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련 /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단장
일자: 2024년 12월 22일
구간: 고봉산~장명산~공릉천
산행거리: 5km
산행시간: 2시간 20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13명
원산 아래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분기한 한북정맥은 덩실덩실 춤추듯 출렁이는 산줄기들을 쉼 없이 일궈 놓은 후, 양주 벌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마지막 힘을 모아 도봉산과 북한산을 힘껏 밀어 올리고는 그 여력으로 견달산과 고봉산, 장명산을 남기고 공릉천으로 산화한다.
굽이치는 산줄기와 지맥들은 강들의 발원지가 되었고 사람들은 산자락을 배후 삼아 마을을 이루고 살았더라.
1년 10개월이 쏜살같이 지났다. 철원과 화천 사이 수피령이란 곳에서 2023년 3월에 처음 시작하여 복주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 운악산을 지나왔다. 만만치 않은 봉우리들이고 경관이 좋아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주고 싶다.
이제 최종 구간만을 남겨 놓고 있는데 고민이 생겼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둘레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로를 걷는 곳이 대부분이다. 길이 막혀 돌아가는 곳도 많고 길 찾느라 도로 한복판에서 헤매기가 다반사라 하니 어찌해야 할 것인가.
논의 끝에 고봉산과 장명산 두 곳만을 오르기로 했다. 아쉬움이 많던 차에 마침 이방형 대원이 마지막 구간을 대표로 종주하겠다고 자원하니 종주대는 고마울 뿐이다.
이방형 대원은 산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한 달에 7번 정도 산에 가고, 노래도 언제나 이정선의 ‘산사람’만 부른다. 그러니 산이 아닌 도심 한복판을 걷는 일이 대부분이라 산행의 즐거움은 없을 수도 있었다.
조금 헤맸다고 하는데 농협대에서 공릉천까지 총 30.6km를 8시간 38분 걸렸으니, 조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공릉천에 도착했는데 버스도 없어 지나가는 차를 간신히 얻어 타고 전철역까지 갔다니 미안하고 또한 고마웠다. 이방형 대원 최고다!
격동의 12월, 최종 구간을 가다
12월 초부터 얼빠진 권력자의 어설픈 권력 놀음에, 생업에 온 심혈을 기울여도 모자랄 시민들이 내 나라 내가 지킨다는 일념으로 거리로 나섰다.
남태령 대첩이 절정에 이른 22일 아침. 한북정맥 최종 구간 산행을 위해 12명의 대원들이 서울역 미니버스로 모였다. 산행이 끝나면 ‘통일뉴스’ 송년회가 기다리고 있어서 다들 들뜬 분위기다.
‘아니 심주이 총무가 독감으로 못 온다고?’ ‘서효정 대원은 광화문 시위 봉사 활동으로 몸살이 들어 송년회로 직행하고..’, ‘어쩐 일이지? 이종규 대원은 송년회도 못 온다니...’
김래곤 대원이 남태령 소식을 실시간 전달하는 사이사이 대원들의 댓글도 속속 올라온다.
김종택 대원은 이 틈을 놓칠세라 송년회 장터에 네팔 트레킹 메뉴를 바겐세일로 올려놓았다. 이계환, 이상학 대원에겐 특별히 ’믿습니다‘ 추신도 붙인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우리 대원들은 이렇다.
미니버스는 과속 방지턱마다 대원들의 몸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일산 고봉산 입구에 우리들을 내려놓는다.
고봉산 진입로에는 이방형 대원이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근에 ’짬뽕‘글씨가 유난히 눈에 띄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양호철 대원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여기서 짬뽕 국물에 소주 한 잔 하입시더”.
좁은 버스 좌석에 구겨졌던 몸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그러려니 한다.
해발 202m에 불과하지만 높을 ’고‘, 봉화 ’봉‘을 쓰는 고봉산에 오른다. 산에 경외심을 가진 옛사람들은 그 시대의 결정적 사건과 운명적 인물들을 전설과 이름으로 남기곤 했다. 궁예와 국망봉처럼 말이다. 이곳엔 고봉산과 연관된 사랑이야기가 전해 온다.
