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주차, 10일 오후 4시 서초역, 촛불행동의 139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시작합니다.
2주전 촛불집회를 마치고 대법원에 경고를 하였으나, 5월 1일 유죄취지 파기환송 재판을 강행했다. 전 국민의 공분이 끓어 오르고, 5월 3일 대법원앞 규탄집회를 열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한 10명의 대법원 판사와 지귀연 판사를 규탄하고, 국회의 탄핵, 공수처 고발, 국회청문회 등으로 저항했다. 전 국민의 허탈, 공분, 답답함 등이 넘쳐나고. 대법원을 향한 공격이 넘쳐났다. 국회는 국회권한으로 촛불행동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서 국민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최고조의 분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연휴의 시작으로 가족들이 수안보로 내려왔고 나는 집회를 갈 수가 없었다. 고대 동지 김진수는 처음으로 전화해서 정말 중요한 시점이니 집회에 꼭 나와야 한다고 독촉했다. 몸은 하나요 원하는 곳은 둘이었다.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결국은 상경을 포기했고 조급한 마음만 남았다.
다행히 파기환송심은 연기되었고, 한숨 돌리게 되었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촛불행동과 국회는 재판 연기과 상관없이 대법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로 하였다. 국정조사, 청문회를 의결했고 집회는 예정대로 개최되었다.
서초동의 날씨는 최악이다. 비는 내리고 거기다가 바람까지 세게 불었다. 우산과 비옷으로 무장한 참석자들은 악천후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기상에 나는 목요일에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서 몸상태가 최악이었다. 5도 기울어진 걸음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어야 했다.
이런 자세를 오래 유지하니 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열도 올라 몸살기가 보였다. 딸의 오늘은 나가지 말라는 요구를 묵살하고 나왔다. 집회 중에도 딸은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해서 몸상태를 물어왔다. 계단에 걸터앉아 쉬기를 반복하면서 힘을 내었다. 행진을 포기할까 생각을 하면서 사진이라도 남기자고 노력했다. 비바람은 더 세차고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그런데 고대 동지들의 연락이 왔다. 촬영하려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겨우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지치고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힘이 났다. 그 순간 ‘백금열 밴드’의 <강윈도 아리랑>이 울려퍼지면서 참가자 모두 일어나 따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우리도 동참하다보니 지친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뜨거운 투쟁심이 다시 불타올랐다.
집회를 마무리하고 행진을 알리는 촛불행동 공동대표 김지선 사회자의 우렁찬 울림이 높고 크고 깊게 퍼쳐 나갔다. 오늘 행진은 서초역에서 교대, 교대역, 강남역으로 정해졌다. 토요일 오후에 강남역에 젊은이를 비롯한 시민들이 많을 것이라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10명의 대법관, 지귀연 판사에 대한 규탄 홍보를 위해 전진했다.
역시 동지들과 함께 행진을 하니 아픔도 사라졌다. 구호도 따라하고 노래도 따라하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새 세상이 금방 오지는 않더라도 새 세상에 대한 기초는 다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승리의 전리품보다 반역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이번에는 제발 제대로 이루어 지기를 기대했다. 특히 배운자들, 법기술자들, 반역의 뒤에 숨어 기득권을 누리고 조정하는 자들에 철퇴를 가하고 싶다. 선동에 속아 헤메는 어르신이나 청년들이야 관용이 있으나, 많이 배운자들에게는 관용이 없다. 공부와 능력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것까지는 이해하더라도 반역에 복무하는 행위는 용서가 없어야 한다. 특히 불리해지면 숨거나 변신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역사가 반복되고, 대를 이어서 그때그때 마다 자기 조상과 같은 반역의 길에 꼭 나타난다. 물적 타격을 가해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토대를 없애야 하고, 법적 타격으로 고립시켜 소멸시켜야 한다.
어느새 강남역 삼성타운에 도착해서 마무리 집회를 하였다. 영상 고장으로 김지선 사회자의 목소리만 들렸다. 언제나 또렷한 음성으로 멀리 울려퍼졌다. “법조카르텔을 분쇄하자!”
모두 마치고 대로 뒤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 이준석 후보의 선거사무실인지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20대의 여성과 남성이 가장 많다는 강남역에서 또 갈라치기를 시작했구나 생각했다.
오늘도 막걸리잔으로 뒤풀이를 하였다. 이들과 함께 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아픈 상태도 잊게하는 진통제 같은 고대 동지들이여 끝날 때가 멀지 않았다. 그때까지 밀어주고 당겨주세요. 나는 이제 힘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