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택 /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대원
나이 60에 새로이 찾아온 우렁각시와 보낼 즐거운 시간을 상상하며 남에게 들킬라 단체 사진을 찍는 대원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김종택” 오대장이 나를 부른다.
“예, 형님”
“다음 주에 시간 되니?”
“무슨 일이신데요?”
“산행기 써”
헐! 내가 글 읽고 쓰기 싫어서 이과를 왔는데 글을 쓰라고?
“제가 한글을 몰라요!” 난 단호했다.
“그럼 영어로 써!” 헉…
“아랍어 정도는 아는데 그걸로 쓸까요?”
대꾸를 하고 서로 대화는 멈추었다.
나름 강하게 거부를 했으니 그냥 넘어가겠지 싶었다. 그런데
유일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초입 오르막, 얼음판으로 번들번들한 그 입구를 지나며 대원들을 세워놓고 이번 산행기는 김종택이 아랍어로 쓸 거라고 큰 소리로 선언해 버렸다. 내가 안 된다고 얘기하려 했으나 대원들은 꼭 그 이야기만 들으려고 모였던 것처럼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흩어지고 말았다. 안 된다는 내 말이 입속에서 나와 보기도 전에...
이때부터였다. 나이 60에 찾아온 나의 우렁각시는 머리 속에서 떠나 버리고, 떠나버린 그 아름다운 자리에 어떻게 글을 쓸지 탈고의 고통만이 가득찬 게...
오 대장과 내가 어떤 사이인가? 5대강을 비롯 홍도 흑산도 울릉도 백련도 등 같이 안 가본 데가 없고 서로 신체 은밀한 어떤 부분에 점이 있는지도 아는 사이인데 대장이 되고 실적의 압박이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어떻게 글도 모르는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떠 넘기는가. 어이가 없었다. 왜 윤석열과 한동훈이 대립관계가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 한동훈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래서 오 대장의 최측근 장소영 대원에게 찾아가 오 대장을 회유해 보라 얘기하려 했으나 장소영 대원에게서 들은 말은 내 귀를 더 의심하게 만들었다.
“권력은 원래 그렇게 쓰는 거여요!”
장소영 대원의 얼굴 위에 김용현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의 지나친 판단은 아닐…?
그 후로 난 어떻게 산을 오르고 내렸는지 모른다.
오직 후기를 써야 한다는 일념으로 작은 지푸라기라도 유심히 보려 했고 대원들 일거수일투족도 잘 지켜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내 옆에는 김지영 원장님과 후미 대장 그리고 심주이 총무 가족만이 남아 있었다.
이 불편함 복수 하리라! 절대 다시는 나에게 후기라는 말이 안 나오록 만드리라!
올라가며 후기를 생각했다.
첫 번째 구상...
ChatGPT에서 태백산 산행 후기를 써달라고 하고 이를 아랍어로 바꿔달라고 한다. (정말 집에 와서 해봤다. 재밌다. 직접 해보시라.)
두 번째 구상...
과학도답게 후기에 과학적 요소만 담는다.
일단 지구과학!
옥천대 태백산지역의 가장 주된 지질구조는 북동-남서 방향의 힌지를 가지는 광역 규모의 정선대향사로, 지동리배사, 남병산향사 및 임하리배사 등과 같은 이차습곡구조들을 수반한다. 하반구 투영 및 하향 투영 단면 해석 결과, 정선대향사는 힌지가 남부에서는 남쪽으로, 북부에서는 북쪽으로 완만하게 침강하는 향사형 극융 형태의 이중 침강 구조…
또는 물리학
우리가 출발한 유일사 주차장부터 정상까지 높이와 그리고 우리가 지나간 거리, 적설량, 눈의 다져진 정도를 알기 위한 대략적인 담방객수, 아이젠을 착용한 등산화로 눌렀을 때 눈이 밀려들어가면서 생기는 힘의 손실 등등 을 고려한 이번 산행에서 소비한 평균 에너지를 계산하려 했으나
이 정도를 쓰려면 소논문 정도를 준비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 멈췄다.
세 번째 구상...
확 깽판을 친다.
태백산 하면 무엇이 떠오르죠?
네이버에 검색하시면 다나옵니다.
태백산 산행 후기가 궁금하시죠?
네이버에 다 나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남의 산행기를 안 읽고 자신이 다녀온 산행기를 읽고 싶은 이유는 그 글에 내가 경험한 장면과 느낌 그리고 나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장면? 단톡방에 보시면 사진 많고요.
느낌? 가슴속에서 안 잊혀지도록 하루에 한 번씩 사진 보시고요.
후기에 쓰여진 나의 이름? 지금 제가 이 후기에 써드릴게요.
등산팀 여러분 지금부터 이름 부릅니다.
이지련, 이상학, 전병덕, 김익흥, 전용정, 이석화, 이계환, 심주이, 오동진, 최규엽, 이방형. 양호철, 김태현, 권진덕, 신현익, 박명한.
힐링팀 여러분 지금부터 이름 부릅니다.
김지영, 이기윤, 권정기, 조은영, 김경수, 장소영, 송태성, 김은정, 김우현, 임정환, 심규섭, 심진경.
어때요. 이제 만족하시죠!!
