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에서 애매한 부분은 좌측 앞 장옷을 쓴 기생과 뒤따르는 남자일세.
이 장면이 없어도 남녀가 짝을 맺는 내용을 전달하는데 충분하지.”
“짝을 찾지 못한 남녀의 상황을 통해 재미를 주기 위함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그림에 활력을 주는 요소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마부를 자청하여 벙거지를 쓴 남자, 갓을 들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뒤따르는 마부의 모습은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일세. 재미가 반복되면 재미없지.”
“기생이 장옷을 휘날리며 급히 가고 있군. 어찌나 말을 재촉했는지, 행여 말에서 떨어질까 젊은 마부는 고삐를 꽉 잡고 말을 통제하고 있네. 혹시 따라오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다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안면도 트기 싫다는 말이지. 따라오는 남정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네.
장옷 기생은 남자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를 찾고 있네.”
“장옷의 기생이 말을 재촉한 이유가 다른 남정네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네. 장옷의 기생은 잘생긴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네. 그런데 다른 기생이 장죽으로 유혹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진 것일세.”
“애초에 점 찍어둔 남자일 수도 있겠군.”
“개연성은 충분하지. 뒤따르는 남자가 눈치챘는지 길을 에둘러 잡는 바람에 늦게 만나게 된 것이지.”
“그렇다면 신윤복이 굳이 이 장면을 넣은 이유는 뭔가?”
“이 그림은 짝을 구하는 선택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에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네. 마부 행세하면서 최선을 다한 남자를 선택한 것도 여자, 장죽을 주면서 잘생긴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 칭얼대며 따라오는 남자를 무시하고 원하는 남자에게 돌진하는 여자. 이 모든 상황은 짝 맺기의 결정권이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지.
남자의 권력은 장죽일세, 당시 남자들은 장죽에 금이나 은장식을 더해 돈과 권력을 과시했네. 여성의 권력은 아름다움일세. 화장과 고급 옷, 쓰개치마로 권력을 강화했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권력은 여성에게 있네.
여자가 있는 남자라도 마음에 든다면 돌진하는 여자가 진짜 주인공이네.”
“기생을 단순히 부자 한량의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생각에 철퇴를 가하는군.”
“그렇다네. 신윤복은 의도적으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돌진해 가는 기생을 그려 넣었네. 단순한 봄나들이가 아니라는 걸 명쾌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남녀들은 진달래가 만발한 봄날에 사랑과 쾌락이 넘쳐흐르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군.”
“신윤복은 인의예지와 같은 이성이 아니라 감각과 쾌락을 중심으로 하는 욕망의 길을 그렸네. 남녀의 사랑이나 여성 중심주의는 그 길의 상징이자 수단과 역할이지.
아무튼 김홍도의 이성, 신윤복의 욕망이 조화를 이루면서 조선은 전성기를 누렸네.”
“그나저나 말과 마부를 빌리는 돈은 남정네들이 공동으로 추렴했을 것이데, 여자 꽁무니만 쫓는 남자가 불쌍하군. 꼭 내 모습을 보는 듯하네. 앞동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고 하는데 나랑 같이 꽃놀이 가겠나?”
“나는 어림없네. 싸우고 삐져있을 소월에게 연락해서 같이 가게나. 자존심 상한다고 징징거리지 말게. 마부 행세하여 여자의 마음을 얻은 상남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참고1) 연소답청이라는 제목은 1930년대 오세창에 의해 지어졌다.
이 제목 때문에 그림의 내용이 나들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작품의 내용은 나들이가 아니라 짝 맺기가 중심이다.
(참고2) 이 그림은 상하좌우가 잘렸다. 좌측 남자의 다리, 우측 남자의 팔 부분, 아래 말다리가 잘려있다. 윗 부분 진달래가 있는 풍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그림에서는 사물을 잘라서 그리지 않는다. 원래는 큰 그림인데 작은 화첩에 맞게 묶는 과정에서 잘렸다.
애초 화첩과 그림의 크기가 맞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신윤복의 그림을 가져다 억지로 화첩으로 묶은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림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다니.
신윤복 그림의 가치를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참고3) 쓰개치마와 장옷은 모두 여성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는 용도이다. 동정과 소매가 있으면 장옷이고 없으면 쓰개치마이다. 쓰개치마가 고급이다. 신윤복이 살았던 조선 후기에는 혼용했다.
(참고4) 창의에 관한 기록은 영조 때부터 나오고 있으나 유물은 17세기 숙종 때의 김덕원(金德遠)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도포와 두루마기의 중간 형태이며 소창의(小氅衣)와 대창의(大氅衣), 중치막(中致莫, 中赤莫)의 세 종류가 있다.
소창의는 흔히 ‘창옷’이라고도 하는데, 소매가 좁고 길이가 그리 길지 않고 양옆이 트여 아랫부분이 앞 두 자락, 뒤 한 자락 하여 세 자락으로 갈라졌다. 집안에서 입거나 외출 시 중치막의 밑옷으로 사용하였다.
(참고5) 그림 속 남자들이 무릎 아래까지 행전(行纏)을 한 것은 움직이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다.
향주머니와 긴 띠를 매어 멋을 내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옷에 징이나 쇠고리 장식을 한 것이고 향주머니는 진한 향수를 뿌린 것과 비슷하다. 옷을 장식하고 향수를 뿌린 목적은 기생에게 환심을 얻기 위함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꽃놀이를 떠났지만 이른 봄이라 날씨가 쌀쌀한지 허리까지 걷어 올린 창의 자락 속에는 방한용 누비 배자를 받쳐 입고 있다.
(참고6) ‘술만 마시고 왔다지만/ 기생과 논 줄 나는 알아요/ 어찌하여 두루마기 소맷자락에/ 연지가 꽃처럼 물들었나요’
위의 시 구절처럼 부인이 있는 남정네가 기생과 꽃놀이하는 불륜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그림으로 연출한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실제 백성의 삶을 그대로 옮겼다면, 신윤복은 마치 영화처럼 연출하여 그렸다. 그림 속의 남녀는 특정 신분이나 처지가 아니라 남녀의 사랑을 위한 견본인(모델)일 뿐이다.
(참고7) 상투를 틀었다고 모두 유부남은 아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성도 20세 전후가 되면 상투를 틀었다. 상투는 어른의 상징이다. 어른 대접 받는 것은 이익이고 권위이기 때문에 결혼의 유무로 통제하지 못했다.
(참고8) 긴 곰방대, 일명 장죽(長竹)은 유용한 작업(?) 도구였다. 남자가 장죽을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건네주고 여자가 받으면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장죽으로 담배 피기 위해서는 남자가 부싯돌로 불을 붙여주고 이 순간 여성이 빨아들여야 한다.
친숙한 관계가 아니면 장죽을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과정은 마치 서양에서 여자에게 꽃을 주고받는 행위와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