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풍속화가 아니다.
신윤복이 그린 소재는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은 맞다. 하지만 일부였고 주류는 아니었다.
당시 풍속화는 국가 주도의 어용그림이자 주류였다.
신윤복은 이런 풍속화의 형식과 권위를 이용하여, 마치 주류의 그림인 양 위장한 것이다.
여성을 단독으로 그린 [미인도]를 비롯하여 여성이 주인공인 그림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은 명쾌하다.
대중주의, 개인주의, 욕망의 구현이다.
기존의 풍속화가 정치적이듯이 신윤복의 그림도 풍속화의 형식을 빌린 정치적 그림이다.
신윤복은 사서삼경을 공부했지만 성리학과는 거리가 있었다.
신윤복은 중인 신분의 화가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양반이었다.
매관매직을 통해 종 3품의 족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중인양반들은 만년 야당인 남인세력이나 추사 김정희와 같은 중국파, 심지어는 천주교파와도 관계를 맺으며 세력을 키웠다.
신윤복은 양명학(심학心學)을 미술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소재로 여성을 선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양명학적 관점으로 글을 써서 정조 임금에게 탄핵을 받는 이옥의 경우와 유사하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2809...)
이옥이 쓴 시 한편을 소개한다.
여성이 주인공이다.
歡言自酒家·(환언자주가) 당신은 술집에서 왔다고 말하지만
儂言自倡家·(농언자창가) 나는 알아요, 사창가에서 온 줄을
如何汗衫上·(여하한삼상) 어찌하여 한삼 위에
臙脂染作花·(연지염작화) 연지가 꽃처럼 물들었나요
신윤복이 그림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세밀하게 따져보아야 하지만, 양명학은 현실, 개인, 감성, 욕망, 도교, 불교 따위를 추동한다.
성리학이 양기라면 양명학은 음기의 철학이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은 양명학을 공부한 후 불교와 같다며 배척했다.
양명학을 다른 말로 심학(心學)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다고 여긴 것이다.
일체유심조를 현실적으로 정의하면 ‘세상 사 마음먹기 달렸다.’이다.
삼복더위가 있는 한여름은 양기의 절정기이다.
양기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음기이다.
양기가 성리학이고 남성 중심의 질서라면,
음기는 양명학이고 여성 중심이다.
신윤복은 음기의 정점인 여성을 내세워 양기와 균형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그네 타는 여성을 그림 중앙에 배치한 것은 음기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
그네뛰기는 여성이 다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 행위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강렬한 노랑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그렸다.
그림 속의 젊은 중의 표현은 중의적이다.
여성성을 사회적 약자와 연계하여 선동하는 역할을 한다.
약자 논리는 사회 비주류가 흔하게 쓰는 정치적 방식이다.
“이 그림을 한참이나 보고 또 보았네.
그러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네. 여성들이 대낮에 멱을 감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네. 그러서인지 주변을 어둡게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데....”
“역시, 세심한 눈썰미가 놀랍네.
이 그림은 크게 늦저녁과 대낮으로 화면을 구분할 수 있네.
멱을 감는 여성이 있는 좌측 화면은 늦저녁이지. 반면 우측의 그네뛰기, 머리 손질하는 여성이 있는 부분은 대낮일세.
우측 부분의 화면은 더 세밀하게 나누어지네.
집안과 집밖,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지.
그네 뛰는 여성과 술 짐을 인 여성이 있는 곳은 집밖 야외일세.
머리 손질하는 여성은 방안에 있고, 하늘을 보며 멍 때리는 여성은 집안 툇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지.”
“그러니까,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여성을 한 화면에 모아 그렸단 말인가?
이렇게 시공간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이유가 뭔가?”
“합성기법은 진경산수화의 전통일세.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부터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시공간을 결합하는 합성기법을 사용했지.
금강산 그림은 정면과 하늘에서 본 모습, 올려다 본 산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네.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 씨름, 무동, 서당 따위의 그림도 순간 포착한 모습을 중심으로 여러 시간대, 여러 사람의 모습을 한 화면에 그렸지.
여러 시공간을 한 화면에 그려넣은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시공간을 확장하고 내용을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함일세.”
“신윤복이 여성성-음기를 드러내기 위해 조선 팔도의 다양한 여성을 동원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이러한 화면 기법은 신윤복 그림의 특징일세.
신윤복은 복합화면 구성을 통해 그림의 내용을 확실하게 표현했네.
만약 단일 시공간으로 그렸다면 그저 야한 그림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지.
그림 속 각각의 여성은 독립된 그림이거나 습작일 가능성이 높다네.
이미 완성된 여러 그림을 가져와 주제에 맞게 재구성한 것일세.”
“이렇게 서로 다른 시공간을 결합하면 그림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는가?”
“우리 민족은 직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순환적인 시간으로 인식하네. 시간과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지. 봄꽃과 가을꽃을 함께 그리고 실외 물건과 실내 물건을 결합하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십장생도, 모란도, 책가도, 오봉도와 같은 전형적인 국가그림에도 합성기법을 흔하게 사용했네.
따라서 그림을 감상하는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못했지.”
“정리하면, 신윤복은 양명학에 따른 여성성의 발현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각기 다른 시공간에 있던 여성들을 끌어 모아 한 화면에 그렸다는 말이군.
이 작품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주의 그림으로 보아도 되겠군.”
“신윤복 그림 전반에 그런 내용이 깔려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일세.
다만 여성주의 그림을 여성이 아닌 남성이 그렸다는 점이 다르지.
여성의 인격이나 능력, 사회적 가치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여성 그 자체인 몸을 그렸네.
여성의 인격보다는 욕망의 대상, 욕망의 물질화를 표현했지.
이를 통해 남성 혹은 중인계층의 억압된 욕망을 구현하고자 했네. 미묘한 사회정치적 차이가 있지.”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한 형식과 내용의 그림일세.
나는 그냥 조선 여성들의 아름답고 편안한 일상의 그림으로 볼라네.” (*)


대중주의, 개인주의, 욕망의 구현이다.
기존의 풍속화가 정치적이듯이 신윤복의 그림도 풍속화의 형식을 빌린 정치적 그림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