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고, 또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는 등 격동하는 한국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15일 오후 도쿄 연합회관에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통련, 의장 손형근) 주최로 ‘신춘 정세 강연회’가 개최됐다.
이날 신춘 정세 강연회는 일본의 대표적인 반전평화운동가 중 한 명인 후지모토 야스나리(藤本泰成) 고문과 손형근 재일 한통련 의장의 강연을 통해 한국 정세를 깊이 인식하는 동시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올해 공동의 평화운동을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공통점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후지모토 야스나리 평화‧인권‧환경포럼(평화포럼) 고문은 ‘일본과 한반도를 잇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특히 평화문제와 역사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조기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협의를 시작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의 군사적 존재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후지모토 씨는 지금도 기본적으로 같은 상황이라며 “한국전쟁이 끝나면 한국과 일본 주둔 미군의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며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하려고 했을 때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며 방해한 것은 일본 정부였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이 한미일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것을 언급하며 “북한을 적대시하는 이런 움직임이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항상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일본 정부의 언행을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가 좀 더 평화를 위해 자주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 일본은 도쿄도지사가 관동대지진-조선인 학살에 대한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군마현 지사가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제목의 훌륭한 조선인 추도비를 불도저로 파괴하는 끔찍한 짓을 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역사 수정주의이며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후지모토 씨는 과거 일본인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에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인을 경멸해 왔으며, 이를 지금의 일본인이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예를 들어, “일본은 누구와 전쟁을 해서 패전했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미국’이라고만 대답한다. 실제로 일본은 중국과도 전쟁을 벌여 패배했는데, 그 사실을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일본 역사 교육의 결함을 지적했다.
또한 전후 일본 정부는 ‘1억 국민 총참회’를 외쳤지만, 이는 전쟁을 추진한 자들의 범죄를 희석시킬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선전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국민이 사과하기 전에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참회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독일 국민이 ‘나치가 잘못했다’고 명확히 인식하고 지금도 나치 범죄자들을 철저히 추적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후지모토 씨는 “전쟁 중 일본 군대 내에서 하급 병사를 괴롭혀 죽인 군 간부들이 많았는데, 그런 범죄자들이 아무런 죄도 묻지 않고 전후에는 자위대원이 되었다. 또한 전후에는 특고경찰(공안경찰) 간부들이 사회주의자나 조선인을 탄압하고 죽였는데, 전후에는 그런 자들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조선인을 학대하고 강제 송환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이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일본은 전후에도 전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를 제대로 직시하고 다시 한 번 일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후지모토 씨는 “나는 평화포럼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고집해 왔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고 차별을 없애는 것이 전쟁 전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후지모토 씨는 자주성을 발휘해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한국전쟁 종식과 항구적 평화 실현, 재일조선인의 인권 옹호를 목적으로 2월 8일 ‘일본과 조선을 잇는 전국 네트워크’(일조전국네트워크) 결성식을 도쿄에서 개최한 것을 소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다음으로, 손형근 의장이 ‘윤석열 파면과 한국 정국의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손 의장은 ‘12.3 내란’에 대해 “민중의 투쟁에 직면해 위기에 빠진 윤석열이 자신의 영구집권과 친미 보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헌법 위반의 비상수단을 발동했다가 실패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손 의장은 1.19 법원 습격 등 극우 세력이 윤석열 옹호를 내세워 격렬하게 난동을 부리고 있는 현 국면을 “극우세력은 12.3 비상계엄령 실패로 위기에 빠진 친미 친일 보수정권의 전면 붕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며 “우리는 극우세력의 난동을 총력 저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극우와 결탁한 ‘국민의 힘’을 해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 의장은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파면을 요구하며 궐기하고 있어 3월 중 파면 결정을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5월 중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만일 파면이 불발될 경우 기층민중과 함께 중산층도 지금보다 더 윤석열 타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한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은 한국 국민들의 투쟁이 더욱 강화되는 사태를 원치 않을 것”이라며 윤석열 파면 결정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손 의장은 현재 한국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사회대개혁을 내걸고 투쟁을 강화 발전시키려는 것, 특히 민중생존권 수호 투쟁을 강화하려는 것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며 아울러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근본문제에 대한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강연 말미에 손 의장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손 의장은 일제가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됐다고 지적한 뒤 “일제는 일본인보다 더 많은 조선인에게 치안유지법을 적용했던 역사를 상기하자”며 “이 법으로 인해 많은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처형당하고 극형에 처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손 의장은 국가보안법이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제정되었다는 점에 유의할 것을 참석자들에게 호소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재일동포와 진보적 정당, 노동조합 등 각계 단체의 일본인들이 참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