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주차 19일 촛불행동의 ‘136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과 비상행동의 ‘내란종식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시민행진’ 후기 들어갑니다.
촛불행동은 오후 3시 서울 시청역 7번 출구에서 사회대개혁은 5시 30분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각각 집회를 개최했다.
아침 일찍 충주시 수안보에서 출발해서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묘역을 먼저 들렀다. 구로시민센터에서 함께 활동했던 고 김선민 영화감독의 8주기 추모식을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만 모여도 된다고 하는 남편의 주문도 있었으나, 재능도 뛰어나고 활동력도 뛰어난 인재를 먼저 보낸 아쉬움은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했다. 성격은 좀 있었으나 그녀의 재능과 남기고 간 족적은 짧은 생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잘 성장한 딸과 남편에게 위로의 인사를 보낸다.
항상 참가를 하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많은 재능과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런 인재를 일찍 데려가고, 나와 같은 밋밋한 사람은 오래 살게 하는 신은 참으로 고약하다고. 아쉬움에 대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다.
또 하나는 수 많은 열사들과 민주통일 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모란공원에 오면 큰 용기와 힘을 얻어왔다. 그분들의 삶에 비하면 작은 삶이지만 나도 그분들의 마음과 뜻, 생애에서 교훈과 유지를 받들고 실천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큰 생애에 경의를 표한다.
추모식을 마치고 구로동으로 돌아와 에너지를 충전하고 장비를 챙기고 시청으로 출발했다. 이미 집회장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깃발들은 비에 젖어 휘날리고 있었고, 자리에 앉아있는 참석자들은 비옷과 우산으로 비를 가렸으나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있었다.
전국집중이었으나 참석인원은 천여명 정도로 보였다. 큰 에너지가 분출된 화산 폭발과 큰 지진이 터진 후의 여진과 비슷한 느낌이다. 내란의 우두머리는 내려오게 만들었으나 더 넓고 깊게 퍼져있는 주요종사자, 잔당에 대한 소탕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무언가 정지된 분위기이다.
조기대선이라는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새대통령을 선출하는 이벤트에 모든 시선이 집중된 형국이다. 약간 어정쩡한 동거가 되고 수 많은 내란종사자가 선거를 관리하는 이상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에 촛불행동은 윤건희(윤석열과 김건희)의 재구속과 내란잔당 척결, 민주정부수립 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집회와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비록 쏟아지는 비로 몸은 젖었으나 내란척결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뽀송뽀송하였다. 새로운 피켓에 새로운 구호를 제작해서 집요하게 물고 들어가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잔당, 소탕이라는 단어는 민란이나 내란, 민중항쟁에 조선, 일제, 독재정권 등이 민중들에게 사용했던 공격이었다. 동학, 삼일운동, 광주민주화운동 가깝게는 6월항쟁 때도 언론과 방송은 그랬다. 그때 그들은 참 적극적이고 막강한 물리력에 무자비하고 잔인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된 지금의 오늘은 어떠한가? 소위 진압조차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있을 정도이다. 적법절차는 방해를 받고, 물리력은 최소화 되고, 전진이 멈추어 버렸다. 오호통재라....
급박한 분위기는 없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과연 진압은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하면 되겠지, 하면 좋겠다’라는 나이브한 마음이 들어서 있는 것인가 의문이다.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디테일하고 치밀하고 거세게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진압을 하고는 싶은 것인지가 먼저인가 싶다.
촛불행동은 역시 가장 먼저 치고 나왔다. 처음 대통령의 탄핵을 꺼낼 때처럼 다시 시작을 하였다. 참 슬기롭고 용감하고 적절하고 공격적인 선택을 하였다. 계속 밀어붙이기를 바라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로 마음을 먹는다.
바뀐 피켓을 들고 구호를 따라 노래를 따라 들어 올렸다. 행진이 시작되고 내란은 계속 진행형이라 외쳤다. 시청에서 을지로, 한국은행, 남대문 다시 시청으로 행진했다. 비가 와도 호응은 좋다. 광화문역의 탄핵반대 집회는 쪼그라들어 존재감이 없었다. 더 밀고 쪼여야 하는 분위기는 좋다. 저항하는 세력이 위에만 존재하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빗속에도 흔들림없는 행진대오는 내란소탕까지 진행하리라 기대했다.
사회대개혁 집회를 위해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빗줄기는 거세지고 천중과 번개까지 치는 여건이었다. 낙뢰에 대비하기 위하여 모든 깃발을 내렸다. 굵은 빗속에도 집회는 진행되었다. 규모는 축소되고 대형 스피거와 스크린 숫자를 대폭 줄였다. 참석인원도 많이 줄은 모습이다.
대신 무대 앞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사진은 잘 찍었다. 지금까지 참석한 집회중에 본무대 가장 가까이에서 구도를 잡아보았다. 그래도 참석인원이 대규모일 때가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회장은 예술가들이 만들어와 흔드는 깃발부대가 자리를 잡았고, 다른 쪽 참석 단체들의 깃발이 있었고, 참석자들은 무대앞 쪽에 앉았다. 양 사이드에 깃발을 흔들고, 가운데 시위대가 자리잡은 그림이 되었다. 그러나 날씨로 인하여 깃발은 내리게 되었다.
여기는 4박자 구호인 ‘구속구속 윤석열 구속, 처벌처벌 한덕수 처벌’의 소리가 인상적이다. 이번 내란 때 가장 떠오른 여성사회사의 선도 울림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 90년, 2천년대 대학연합 노래패 조국과청춘의 노래가 빛났다. 노래를 따라 춤을 추는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흥을 더욱 돋구었다.
악천후로 행진을 취소하고 다음주도 계속 투쟁할 것을 약속했다.
집회를 마치고 경복궁역 시장길에서 황인상 형님과 닭갈비로 애프터를 하였다. 황 형님도 미아리 4.19행사를 참석하고 광화문으로 나와서 힘이 들었다. 나는 모란공원을 다녀왔으니 동병상련이었다. 둘이서만 하게 된 애프터여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형님은 서울시립대 민주동문회에 2차로 가셨고 나는 고대 동지들과 연락이 되어 안국역으로 이동했다. 고대 친구들도 두 집회를 모두 참석했음을 서로 확인했고 2차를 하게 되었다. 비도 많이 맞아서 녹초가 되었고 감기 증세가 있었으나, 투쟁후에 마시는 막걸리와 무용담을 노래하는 그림은 아름다운 풍경화 같다. 신나게 즐기고 마시고, 약간 과음으로 흘렀다.
그중에 두 분이 구로시민센터에 대해서 물었다. 지방자치,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단체로 소개했고 회원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투쟁의 가장 큰 성과물인 조직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환희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후휴증으로 감기 몸살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매우 길고 힘든 일정이었으나 환희로 승화된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