 비판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좀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 생각을 진전시킨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좀 다르게 들렸다. 어떤 문제든 민주당의 한계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그들과 수구세력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돌석씨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하지만 민주당과 진보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해는 아직 천차만별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는 어떻게 해서 대리운전자가 됐냐?

신돌석씨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회사가 망해서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까 들었지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회사가 망했어요. 폐업 철회 투쟁을 하기에도 역부족이었고, 사장 자체도 더 이상 쥐어짜야 나올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요. 망하기 직전에 열 명 정도 남았는데 다 50이 넘은 사람들이었어요. 우리가 퇴직금이라도 받고 나가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장 갖고 있는 것 다 팔라고 해서 퇴직금을 받았죠. 그것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사장 재산을 샅샅이 뒤졌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다른 공장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정말 갈 데가 없었어요. 나이도 나이지만 생산직 자체가 엄청나게 줄었어요. 지역에 공장도 많이 이전했고, 있는 곳도 외국인 노동자 쓰는 곳이 많았어요. 당장 생각나는 것이 경비였는데, 몇 번 했다가 나왔어요. 그리고 찾아간 곳이 택시업체예요. 언제든지 오라고 하는 데는 거기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수입이 안 돼요. 이제 사납금은 형식상으로는 폐지되었어요. 헌법재판소 판결도 있었죠.

신돌석씨도 사납금 폐지는 알고 있었다. 2020년부터 폐지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택시회사들은 사납금제를 없애고 전액관리제라는 것을 시행했다. 수입을 모두 회사가 받아서 관리하는 제도이다. 거기에 기준운송수입금제라는 것이 있었다. 기준운송수입금에 미달하는 금액을 납입하면 불성실 근로로 간주되고, 급여지급을 보류하고 승무 정지 및 배차 중지를 행하였다. 그야말로 조삼모사였다.

택시회사에 들어간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을 비교적 여유 있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근무가 아닐 때 노동단체에서라도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근무가 아닐 때는 자기에 바빴다. 운전이 그렇게 중노동인 줄 정말 몰랐었다. 그런데다 이제 대학 다니는 애들도 있는데 이 수입은 도저히 안 된다고 여겼다. 마침 택시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리운전으로 직종을 옮기는 걸 보고 따라서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작년 여름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수입이 택시 회사 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 내는 것도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임형택이 들어갔을 때는 취소벌금은 대부분 단체협약을 통해 폐지되었단다. 그래서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되었는데 노조로 인정을 받아도 여전히 노동자냐 아니냐에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있단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기왕 대리운전을 하는 마당에 노조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노동자 인정 여부에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전속성의 문제였다. 신돌석씨가 알기에 이 문제는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학습지 교사, 야쿠르트 판매원, 학원 강사 등의 문제에서 사용자에 의해 실질적인 통제를 받는 점, 같은 사업장인 점, 노동의 대가로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점 등을 기준으로 해서 결국 노동자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대리운전 기사는 복수의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다는 점에서 노동자가 아니라는 제기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점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것이 대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였다. 이 회사는 대리운전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시피 한다고 들었다. 이 회사를 비롯한 대리운전업체들이 대리운전노동자들이 다른 회사와도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대법원에서 대리운전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작년 가을에 내렸다. 임형택도 대리운전노조에 가입하자마자 이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당사자는 부산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여전히 사용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여론의 압력에 의해 소송은 취하하였지만, 언제 또 그 카드를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수의 사용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대리운전자들만이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을 인정해야만 한다.

윤석열 정권이 거부했던 노란봉투법이 이재명 정부 하에서 통과되었다. 이제 큰 틀은 진전했지만 여전히 세부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다. 항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들 하는데 그러한 문제를 사라지게 하는 것 역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을 믿기만 했다가는 또 다시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임형택처럼 의지와 경험을 갖춘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하리라.

사실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려면 상근을 해야죠. 그런데 진기형에게 들어 보니 지금 상황으로는 상근자를 더 쓸 수가 없다네요. 그럴 것도 같애요.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지요. 비상근 조합원으로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되네요. 대리운전에 조금 익숙해진다고 생각했는데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켜서 탄핵투쟁에 힘을 쓰다 보니 걸핏하면 빠지게 되어서 노조활동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다행히 노조 집행부에서 탄핵투쟁에 적극적이고, 조합원들도 호응이 좋아서 조금이라도 보탬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단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단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소속인데 한국노총에서 대리운전노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자 윤석열 정부 때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나서서 한국노총 소속의 대리운전노조에 여러 가지 지원을 하면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을 흔들어댔다는 것이다.

노동부 지원으로 야간에 무료 셔틀(야간 이동 수단)을 돌리며 이용자들에게 이용 앱의 특정 기능을 사용하려면 공제회와 한국노총 등에 통합 가입을 하도록 유도했단다. 그러자 무료 셔틀(이동형 쉼터)을 이용하고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을 목적으로 그 쪽으로 가입하는 대리운전기사가 많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우선 교섭대상이 되는 곳도 생기게 되었다. 어이없는 현실이었다.

신돌석씨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토록 어렵게 쟁취했던 복수노조 인정이 이렇게 이용되는구나 하면서 한숨이 나왔다. 물론 이런 일은 생산직 현장에서도 많이 나왔다. 결국 문제는 민주노조역량이다. 민주노총이 탄압과 회유 속에서도 꿋꿋이 서면서 한국노총을 능가하는 전국적 노조가 되었듯 민주노조들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한 발 한 발 진전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수입도 문제고 여러 가지 노동조건도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뭔지 아세요? 손님들 상대예요. 생각지도 않았던 다종다양한 사람을 만나죠. 어떤 사람이 제일 힘들 것 같아요.

임형택의 말을 듣고 얼른 만취한 사람 아니겠냐고 했더니, 물론 그런 사람이 힘들지만 대리운전을 해달라는 사람 중에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서 그건 그냥 그러려니 한단다. 그러면 어떤 사람일까 했더니 아는 사람이란다. 알지만 만나면 거북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괴롭단다. 자기는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정말 힘들었단다.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도 그는 형도 아는 사람인데 말하기 싫다면서 그냥 씩 웃기만 했다.

신돌석씨는 더 묻지 않았다. 대략 짐작은 갔다. 만약 신돌석씨가 대리운전을 한다면 제일 만나서 그랬을 사람이 누굴까? 아마 아내를 만나기 전 연인이었던 순덕이가 아니었을까? 그이를 만난다면 정말 껄떡지근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였다. 말하기 싫다는데 더 묻기도 그래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에는 자본이 있고, 그 상대인 노동이 있다. 둘은 자본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데, 그 존재 양태가 끊임없이 변해 왔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는 어디서나 본질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노동은 단결을 통해 자기를 지켜 나간다. 자본이 있는 곳 어디라도 노동자가 단결하고, 노조의 깃발을 휘날려야만 하는 까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