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가운데 4월 5일, 4월 첫 주 비상행동의 18차 범시민대행진이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비가 내리는 가운데 4월 5일, 4월 첫 주 비상행동의 18차 범시민대행진이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윤석열 파면 후 첫 촛불행동의 촛불문화제가 5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윤석열 파면 후 첫 촛불행동의 촛불문화제가 5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4월 첫 주, 4월 5일 촛불일기 들어갑니다.

4월 4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판결이 나왔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결정이 온 나라에 울려 퍼졌다.

너무 아쉽지만 직장 관계로 현장을 지키지 못하고 충주 수안보의 작은 카페에서 카페 사장님과 단 둘이서 핸드폰을 통해서 보았다. “만세! 만만세!”를 부르며 서로 기뻐하고 감동했고 작은 울컥함을 삼켰다. 벅차오름이 왔으나 기쁨을 함께 누릴 사람이 없어 조용히 맞이한 셈이다. 유튜브로 헌법재판소와 안국역 집회현장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깃발.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깃발.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2022년 11월 5일 처음으로 촛불행동의 집회에 결합한 이후 네 번을 제외하고 빠짐 없이 참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2022년 11월 5일 처음으로 촛불행동의 집회에 결합한 이후 네 번을 제외하고 빠짐 없이 참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지하철 이동시에도 깨알 홍보는 계속된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지하철 이동시에도 깨알 홍보는 계속된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큰 천왕봉을 넘었으니 이제는 정리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난주에 이어서 두 번째 소회를 하면서 새로운 숙제를 찾아야겠다. 2022년 11월 5일 처음으로 촛불행동의 집회에 결합했다. 그때는 이태원 참사가 일주일이 지났는데, 윤 정부의 대응은 기괴하고 폭력적이고, 무책임을 넘어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 정권은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퇴진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그후 지난 주까지 2년 5개월 동안 비, 눈. 바람, 햇빛을 맞으며 시청으로 향했다. 추석이나 설날처럼 집회가 없는 날을 빼고는 다 참석했다. 그래도 일상이 있으니 네 번을 빠졌는데, 지리산 산행, 하계 가족휴가 때이다. 그래도 손피켓을 들고 인증을 하고 의사표시를 하였다. 1년에서 명절 두 번 빼고 대략 계산하면 50+50+20-4=116회 정도 참석했다.

행진 때마다 만났다. 이분이 우리를 매번 보신다. 잘하고 있는가? 머나먼 때 투쟁의 씨앗을 여기에 심었고 우리는 수확을 하고 있다. 종각역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행진 때마다 만났다. 이분이 우리를 매번 보신다. 잘하고 있는가? 머나먼 때 투쟁의 씨앗을 여기에 심었고 우리는 수확을 하고 있다. 종각역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부득이하게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지 못 할 때도 인증샷으로 함께 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부득이하게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지 못 할 때도 인증샷으로 함께 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긴 시간이고 힘도 들었으나, 머리와 재화로 참여하기 힘든 자의 최대 무기인 끈기와 성실함으로 맞섰던 것 같다. 동지들과 함께 가거나 혼자 가거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토요일 오후가 되면 교회에 가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것처럼 만들었다.

물론 귀찮기도, 한번은 빠지고도 싶었으나 습관이 되니 자연스럽게 출정을 하였다. 목욕재개하고 옷을 입고, 깃발, 깔개, 핫팩, 나팔이 담긴 가방을 메게 되었다.

여기에는 가족들의 지지와 희생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토요일은 오직 촛불에게 양보를 하였다. 독립운동은 아니지만 그 옛날 독립투사의 가족들의 희생은 대단했을 것이다. 더욱이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매주 올라와야 하는 여정도 빼 놓을 수 없다. 또 친한 친구들, 친척들, 지인들의 경조사와 모임을 포기하거나 축의금으로 대체되었으며, 토요일의 회식이나 모임은 결사 반대했다. 그분들의 작은 정성도 담겨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토요일은 오직 촛불에게 양보를 하였다. 김장 시간도 변경하거나 빼주거나 양을 조절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모든 토요일은 오직 촛불에게 양보를 하였다. 김장 시간도 변경하거나 빼주거나 양을 조절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동문축구회를 마치고 커피타임을 하면서도 파면을 축하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한 명의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온 동네가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하니, 한 나라의 미래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정성이 모아져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후기는 2024년 8월부터 작성하였다. 단 한 주도 빼지 않고 기록하였다. 쉬고도 싶었으나 혹시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항상 힘을 발휘했다. 직장일로 부족한 시간을 짜내도 시간만으로 해결이 안되고, 생각과 정리, 사진, 취재라는 요소를 첨부하면 어럽고 긴 시간을 요구했다.

그러다 촛불행동 공동대표가 자신도 꼭 읽고 있다는 전언을 들었고, 집회장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함께한 동지들, 지도부들을 보고 있으면 작은 난관으로 변하고 힘이 들어가 완성되었다. 여기도 많은 정성과 노력이 녹아 있음이 당연했다.

