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12월 21,22일은 매우 바쁜 날이었다. 21일(토)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하는 범시민 대행진에 참석하였다. 날씨는 바람도 약간 불었고, 매우 추운 편이었다.
14일의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의 감격도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었으나, 이후 진행되는 후속조치는 정체 상태가 되면서 불안한 동거가 되는 모양새였다. 이제는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광화문으로 시민들은 집결하였다. 수 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즉각 체포와 파면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구로동의 지인들과 가족들, 딸도 참석을 하였다. 아이돌 스타인 빅뱅, NCT, 방탄소년단의 응원봉을 들고 갔다. 이제 깃발보다는 응원봉을 앞세운 시위문화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시위의 특징은 규모가 대규모인데도 절도도 있고 매우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이동할 수 있도로 광화문앞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이동공간을 넒게 만들고, 자원봉사의 지시를 잘 따르게 되니 혼잡도가 없을 정도였다. 시위대오 사이의 통로도 잘 확보되어 시민들이 왕래를 하는데 막힘이나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취재를 위하여 돌아다니는데. 편하였다. 동십자로에서 경복궁역까지 두 바퀴나 돌았는데 시간도 막힘도 없었다.
지난 주말 여의도는 이동을 포기하고 한군데서 끝까지 보다가 탄핵 가결되고 나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오늘 광화문은 매우 절제되고 질서있고 결의가 높은 집회였다.
둘째로 오늘의 집회내용도 많이 달랐다. 정당, 사회단체의 연사들이 연설을 하고, 중간에 문화공연, 파도타기나 기자들을 위한 포퍼먼스로 구성되었는데, 이번에는 정치연설을 대폭 줄이고, 시민 자유발언이 대세를 이루고, 공연, 개사곡에 응원봉을 흔드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탄핵, 체포, 파면을 주장하는 구호는 강하게 외치고 노래했다. 개사곡이나, 아이돌 노래, 대중가요가 대세로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정당의 대표나 정치인들은 인파 속에서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변해가는 집회 시위문화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집회를 마치고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조계사, 종각역, 을지로역, 명동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가 너무 많아서 집회장을 빠져나가는데도 거의 30분은 소요되었다. 도로에 다양한 색상의 응원봉 물결은 장관을 이루었다.
음악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소리도 지르고, 따라부르고, 응원봉도 흔드는 모습은 도도하고 웅장한 역사의 물결을 느끼게 했다. 한번 터진 둑은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막을 수 없다. 아래로 흘러갈 수로 더 불어나고 더 광대하고 속도도 더 빨라질 뿐이다. 해결은 오로지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것 뿐이리라.
행진대오를 이탈해서 촛불행동이 주최하는 120차 전국집중 집회를 보기 위해 안국역으로 갔다. 얼마나 모여 있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여기도 대규모의 집회참가자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턱 밑에서 진행하는 집회라 그런지 열기도 높았다. 안국역에서 현대사옥을 지나 창경궁까지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는 4시 30분부터 시작을 해서 집회가 막바지에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공연의 노래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를 부르고. 집회를 마쳤다. 구로 동지들이 있는 명동으로 가려했으나, 우연히 고려대 촛불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부는 송년모임에 간다고 해서 함께 뒤풀이를 했다.
뒤풀이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중에 신결역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는 선배도 집회 마치고 들어가는데 아쉽다고 만나서 2차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구로역에서 만나 따뜻한 정종을 마시여 오늘의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민중가요를 읇조린다. ‘동지여! 하루에 무용담을 말하세...’ 춥고 힘들었지만 전선에서 만난 동지들과 함께 마무리를 해서 너무 행복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조기축구를 마치고 점심을 하고 축구회 회의를 마치고 집에 오니 오후 3시였다. 그런데 남태령에 나간 처형과 함께한 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국농민회의 전봉준투쟁단이 트랙터를 끌고 대통령관저까지 가는 투쟁 중인데 남태령에서 대치중이니 나오라는 것이었다.
모바일로 찾아보니 밤새 대치중이고 전봉준 장군의 우금치가 현재 남태령이니 나오라고 한다. 어제 집회에 오늘 축구에 많이 피곤했으나 할 수 없이 출발했다. 사당에 도착하니 경찰버스를 뚫고 트랙터는 대통령관저가 있는 한강진으로 가고 시민들은 지하철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당역에서 여인 3명을 만나 화장실만 다녀오고 곧바로 한강진역으로 전진했다.
지하철이 만원이 되었고 다들 피곤한 기색인데도 “즉각체포, 파면하라”는 구호를 부른다. 도착하니 시민들이 집회대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발언이 시작되고 집회대오를 잡으려는데 뒤에서 트랙터가 당당한 위용으로 들어오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모세의 기적처럼 모두 일어나 공간을 만들고 가운데 길을 터주었다. 트랙터를 몰고오는 농민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연서 감사를 표시하고, 연도의 시민들은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를 계속 외쳤다. 감격의 뭉쿨함이 가슴에서 눈으로 이어졌다.
1894년 우금치전투에서 농민군이 패한 이후에 최초로 한강을 넘는 농민투쟁이었다는 사실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감동보다도 10,20,30대 젊은이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했다는 사실이 더 극적이었다는 농민은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태령에서 포기를 하려고 했으나, 젊은 응원봉의 불빛이 늘어나면서 울려퍼진 “차빼라! 차빼라!”의 함성은 감사할 뿐 아니라 죽어도 잊을 수 없다고 아니, 잊지 않겠다고 나이든 농민은 이야기했다.
3명의 여인과 이태원역에서 뒤풀이를 했다. 남태령에서 숨은 지지자들이 음식배달도 보내고, 난방용품들도 보내고, 기발한 아이디어인 난방버스도 보였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모두가 감동이었고, 새로운 집회문화의 업그레이드까지 확인했다.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으면 좋겠다.
식사를 마치고 10.26 이태원참사 기억장소를 찾았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으나 어제보다 더 행복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