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판결로 오래 묵은 체증이 내린 듯싶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2일 백악관에서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고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트럼프 2.0 시대를 헤쳐나가야 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북한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돌렸다.

문정인 엮음,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 메디치.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문정인 엮음,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 메디치.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문정인 연세대학교 제임스 레이니 석좌교수가 ‘제임스 레이니 강좌’ 10강을 진행한 내용을 고스란히 한 권의 책에 담아 엮은 것. 10강은 각각 미국 전문가의 강연과 문 교수와의 대담, 강의 참가자들과의 문답,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강연자의 전망을 덧붙인 후기로 구성됐다.

“미국이 아직도 세계를 상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 평화와 번영, 안정이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잘못된 선택은 세계를 파국에 몰아넣을 수도 있고, 반면에 올바른 선택은 세상을 더욱 부유하고 평화롭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제임스 레이니 강좌’의 기획자이자 극본, 연출, 배우까지 겸한 문정인 교수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물론 미국이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UN(국제연합) 창설 등 국제질서 구축 등 긍정적인 역할도 많았지만 가까운 과거만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이란 핵합의(JCPOA)와 북미 제네바합의 배반, 중국의 부상 견제 등 ‘실패’로 점철된 미국 외교를 잘 꿰뚫어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북한 핵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미국 외교는 실패하고 있는가’, ‘미국외교의 주요 쟁점들’을 대주제로 잡았고, ‘북한 핵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의 경우 1장 ‘미국의 대북정책’은 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협상 미측 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갈루치 전 조지타운대학 교수, 2장 ‘신대륙으로 향하는 북한과 한반도 핵재앙을 막는 길’은 『두 개의 한국』 공동저자 로버트 칼린 CIA 북한 분석관과 북한 핵시설을 직접 둘러본 바 있는 시그프리트 헤커 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이 강연을 맡았다.

북핵 문제의 경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해결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진단이 주를 이룬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은 이제 남한과 미국이 자신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적대감을 품고 있으며, 오직 핵무기의 신뢰성 있는 위협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진단했고, 칼린 분석관은 북한이 90년대 이래 추구해 온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새로운 전략적 정책”을 선택했다고 파악하고, 장거리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 유예조치가 끝났다고 평가했다. 헤커 박사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들(북한)은 핵실험을 해야 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 전문가로서는 가장 북한을 잘 아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이들은 “협상과 외교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갈루치), “우리는 억제력을 이야기하지만 핵무기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다시 문을 열 때를 대비해야 한다”(칼린),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북한 지도부가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결국 자국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헤커)고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이 책은 미국 내부의 핵심 전문가로부터 미국의 입장에 대한 해명과 비판을 가감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 특별함이 있다. 미국은 왜 이스라엘을 감싸고 도는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거부감은 무엇 때문이지. “중국의 위협은 실제로 존재한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 봉쇄를 통해 대만과의 강제 통일을 시도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석유수송로를 중국이 통제하게 되고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월터 미드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우려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시 “(미국의 외교정책이) 유럽에서 벗어나 아시아에 집중하면 중국을 두 배로 압박할 수 있다... 그러면 미중 관계가 큰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중국 전문가 수잔 손튼 예일대 폴 차이 중국센터 선임연구원의 전망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을 미중 경쟁이나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 신경제책략, 인태(인도-태평양)전략, 기후변화 등 주요 현안들을 통해 짚을 뿐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국제정치학 이론을 적용해 살피고 있다. 월터 미드 선임연구원의 미국 보수주의에 대한 분류나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학 교수의 미국 외교의 변천사, 비노드 아가왈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의 강대국들의 ‘신경제책략’ 개념화, 백 잭슨 빅토리아대 교수의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비교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헤커 교수의 『핵의 변곡점』, 미드 선임연구원의 『특별 섭리』, 칼 아이켄베리 중국 칭화대 슈워츠만 칼리지 특임교수의 『승리 이후』, 잭슨 교수의 『태평양 세력의 역설』 등 강의마다 해당 분야의 필독서나 고전적 명저들을 소개함으로써 공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자들이라도 한 번쯤 인터뷰해 보고 싶은 핵심 관계자들의 강연을 듣고 문답을 주고받으며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는 이 책은 문 교수가 서론에 밝히고 있듯이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 2010),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삼성경제연구소, 2013)와 궤를 같이하는 세 번째 작업으로, 놀랄만한 문 교수의 학문적 열정과 교류의 폭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예상 대로, 트럼프 당선 이후 강연자들에게 요청해 추가한 ‘후기’에는 “우리는 양국(미북)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핵전쟁의 벼랑에 서 있을 가능성이 있다”(갈루치)거나 “‘미국 우선’ 외교정책은 해외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전략적 연대를 종식하거나 적어도 크게 약화할 것이다”(아이켄베리), “‘아메리카 퍼스트’가 이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다”(아가왈) 등 어두운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귀환에 세계가 마음 졸이는 것은 비단 트럼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최근 미국 외교정책사가 보여주는 것은 “담론 경쟁에서 승자는 ‘미국 최고주의’와 ‘중국 타도론’이었다”는 문 교수의 현실적 진단 때문일 것이다. 책 제목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의 답도 아마 거기에 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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