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게 있네.
김홍도는 풍속화에 원형 구도를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그림의 구도는 어전회의와 비슷하네. 실제 학생들이 좌우로 나열해서 공부했는가?”

“구도는 상황과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조형 방법일세.
서당의 구도는 비스듬한 디귿형일세.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자칫 좌우 대립하고 서열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는 위험한 구도이네.
실제 서당에서는 좌우가 아니라 훈장과 얼굴을 마주하고 겹쳐 앉아 공부했을 것이네.
하지만 이 형태는 훈장의 모습과 학생 모습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
훈장을 그리면 학생은 뒷모습만 그려야 하고, 학생의 얼굴을 그리면 훈장은 뒷모습일 수밖에 없지.
서당의 주체는 훈장과 학생일세.
훈장과 학생의 모습과 표정을 모두 그리기 위해 굳이 디귿형 구도를 사용한 것이네.
훈장을 크게 그린 이유는 어버이와 같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일세. 어버이로 상징되는 효(孝)는 인격과 철학의 근본인 인류애의 바탕이기도 하지.”

서당의 일반적 모습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김홍도는 체벌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표현했다. 아주 위험한 그림인데도, 당시 왕을 비롯한 관료들은 그림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서당 교육의 핵심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인성수양이었다. 인성수양은 염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염치는 사회적 본성인 양심(인의예지)을 모르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김홍도는 염치의 부끄러움을 표현하고자 했고, 서당에서 나올 수 있는 숱한 상황 중에서 체벌을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서당의 일반적 모습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김홍도는 체벌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표현했다. 아주 위험한 그림인데도, 당시 왕을 비롯한 관료들은 그림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서당 교육의 핵심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인성수양이었다. 인성수양은 염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염치는 사회적 본성인 양심(인의예지)을 모르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김홍도는 염치의 부끄러움을 표현하고자 했고, 서당에서 나올 수 있는 숱한 상황 중에서 체벌을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훈장의 책상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혹시 이것도 김홍도의 의도인가?”

“훈장의 책은 암기나 문제 풀이, 정답 역할이나 상황으로 연결되지.
훈장의 책이 없다는 것은 대화형 교육을 하고 있다는 말일세.”

훈장의 책상에 책이 없다. 상식적인 표현에 어긋난다. 의도가 있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 중심의 교육이라는 의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훈장의 책상에 책이 없다. 상식적인 표현에 어긋난다. 의도가 있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 중심의 교육이라는 의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어릴 적부터 이 그림을 보았네.
그런데 훌쩍이는 아이는 매를 맞기 전인가? 아니면 매를 맞고 난 후인가? 당시에는 너무 헷갈려 친구끼리 내기할 정도였네. 정작 미술 선생님도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더군.”

“매를 맞기 전일세.
그림을 보면, 훈장은 회초리를 잡지도 못했네.
아이가 매를 맞았다면 종아리를 드러내고 있어야 하지. 이건 상황 연출의 기본일세.
아이는 대님을 묶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아리를 드러내기 위해 풀고 있네.”

“정말 진지한 질문일세.
풍속화는 백성의 평범한 생활을 그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서당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상식일세.
그런데 이 그림은 상식을 벗어나 체벌이라는 특수 상황을 표현했네.
다시 말하면, 교육 현장에서 체벌이 일반적이라는 말과 같지.
자칫, 이 그림을 학교 폭력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오해하지 않겠나?”

“아, 소름이 돋네.
지금까지 서당에 관련한 숱한 글을 보았지만,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보지 못했네.”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하겠네. 아이가 체벌을 받고 있으면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이런 체벌 상황에서 동료 학생들은 웃고 있네. 이건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엽기적 행동일세. 조선시대 교육 현장은 인권 말살과 가학이 넘쳐나는 막장이었나?
아무리 정조 임금이 유쾌한 풍속화를 그리라고 명령했다지만, 매 맞는 아이의 상황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건, 김홍도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네.”