사회의 신 김지선 촛불행동 공동대표. 항상 그자리에, 꾸준함과 지침이 없는 분이다. 존경스럽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회의 신 김지선 촛불행동 공동대표. 항상 그자리에, 꾸준함과 지침이 없는 분이다. 존경스럽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가장 가까이 함께 했던 구로시민센터 동지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가장 가까이 함께 했던 구로시민센터 동지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윤건영 구로을 의원(왼쪽)과 장인홍 구로구청장 후보(오른쪽), 장인홍 후보는 구청장에 당선됐다. 시계는 계속 간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윤건영 구로을 의원(왼쪽)과 장인홍 구로구청장 후보(오른쪽), 장인홍 후보는 구청장에 당선됐다. 시계는 계속 간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 중에 ‘민주주의에는 공짜가 없다’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또 자주 나가게 되니 지인 숫자가 늘고 눈인사도 악수도 하고, 서로 격려도 하였다. 현장에서 동지가 늘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고려대 친구들도, 자원봉사자들도, 지역의 촛불 지지자들도 사귀게 되었고, 애프터를 함께 하기도 했다. 투쟁현장에 길이 보였고 조직도 만들어지고 완성되어 가는 예술이 되었다.

5일은 파면이후 첫 집회로 134차 촛불행동은 고향집 시청에서, 비상행동(18차)은 광화문 동집자로에서 개최되었다. 바람도 불고 비도 와서 수많은 인파가 모이지는 못했다. 빗속에서 진행되는 집회라 집중도도 떨어졌다. 파면으로 높아진 열기가 급격히 식었다. 그동안의 체증이 뚫리면서 해소가 되고 동력이 상실되었나 보다.

이인영 구로갑 의원(왼쪽)도 여러날 함께 했다. 꾸준함이 나를 계몽시켰다. 의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옆의 최태영 구로구 의원, 장인홍 구로구청장.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인영 구로갑 의원(왼쪽)도 여러날 함께 했다. 꾸준함이 나를 계몽시켰다. 의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옆의 최태영 구로구 의원, 장인홍 구로구청장.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끝까지 함께할 고대 촛불동지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끝까지 함께할 고대 촛불동지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지나가는 이재명 대표. 이 분도 기회가 될때 마다 나왔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지나가는 이재명 대표. 이 분도 기회가 될때 마다 나왔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그래도 참석자들은 행복했고 기뻤으며, 즐기는 모습이 얼굴에 환하게 나타났다. 그 와중에 촛불행동은 내란세력의 청산, 민주정부 수립이 될 때까지 집회를 지속한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숙제를 받아든 기분이 들었다. 일단 고민은 며칠 후로 미루고, 탄핵은 약간의 정리를 하고 마무리하고 싶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었으니 쉬는 것이 아니라 정리하는 차원에서 모든 지인과 동지, 가족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집회장에서 만들어진 순간을 찾아서 기억을 되살려 보겠다.

집회장 옆 카페 창문, 화장실도 개방해주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집회장 옆 카페 창문, 화장실도 개방해주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파면 축하 떡.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파면 축하 떡.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박시영tv는 김밥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박시영tv는 김밥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태극기는 우리것이다. 태극기와 구로촛불기[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태극기는 우리것이다. 태극기와 구로촛불기[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태극기와 구로 촛불기.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태극기와 구로 촛불기.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구로시민세터 식구들과 항상 인증샷을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구로시민세터 식구들과 항상 인증샷을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이 노래를 부르고 박근혜도 윤석열도 파면되었다. 정태춘.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이 노래를 부르고 박근혜도 윤석열도 파면되었다. 정태춘.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태원참사 피해자 가족 협의회 회장 이정민님. 나의 출발은 윤석열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태원참사 피해자 가족 협의회 회장 이정민님. 나의 출발은 윤석열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최고 인기 깃발이 되었다.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 만화책 '슬럼덩크'의 주인공이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최고 인기 깃발이 되었다.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 만화책 '슬럼덩크'의 주인공이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깃발은 집회의 정신이고 지표가 되었다. 국민이 주인이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깃발은 집회의 정신이고 지표가 되었다. 국민이 주인이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도 결코 잊지 못하리라. 가수 이승환 팬클럽의 홍보물. 여의도 공연 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도 결코 잊지 못하리라. 가수 이승환 팬클럽의 홍보물. 여의도 공연 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탄핵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12월14일...잊지 못한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탄핵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12월14일...잊지 못한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분도 참 진심이다. 수원정 김준혁의원 촛불행동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국회에서 집회중. 이 장소도 지원했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분도 참 진심이다. 수원정 김준혁의원 촛불행동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국회에서 집회중. 이 장소도 지원했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계엄 해제 다음날 촛불행동은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모였다. 인상적이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계엄 해제 다음날 촛불행동은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모였다. 인상적이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도 참 열심이었다. 양평고속도로의 주인공 여현정 양평군 의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도 참 열심이었다. 양평고속도로의 주인공 여현정 양평군 의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도 열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큰 집회의 사회를 보고, 계엄군의 총부리를 잡았다. 안귀령 대변인.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 분도 열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큰 집회의 사회를 보고, 계엄군의 총부리를 잡았다. 안귀령 대변인.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태원1주기 시민추모대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태원1주기 시민추모대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막걸리도 큰 역할을 했다. 에너지와 윤활유로 최고의 상품이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막걸리도 큰 역할을 했다. 에너지와 윤활유로 최고의 상품이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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