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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이자 의열단원 정율성

[연재]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 잡동산이’(108)

  • 기자명 이양재
  • 입력 2025.04.07 00:27
  • 수정 2025.04.07 15:1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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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 2025-04-18 00:22:28
응 빨갱이 ㅎㅎ
광주사람들은 원하지 않아요.

빨갱이입니다.
2025-04-07 01:43:45
죶을 까고있네
팔불출 2025-04-07 11:47:40
좋은 내용입니다다. 이념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망국적 색깔론도 이제 끝내야 합니다. 중국은 날라 다니는데 우물안에서 제자리 뛰기만 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혐오만 해오던 중국은 따라 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날아 올라 버렸고 한국은 남북, 좌우, 지역, 남여, 노소로 쪼개져 통합조차 어려워 대한민국은 길을 잃었습니다.
멸공시대 2025-07-21 10:25:58
뺠걍이 찬양하는 라도 광주 북한으로 꺼져라
문경락 2025-04-07 11:08:20
정율성은 1917년(4세) 화순군 능주로 이주, 1922년(8세)에 능주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이듬해 광주로 다시 이주한다. 그는 1928(14세)년 광주 숭일소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929년 3월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닌다.

정율성은 큰 외삼촌인 최흥종 목사의 집에서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고, 그가 활동하던 광주YMCA, 양림교회, 양림동 선교사촌을 통해 서양음악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된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