체벌 상황인데, 정작 체벌은 없다. 아이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고 있다. 훌쩍이는 것은 반성한다는 표현이며 스스로 대님을 풀어 자책하며 수양하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체벌 상황인데, 정작 체벌은 없다. 아이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고 있다. 훌쩍이는 것은 반성한다는 표현이며 스스로 대님을 풀어 자책하며 수양하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한 체벌은 불법이지.
영조 임금 때 이미 사문용형(私門用刑, 권세 있는 사람이 사사로이 노비나 천민을 감금, 체벌하는 행위)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네.
당시 서당 교육은 의무가 아니고 자발적 참여였네. 훈장이 학생을 강압할 이유는 없었지.
교육적 체벌이 필요할 때, 자신이 맞을 회초리와 횟수를 선택하게 했지. 보통 아이들이 맞을 회초리를 부모들이 준비해 맡겼다네.
부득이하게 회초리를 사용하더라도 위력은 창피 줄 정도에서 그쳤네.
쉽게 말하면, 때리는 시늉만 한 것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 체벌의 형상과 유산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산물일세.”

“그런데도 체벌 상황을 그린 이유는 뭔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서당 교육의 중심 내용이 뭔지를 알아야 하네.
한석봉이 새로 정리한 천자문, 삼강오륜을 담은 동몽선습(童蒙先習), 어린이용 유학교재인 소학(小學), 격몽요결(擊蒙要訣) 따위의 철학서가 있고, 역사서로는 사기(史記), 자치통감이 있고 시경, 서경으로 좋은 문장과 시(詩)를 익혔네.
흔히 문사철(文史哲)이라고 하지.
아무튼 문사철 교육은 사람의 사회적 인격 수양의 핵심 내용일세.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것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하지만 인격 수양 우선 교육이 체벌 상황과 무슨 관계인지 이해되지 않는군.”

“다시 그림을 살펴보세.
어린 학생이 어떤 연유로 체벌 당하는 상황에 놓였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네.
아이 앞에 책이 놓여있는데, 이는 학습과 관련한다는 정황이네.
책 구절을 암기하지 못했거나 훈장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거나 내용을 잘못 해석한 것일 수도 있네.
아무튼 즐거운 상황이 아닌데도 주변 아이들이 웃고 있네.
놀림과 비웃음이네.
이 비웃음은 사회적 합의, 즉 모든 학생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네.
아니, 그것도 몰라? 아무리 게을러도 몇 문장을 외우지 못하고 대답하지 못하다니. 스승께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답을 알려주었는데 금세 까먹었단 말이야? 쟤, 진짜 웃긴다.
중요한 것은, 이 학생은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는 것일세.
매를 들기도 전에 훌쩍이는 것은, 반성하고 있다는 행위이지. 대님을 스스로 푸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세.
훈장의 어정쩡한 표정이 볼만하네.
훈계나 질책하기도 전에 아이가 잘못을 인정해 버렸고, 나아가 회초리를 때려 달라고 대님까지 풀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지.”

“아이가 부끄러워서 훌쩍이는 것이 그리 중요한 장면인가?”

“이 학생이 훌쩍이며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이 그림의 핵심 내용이지.
바로 염치(廉恥)일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회적 본성이 있는데, 염치는 이를 모르거나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일세.
아이는 자기 행동이 염치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있네.
주변 학생들이 놀리거나 비웃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네.
어쩌면, 아이는 염치를 숨기고 변명이나 핑계를 대어 훈장을 속일 수도 있었지.
하지만 주변 학생들까지 속일 수는 없네.
회초리보다 더 매서운 주변 학생들의 눈초리가 있기 때문이지.”

주변 학생들이 웃고 있다. 배척이 아니라 끌어안는 놀림과 비웃음이다. 양심은 사회적 본성인데, 사회를 이루는 사람의 견제와 질책이 가장 큰 힘이다. 이들의 놀림과 비웃음이 개인 인성의 기본을 만든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주변 학생들이 웃고 있다. 배척이 아니라 끌어안는 놀림과 비웃음이다. 양심은 사회적 본성인데, 사회를 이루는 사람의 견제와 질책이 가장 큰 힘이다. 이들의 놀림과 비웃음이 개인 인성의 기본을 만든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혹시 집단 이지메로 오해하지 않을까?”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응징은 건강한 사회의 지표일세.
아이가 훌쩍이는 상황에서도 자기 차례에 대비해서 책을 보는 아이, 답을 알려주려고 하는 아이도 있네.
그림에 나오는 대부분 학생은 웃고 있네. 비웃음이라도 분위기는 밝네.
이 웃음이 사회적 응징인데 부족한 개인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지.”

“역시 김홍도는 뭔가 다르군.
자칫 오해할 수 있는 체벌 상황을 과감하게 선택하여 서당의 껍데기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정확히 찾아내 표현하다니.
진정, 천재의 풍모가 아닐 수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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