사실 나는 산행에 자주 나오는 편이 아니라서 대원들 이름도 잘 모른다. 나 같은 사람에게 후기를 쓰라는 것은 바로 아래와 같은 후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일행들은 고사목과 파란 하늘 그리고 저 멀리 함백산 자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몇몇 대원분들이 사진을 찍으며 어떤 여성 대원에게 같이 찍자고 오라고 손짓하며 권했다. 이때 이 여성 대원이 “저는 어르신들 하고는 안 찍어요.!” 그 여성대원의 대답은 내 속을 뻥 뚫어주었다. 사이다!'
'점심 이후 힐링팀은 다른 코스를 선택했고 등산팀은 천제단을 거쳐 문수봉을 향해 가파른 내리막을 이어갔다. 원래 힐링팀에 속해 있던 김지영 대원이 등산팀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후미대장과 나 그리고 다른 대원(후에 존함을 물어봐서 지금은 알고 있음. 최규엽 대원) 한 분을 이끌며 선두의 꽁무니를 찾아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때 후미대장의 외침이 들렸다.
"뒤에 가시는 분들에게 길 양보해 드립시다!"
뒤에 다른 산악인들이 오니 길옆으로 비켜 뒷분들이 먼저 지나가도록 양보하라는 거였다. 그 말을 받아 나도 '양보할게요'라고 큰소리를 외쳤고 뒤에 오시는 분들이 먼저 가도록 우리 네 사람은 길옆으로 몸을 비켰다. 그런데 이건 뭐지? 뒤에 오시는 분들이 오 대장과 선두에 있어야할 우리 일행들 아닌가!
앞에 있어야 할 선두가 후미인 우리보다 뒤에 있다니? 그 다른 대원(최규엽 대원)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았다. 무슨 무슨 봉인가를 갔다가 왔다고 하는데 그 다른 대원(최규엽 대원)은 못 믿겠다는 눈치다. 우리 후미 대원들만 빼고 맛난 것 먹고 온 것 아니냐는 듯 계속 캐묻는다. "정말? 그 봉우리만 갔다 왔다고. 다른 짓 안하고?"...
천제단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햇빛은 눈에 반사되어 얼굴을 비추었고 얼굴 타면 안 되는데 걱정을 하며 한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요즘 운동을 안 해서인지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올 무렵, 길게만 느껴졌던 내리막이 끝나고 이제 문수봉을 향해 오르막이 시작되었?
되려고 했는데 왼쪽 길로 간단다. 문수봉을 오르지 않는단다. 왜?
문수봉을 오르고 제당골 갈림길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가려고 했으나 제당골 입구 토지 소유자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통행을 차단했단다.
"아마도 대부분 산에서 사유지 주장은 절에서 하는 걸 거여요?" 한 대원의 말에
전 전대장이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다 내려왔다는 생각에 길에다 버려지는 쓰레기, 서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농작물 도난, 제당골 끝에 사는 토지 소유주가 더 이상 이를 참지 못하고 작년에 어쩔 수 없이 길을 막았다"고 한다.
됐고! 내가 궁금 한건 그게 아니라...
"그래서 형님! 우리가 가는 길이 더 길어졌어요? 짧아졌어요?" 내가 물었다.
"짧아졌지!" 전 전대장의 말에 제당골 끝에 사는 토지 소유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우리 일행은 계획보다 짧아진 경로를 따라 왼쪽으로 길을 틀었다.
위 후기를 보시면 몇몇 대원, 여성 대원, 다른 대원, 한 대원...
같이 산행하는 일행 이름도 몰라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 사람에게 후기를 떠 넘긴 오 대장을 파면하라! 파면하라 !파면하라!
마지막 구상...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자!
자연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이 그 생체량만큼의 지분을 갖고 서로 나누어 써야 하는 공동 자산이다. 서로 아껴 쓰고 서로 나누어 써야 한다. 그런데 태백산에는 오직 인간만이 사용하기 위한 설치물이 있다. 같이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아니 해가 될수도 있는... 이를 사진에 담았다.
태백산은 국립공원이다.
개가 들어갈 수 없다. 개도 자연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국립공원에 들어갈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개가 국립공원을 다닐 수 있게 허락을 하고 있다. 위협을 주는 개는 동네에서처럼 입마개를 하면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시내에도 입마개를 착용한 개를 다닐 수 있게 하면서 사람이 훨씬 적은 산은 왜 안 된다고 하는 건가!
배설물이 문제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1차적으로 견주에게 문제가 있는 게 맞다. 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개의 유전자를 등록시켜서 배설물에서 그 유전자가 나오면 벌금을 왕창 물리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등산화에 묻은 개 배설물 때문에 속상한 정도보다 그 등산화 때문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산의 훼손 정도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개가 산에 가면 다른 야생동물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등산인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옷 등산화는 저기 아라비아 반도에 묻혀있던 석유로 만든 것들이다. 등산하면서 가루가 되는 등산화 밑창은 아라비아 반도에 있어야 할 석유를 이역만리 우리 산에 뿌리고 다니는 것이다. 야생동물은 인간을 가장 무서워한다.
태백산 유일사에 멍멍이가 살고 있다. 국립공원에 멍멍이가 살아서 너무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