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25주년을 앞두고 남북 사이에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11일 오후 2시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를 끄자 북측도 당일 늦은 밤에 대남 소음방송을 중단한 것이다. 대통령직에 취임한 지 1주일 만에 이 대통령이 내린 첫 대북 조처에 북측이 화답한 모양새이다.
사소한 것 같은 남과 북의 확성기 상호 중단은 두 가지 면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하나는 남과 북 접경지역 주민과 병사들이 이념전과 소음 피해로부터 벗어난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간 신뢰회복의 발판을 마련한 점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첫 발짝을 산뜻하게 뗀 것은 덤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선서에서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면서 “북한과의 소통 창구를 열고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나아가 6.15공동선언 25주년을 맞은 15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북측에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고 메시지를 전하고는 “중단된 남북 대화채널부터 신속히 복구”하자고 제안했다.
북측의 대남방송 중단이 남측의 대북방송 중단에 따른 화답인 것은 맞지만 이후 남북의 긴장 완화가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불확실하다. 한마디로 관계회복의 메시지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북측의 대남방송 중단 의미를 잘 헤아려야 하는 이유다.
애초 북측의 대남방송은 남측의 대북방송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으로 소음 위주였기에 남측이 중단하자 그 필요성이 사라져 자연스럽게 중단했을 뿐이다. 북측의 대남 소음방송 중단은 남측의 대북 확성기 중단에 따른 등가적이고 의례적인 조치로 보는 게 타당하다. 따라서 남측의 대북방송 중단에 따른 북측의 대남방송 중단을 남북 관계개선의 메시지로 파악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 이유는 ‘변화된 북측’에 있다.
6.15공동선언 25주년을 맞았다. 사반세기가 지났다. 6.15선언은 25년 동안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굴곡을 넘어 생사를 들락날락했다. 남측에 대북 대결적인 정부가 들어서 6.15선언을 폄하하거나 도외시하더라도 북측은 일관되게 6.15선언의 이행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마침 15일이 6.15공동선언 25주년으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임에도 북측 언론매체에는 6.15선언과 관련 아무런 소식이나 단신조차 없다. 그 이유 역시 ‘변화된 북측’에 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변화된 북측’이란 명확하다. 주지하다시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23년 말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개 국가관계’로 규정한 바 있다. 이후 북측은 ‘민족’과 ‘통일’, ‘화해’ 개념을 제거했으며, 통일 관련 여러 상징물도 파괴하고 기구도 폐쇄하거나 이전했다.
북측이 금과옥조처럼 살핀 6.15공동선언. 그 25주년을 맞아 아무런 메시지도 발신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6.15공동선언은 철저하게 ‘우리 민족끼리’라는 ‘민족 문제’와 통일방안이라는 ‘통일 문제’로 점철돼 있다. 남북관계를 동족관계로 여기지 않고 통일을 삭제한 ‘변화된 북측’이기에 굳이 6.15공동선언을 다시 들추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의 대화 재개 메시지에 대해서도 북측이 당장 화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 역시 북측은 이미 ‘적대적 두 국가론’을 표방했는데 남측은 여태껏 ‘두 국가론’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고 또한 북측이 보기에 ‘적대적’ 관계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선뜻 대화 재개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6.15공동선언이나 이 대통령의 대북 대화 촉구 메시지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6.15공동선언이 지닌 생명력은 여전히 유효하며, ‘두 개 국가론’이든 ‘적대적 관계’든 이 같은 난제는 남과 북이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 무언의 합의를 이룬 확성기 상호 중단이 접경지역 주민과 병사들을 이념과 소음의 피해로부터 구한 것은 명확하다. 오랫동안 남북관계가 전무한 상태에서 이것만으로도 남북이 만나기 위한 신뢰회복의 발판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