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황해북도 수운산에서 발원하여 강화도만까지 이어지는 례성강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고 있다. 옛 기억에 의하면, 고려 시대 수도 개성의 젖줄이었고, 개성상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례성강, 그리고 그 언저리에 위치했던 벽란도라는 곳을 거점으로 고려의 개성상인들이 세계로 뻗어 나갔다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우리 역사의 한 토막을 장식했던 례성강이 최근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데일리NK> 기사를 보니, 뜬금없이 황해북도 평산에 위치한 우라늄 정련 공장에서 폐수를 방출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장의 위성사진을 곁들여서 이 공장의 가동이 늘어나고 있고, 폐수 방류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의 말미에는 ‘이 공장의 군인, 노동자, 인근의 주민들이 수명이 짧고 기형아를 출산하며, 원인 모를 귀신병을 앓다가 사망’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 기사를 시작으로 여러 유튜버, 그리고 커뮤니티 등에서 이를 지적하고, 급기야는 일부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례성강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예성강 방사능이 후쿠시마 핵폐수를 초과하는 수치가 검출’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까지 버젓이 싣고 있다. 나아가 ‘국민의 힘’의 일부 의원들도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각 부처 합동으로 서해 지역의 방사능 수치를 검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권이 바뀌면서 일부 언론과 유튜버 등을 통한 사회적 이슈화 등의 예의 그 ‘못된 버릇’이 다시금 등장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무런 근거, 상식적 판단도 없이 일단 저질러 보고, 확산시키고, 문제를 삼아서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패턴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근거도 없고, 상식에도 맞지 않으며, 사실이라면 우리보다 ‘북한’에게 그야말로 ‘심각한’ 사태인 것이다.
우선, 례성강(禮成江)은 어떤 강인가? 길이 약 180km로서 지금의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를 가르는 선이자, 동시에 개성과 그 이웃 지역들의 생활용수이자 농업용수의 핵심 물줄기이다. 특히, 북은 황해남도를 농업도로 지정하고, 이곳에서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시하여 농기계 5,500대를 거대한 행사와 함께 지원했던 곳이다.
례성강이 방사능에 오염된다면 북은 농업을 포기해야 한다. 황해남도는 우리가 강화도 및 교동도 등지에서 마주하는 북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소위 우리가 ‘연백평야’라고 부르는 곳이며, 청단군, 연안군, 배천군이 이 ‘연백평야’의 농사를 직접 담당하고 있다. 그 뿐인가, 황해북도로는 개성과 그 이웃한 개풍군을 끼고 있으며, 이 지역 역시 ‘연백평야’만큼은 아니지만 주요한 곡창지대이다. 이곳 모두 례성강을 농업용수로 하고 있다. 이런 례성강이 방사능으로 오염된다면, 북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둘째, 평산지역의 우라늄 정련 공장의 문제이다. 군사분계선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서울에서는 약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북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인 우라늄 정련공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필자는 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관계로 그 이상의 사실은 알지 못한다.
아무튼, 이 평산의 공장이 ‘확인된 유일한’ 공장이라면, 북으로서도 이곳은 ‘핵 무력의 증강’을 위해서는 가장 단단하고, ‘자-알’ 관리되어야 할 시설일 것이다. 이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고, 핵 무력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키는데 국내적인-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질 것이며, 그만큼의 감시가 더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공장의 관리를 엉망이 되게끔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할까?
셋째,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우리의 안보문제와 관련되어서는 한치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특정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안보’가 동원되는 것은 철저히 비판하고, 나아가서는 처벌도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일은 과거의 경험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과거 ‘김정은의 사망설’, ‘현송월 숙청 사망설’ 등이 그러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정상회담 직후 일부 보수언론에 의해 소위 ‘금강산 댐’이 금이 가고 곧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의 뉴스 등이 있었다.
이러한 북을 동원한, 그리고 ‘안보’을 동원한 공포의 장사가 과거 냉전시절에는 흔한 정치적 수법의 하나였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지도 벌써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흘러갔고,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점점 더 강고해지고 있는 시절에도 이러한 뉴스와 정보가 넘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반공’, ‘북한’, ‘안보’를 동원한 정치적 장사 행위가 여전히 한반도에서, 아니 우리 사회에서 ‘돈이 되고, 권력이 된다’는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장사꾼과 지식인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 혹은 그 이전 정권의 시절에 언론이 권력, 지식 등과 결합하여 우리 사회를 얼마나 후퇴시켰는지를 되돌아보면 이의 폐해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의 그 ‘못된 버릇’이 아직도 버젓이 횡행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지고, 더 발전해야만 할 것이다. 건전한 사회비판과 권력의 견제가 아닌 ‘돈과 권력’을 향한 언론과 지식은 우리의 민주주의, 한반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못된 박테리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 김구 선생님께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내놓은 ‘삼천만 동포에게 읍소함’이란 성명에서 외세에 의존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한 무리들을 가리켜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에 반대하고, 이를 두려워하는 박테리아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라는 태양을 더욱 빛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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