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민화협 정책실장)


지난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사태 이후 남북관계가 장기간 소강상태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하였다. 남북관계는 지난 4월 임동원 특보가 방북을 계기로 소강국면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최성홍 외교장관의 발언으로 남북관계가 꼬이면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해교전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서해교전사태가 남북관계를 푸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랬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듯했다.

그러나 북한이 서해교전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이후 남북관계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7차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임동원 특보가 방북하여 합의한 4.5합의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그동안 합의사항을 실천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7차 장관급회담을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하였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7차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각종 당국간 대화 재개, 8.15 민족통일대회, 남북축구경기, 부산아시안게임에 북측 선수단 참가, 5차 이산가족 상봉 등 6.15 선언 발표 이후의 상황과 같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통일에 대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우를 보더라도 남북관계는 합의했다고 해서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의사항들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소중하게 보듬고 나가지 못한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어찌보면 민간차원에서 추진하는 8.15 서울 민족통일대회는 남북관계에서 `독`이 될 수 있다. 독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못쓰면 생명을 죽이는 독약이 된다. 하지만 독약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작년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에서처럼 작은 소동이 큰 사건으로 비화해버릴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8.15 서울 민족통일대회에는 북측에서 100여명이 참가할 것이다. 분단 이후 민간차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 민간통일운동사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뜨거운 마음으로 북녘의 동포들을 환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인지에 대한 분석과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뜨거운 환영`은 결코 환영이 될 수 없다.

이미 자유시민연대, 재향군인회, 피랍 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등 일부단체들이 8.15 행사장 부근에서 시위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게 동포를 환영하는 것과 무슨 관련 있느냐고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충돌이라도 이것이 언론을 통해서 `남남갈등`이라고 보도되고, 이런 상황에 대해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8.15 행사는 남북관계 자체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다.    

민간통일운동이 걸어가야 할 길은 가느다란 낭떠러지 길이다. 한발만 잘못 디디면 굴러 떨어진다. 그 길을 잘 통과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너른 평원이 기다리고 있다. 그 가느다란 낭떠러지 길을 고속으로 질주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북측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현실로 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왜 통일운동은 북한으로만 가느냐, 서울에 불러라, 서울에서 노동신문 사설을 읽는다고 해도 서울로 오게 해야한다"며 민간통일운동에 요구했다. 그러나 막상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오기로 하니까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민간통일운동이 걸어가는 길은 결코 고속도로가 아닌 것이다.

민간통일운동은 통일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절제력과 냉철함도 강해야 한다. 8.15 행사에서 고속질주를 하고 싶은 욕망은 8.15 행사를 올해 남북관계의 독약으로 만들 것이다. 북측에서 100여명이 서울을 방문하는 행사가 환영과 반대시위로 만신창이가 될 경우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통일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반통일세력의 만행이라고 규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인가?

예상할 수 있는 우려에 대해서 용감하게 무시해버리는 호기만으로는 절대 통일을 이룰 수 없다. 일부단체들의 시위를 상수로 설정해 놓고, 이것이 가져올 수 있는 파장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보여주자. 이것은 통일을 준비하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 될 것이다.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뜨거운 환영`이 아니라 `냉철한 절제`로 가능하다는 역설의 변증에 대해서 숙지하여야 한다. `통일운동을 위한 통일운동`이 아니라 `통일을 위한 통일운동`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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