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신윤복의 필치와는 전혀 다른 독립된 그림일세. 신윤복의 낙관을 위조해 넣으면서 원작자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네. 흔히 작가 미상이라고 하지.”

“안타까운 일이네. 도화서 화원을 지냈던 수많은 천재 화가 중에서도 단 한 점의 그림도 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단순하게 설명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네.
첫째는 너무 많은 그림이 있었기에 소중한지 몰랐던 것이지. 당시 미술작품은 유통기한이 있는 소모품이었네. 후세에 길이 남길 유산이라고 여기지 않았네.
둘째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약탈, 훼손되었기 때문일세.”

“알겠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겠네.”

“다시 그림이야기를 하세.
인물을 제외한 배경에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표현은 없는가?”

“굳이 찾자면, 왼쪽 나무의 표현이 특이하군. 이파리가 넓은 활엽수는 아닌데, 그렇다고 소나무 같은 침엽수로 보기에도 애매하네. 도대체 무슨 나무를 그린 것인가?”

“화면의 1/3을 차지하고 있어서 큰 나무처럼 보이지.
하지만 나무의 구체적 특징이나 상징을 알 수 있는 표현이 없고, 나무를 그리는 전통화법과도 한참 다르네.
그냥 수풀을 과장해서 그린 것이네.
수풀을 과장해서 그린 의도는 집을 가리고 숨기기 위함일세.
그런데 수풀을 표현한 붓질은 전통적인 구륵법이나 몰골법과 달라서 뭐라고 규정하기 어렵네.”

“오른쪽의 폭포나 수풀은 보기에 어떤가?”

“뭐, 특별한 느낌은 받지 못했네.”

“요즘 사람들은 서양화에 익숙해져 옛 그림을 감상하는데 불편해하지.
아무튼 오른쪽 폭포와 수풀이 자연스럽게 보였다면 전통화법과는 다른 서양화법일 가능성이 크네.
연한 색으로 여러 번 겹쳐 그리거나 뭉개어 표현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공기원근법처럼 보일 정도이네.
주련이 있는 건물 기둥 두께나 마루의 다리 두께를 표현한 것, 마루 아래를 어둡게 음영을 넣은 것도 서양화법의 영향일세.
이 작품에서 미묘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네.
서양화법이 도입된 지 100여 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전통화법과 결합한 것으로 판단하네.
이를 바탕으로 추정해보면, 이 작품의 창작한 시기는 대략 19세기 중반일세.”

“하긴, 신윤복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낙관을 위조하여 찍지는 못했겠지. 죽고 난 후 30여 년 정도면 검증해 줄 사람도 거의 없을 테니 말이야.”

“순전히 미술 조형 원리에 따른 추정인데, 이 작품은 마치 두 명의 화가가 그린 것처럼 보이네.
건물과 숲, 폭포 배경만으로도 독립된 작품으로 손색이 없네.
이것만으로도 남녀의 은밀한 만남의 내용은 정확히 전달되고 있지.
불필요한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조형 원리의 정석인데, 이에 따르면 어린 여종의 표현은 불필요한 요소일 뿐이네.
어떤 사람은 어린 여종의 표현이 보이지 않는 남녀의 행동을 유추하는 핵심 역할이라고 주장할 것이네. 하지만 남녀의 행동은 여종이 없어도 충분히 유추할 장치가 있네.
그것은 바로 먼 산의 폭포이지.
폭포의 표현은 참으로 요상하네.
보통 폭포는 바위 사이로 떨어지게 표현한다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냥 부드러운 골짜기로 그렸네.
바위 사이로 거칠게 떨어지는 폭포는 남성성을 드러내는 상징 역할을 하지.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가 그린 박연폭포를 연상하면 쉬울 것이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완만하고 부드럽게 그렸네. 실제 이런 폭포는 찾기 어렵네. 화가가 의도에 따라 그린 가상의 폭포이네.
눈치 챘겠지만, 이 폭포는 여성 음부의 상징으로 그린 것이네.
1/3의 공간을 할당하고 서양화법까지 동원하여 은은하고 환상적인 느낌이 나도록 공들여 표현했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지.”

미인목포라고 부른다. 미인은 매력 있는 여성을 뜻한다. 그림 속의 폭포도 이와 유사하다. 폭포에 미인을 결합한 것은 축축이 젖은 여성의 음부를 연상시키는 직관에 따른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미인목포라고 부른다. 미인은 매력 있는 여성을 뜻한다. 그림 속의 폭포도 이와 유사하다. 폭포에 미인을 결합한 것은 축축이 젖은 여성의 음부를 연상시키는 직관에 따른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듣고 보니 그렇군. 폭포 위의 거뭇하게 표현된 나무들은 여성의 음모로 보아도 무방하겠군.
그럼, 왼쪽에 거칠게 그린 수풀은 완숙한 여성에 비해 서툴고 격정적인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도 되겠네. 삐뚜름하게 놓인 남자 신발과 연관시키면 그럴싸하지 않는가?
방안 남녀의 사정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되는군. 호호홍...”

“일단 어린 여종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없애 보았네. 어떤가?”

“음, 앞쪽 공간이 휑하네. 여종이 없으니 시선은 온통 신발과 방안으로 쏠리는군.”

“밀회를 즐기는데 누군가 있다면 불편하지 않겠는가? 앞쪽을 비워두면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지. 방안의 남녀가 편안하다면 감상자도 편안하네.”

“그렇군. 자네 말대로 어린 여종이 없으니 그림에 집중하기에 좋군. 심지어 사시장춘이라는 주련도 불필요해 보이는군.”

컴퓨터 그래픽으로 어린 여종을 없앴다. 모든 관심이 방안의 남녀로 집중된다. 인물의 표현은 감상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컴퓨터 그래픽으로 어린 여종을 없앴다. 모든 관심이 방안의 남녀로 집중된다. 인물의 표현은 감상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엄밀히 말하면, 사시장춘이라는 글의 내용과 남녀의 밀회는 별 관계가 없네. 장춘(長春)은 활기찬 삶이라는 뜻으로 철학적 의미가 강하고, 현실적으로는 늙은이에게 주로 사용한다네.
그럼에도 주련에 사시장춘을 넣은 것은 천박하게 보이지 않도록 한 장치일세.”

“잠깐, 애초에 어린 여종이 없이 완성된 그림이었는데, 그 위에 그려 넣은 합작품이라는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네.”

“이렇게까지 어린 여종을 그려 넣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는 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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