때는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 유역을 두고 세력다툼을 벌이던 6세기 초. 백제에게 빼앗긴 개백현(현재의 고양)에 몰래 잠입한 고구려 왕자 흥안은 백제 여인 한주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을 약속한다. 훗날을 기약하며 고구려로 돌아간 흥안은 안장왕에 오른다. 백제 태수는 한주에게 첩실을 강요하고 한주는 단심가를 부르며 거부한다. 한주의 목숨이 풍전등화의 순간 안장왕의 특명을 받은 을밀장군의 급습으로 한주는 구출되고 고봉산에 올라 봉화를 올린다’
정사 삼국사기는 ‘달을성현(고봉산 일대)에서 한씨가 봉화를 올려 안장왕을 맞았다’고 짧게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고대사를 뒤흔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춘향전의 원형이라고도 하고, 정몽주의 단심가가 한주의 단심가를 빌려온 것이라는 설도 있단다.
정상엔 봉수터 자리와 고봉산성터가 남아 있는데, 군부대가 들어서 있어 그 아래 전망대에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일산에서 최고봉을 자랑하듯이 시야가 탁 트이고 일산 신시가지 너머 도봉산과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우아! 멋지다.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우리가 오르지 않은 견달산이 낮은 구릉지대 위로 둥근 얼굴을 볼록 내밀고 ’나도 한북정맥이에요‘ 속삭인다. 살아남아 주어서 고맙구나 견달산아!
고봉산을 내려가는 길에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고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데,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황철봉 다녀온 여자‘ 장소영 대원이 살짝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쩔쩔맨다. 박수열 대원이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도대체 설악산 마등령 너머 너덜바위 황철봉을 어떻게 넘었을까?
작별할 수 없는 금정굴
고봉산과 황룡산을 잇는 고봉누리길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맥 길이다. 고봉산과 황룡산의 산신령이 굳게 연대하고, 다람쥐, 너도밤나무, 봄에 진달래, 가을 코스모스, 구멍 뚫느라 바쁜 딱다구리까지 한마음으로 지켜낸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였다고 상수리나무가 살짝 귀띔해 준다. 역시 연대가 최고의 힘이다!
그러나 이곳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70년이 넘도록 피해자를 여전히 고통으로 몰아넣는 현장이 있다. 153인의 가엾은 넋들이 학살당한 금정굴이다.
’네 이놈들 너희가 지금 호의호식한다고 괜찮은 줄 아느냐! 과거를 망각하면 언제든지 외세 귀신, 분열 귀신, 증오 귀신이 창궐하리니 저 위 금정굴에서 죽어간 넋들을 잊지 말아라!‘
분노를 안으로 삭이고 삭인 장승의 몸은 눈과 비바람에 갈라지고 퇴색한 채 부릅뜬 눈으로 일갈하고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희생된 분들의 사진과 조그만 추모비가 있는 금정굴이다. 깊은 어둠 속에 잠겨있는 17m 수직굴 앞에 서니 당시 이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희생자들의 공포가 느껴져 온몸에 전율이 인다.
여전히 1950년 10월에 머물러 있는 ‘작별할 수 없는’ 넋들이여! 편히 잠들 수 있게 하리다. 세계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리다.
한북정맥의 막내 장명산을 만나다
생명체 존재의 원동력은 긍정이고 긍정의 힘은 밥에서 나온다고 변광무 대원은 그와 비슷한 얘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힘을 주어 말하곤 했다. 어느덧 밥때가 되었다.
점심을 길가 공장 앞마당에서 해보기도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한북정맥이 실종됐는데 이 또한 무슨 대수랴! 자리를 비운 주인장에게 마음으로 허락을 구하고 점심상을 그럴듯하게 차렸다.
이제 한북정맥 대장정이 불과 1km도 남지 않았다. 원래 최종 구간에선 종산제를 지내기도 하며 감격을 나누는데, 나라 꼴을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이라 모든 힘을 그곳에 집중시키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다. 평소처럼 오르고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될 듯싶었는데, 장명산이 우리의 마음을 마구 헤집어 놓는 것이었다.
높이 102m인 장명산은 정상 부근만 남겨 놓고 곳곳이 깎이고 파헤쳐지고 있었다. 이미 골재 채취 공장과 폐기물 처리 시설이 산허리 아래와 정상 서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북정맥의 막내 장명산은 마치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는 불쌍한 아이처럼 버림받고 있었다.
‘자그마한 몸에 구절초며 온갖 약초 가꾸어 무한히 내어주던 장명산아! 동네 사람들 장수해서 이름도 약산 또는 장명산이라 했지. 까르르 웃으며 산허리 양지바른 곳 약초 캐던 누이들. 능선 따라 뛰놀다 공릉천에 멱감던 아이들. 장명산 품 아래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너 홀로 남아 모진 수모 당하고 있구나.’
멀리 오두산 전망대가 보이고 그 너머 임진강이 흐른다. 장명산에 이름 모를 종주대가 세운 정상석이 서 있다.
’너는 비록 몸도 작고 막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었고 자랑이었단다. 사람들이 제정신이 돌아와 아름다운 공동체를 다시 일구는 그날 너의 마을에서도 구절초 축제가 열릴 거야. 잊지 않을게. 힘내자 장명산!‘
멀리서 최규엽 대원이 응원의 글을 보낸다. ‘오늘 같이 못 하지만 종주 졸업을 겁나게 축하한다’고, 덧붙여 ’강남순 대원이 남태령 투쟁에 밤새워 동참‘하였노라고 전해준다.
고영균, 이종문 대원은 남태령에서 사당으로 행진하고 있단다.
대원들이 보고 싶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광장으로 나가고, 산을 오를까?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웅장한 민족 기개는 외세와 굴종으로 실종되어 급기야 남북이 분단되었고, 사대 망령에 증오와 분열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하여 자연은 파괴되고 더불어 살던 민중들은 장명산처럼 버림받고 있다.
광장에서 산에서 우리들은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고 희망을 노래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위 대한 공동체를, 접경지역이 평화지대가 되고 증오에서 벗어난 경이로운 개벽을, 우리의 힘으로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당당한 민족공동체를...
장명산의 아픔을 뒤로 하고 비탈에 어지럽게 파인 교통호를 따라 공릉천으로 하산한다.
100대 명산을 향해
양주와 고양, 파주를 크게 감돈 공릉천이 햇빛에 반짝이며 잔잔히 흐른다. 마침내 한북정맥 대장정을 끝낸 대원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한북정맥을 끝으로 전용정 대장이 대장 책무를 내려놓는다. 선두에서 늘 긴장 속에 소소한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며, 대원들과 담소도 나누고 유유자적 산행의 즐거움을 갖고 싶다는 전용정 대장의 바람이 있었다.
전용정 대장을 알기에 우리 대원들은 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원들은 전용정 대장에게 빚을 졌다. 그 빚을 갚는 길은 종주대를 더 사랑하는 것이며, 조국 통일에 더욱 매진하는 일일 것이다.
한북정맥 산줄기를 걸으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민족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요,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것이 또 하나다.
백두대간과 함께 한북정맥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확인시켜 주는 산 교육장인 동시에 민족정신과 통일의 중요성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훌륭한 도량이었다.
공릉천은 한강으로 흘러들고, 북에서 온 임진강과 애기봉 아래에서 만나 조강이 되어 서해로 나아간다. 할아버지 강 조강은 자기 몸에 칼날을 긋듯 남북에 경계를 그으며 흐르고 있다.
조강에서 남북이 서로 어울려 고기를 잡고, 함께 풍어제를 지내는 날이 결코 꿈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2025년은 동서의 벽, 남북의 벽이 허물어지는 새로운 시대의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 시작하는 100대 명산 순례가 그 길에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