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차 촛불집회는 주말인 12월 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에서 개최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18차 촛불집회는 주말인 12월 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에서 개최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급박하고 촘촘하게 달려온 12월 7일을 보내고 고뇌와 흥분을 잠재우지 못하고 후기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와 소식들로 온나라가 들끓고 있고, 나의 시야는 좁고 일상의 압박은 깊으니 어찌할까 생각은 깊었다.

그러나 작은 파편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폈다. 큰 흐름을 따라가고 있으나, 근접의 어려움이 있어 집회와 행진을 따라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소회를 기록했다.

118차 촛불대행진은 긴급 전국집중으로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18차 촛불대행진은 긴급 전국집중으로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18차 촛불대행진은 긴급 전국집중으로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18차 촛불대행진은 긴급 전국집중으로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18차 촛불집회는 주말인 12월 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 세종대왕상 옆 도로(여의도버스터미널에서 쌍둥이빌당 횡단보도)에서 개최되었다. 3시에 국회앞에서 예정된 탄핵촉구집회, 오후 5시 국회의사당의 탄핵결의안 투표로 진행되는 날이었다. 오후 일정이 매우 급박하고 촘촘하게 진행되었다.

117차까지 달려온 윤석열퇴진 집회와 행진에 결정을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시에 도착한 여의나루역은 이미 수많은 인파로 이동속도가 떨어졌다. 집회장에 가는 길에도 수많은 깃발과 참석자들로 만원이었다. 더욱이 전국집중집회로 변환하여 지방과 서울, 수도권의 지역을 표시하는 깃발 천지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와 찰칵!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가수 백자가 무대에 올랐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가수 백자가 무대에 올랐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여기서 중요한 특징이 전에는 4,50대가 주축이었으나 오늘은 2,30대가 대다수였다. 아니 참석자들의 숫자가 많아서 기존의 주축을 뒤덮고 새로운 세대가 주축을 이룬 것이다. 참석 인원이 수만 명 되었고 여기에 젊은 세대가 엄청나게 나왔다는 것이 정확하다. 역대 최대의 인파로 200미터의 도로를 가득 채웠다.

손피켓은 이미 바닥을 보였으나, 각자가 만들어온 홍보물과 응원봉이 대세였다. 탄핵이 새겨진 파란풍선도 다 나갔다.

집회를 마치고 3시 탄핵촉구집회가 예정돼 있는 국회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집회를 마치고 3시 탄핵촉구집회가 예정돼 있는 국회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여의도공원에도 인파가 몰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여의도공원에도 인파가 몰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시간의 집회를 마치고 3시 탄핵촉구집회가 예정된 국회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미 국회앞 집회장소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이 행진은 산업은행 앞 도로로 전진했다. 인파는 10만을 넘어 100만으로 가고 있고, 집회장으로 갈 수 없으니 외곽도로에 자리를 잡았다.

국회 앞에서 여의도공원 중앙광장을 넘어, 여의도역까지 인파가 몰렸다. 참석자 너무 많아서 집회 주최자와 자원봉사자의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거기다 통제 없이 자리를 잡다 보니 사람들의 간격이 촘촘해지고 움직이기 어렵다.

여기다가 서강대교에서 여의2교로 이어지는 국회대로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강대교 쪽은 여의나루역, 들어오지 못하는 버스에서 내려서 도보로 걸어왔다. 여의2교는 당산역에서 걸어 들어 오고,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 왔다. 여의도역은 이미 무정차가 되어서 대방역이나 근방 버스에서 내려서 국회쪽으로 걸어서 들어왔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국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산업은행 뒤편 도로에서 즉석 소집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수많은 인파가 몰려 국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산업은행 뒤편 도로에서 즉석 소집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각자의 자리에서 집회를 열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는 소집회들로 전환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각자의 자리에서 집회를 열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는 소집회들로 전환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그래도 집회장의 마이크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본무대가 너무 멀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접근을 할 수도 없었다. 접근을 포기하고 산업은행 뒤편 도로에 자리를 잡았으나 여기도 인파가 가득하다.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집회를 열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는 소집회들로 전환되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인원이 참석한 것이다. 그때도 여기저기서 축제의 장들을 열었다. 그때와 같은 양상을 보여주며 나름대로의 집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어둠이 오고 탄핵투표가 불성립으로 결정이 되면서 장탄식과 즉각퇴진의 구호가 최절정을 이루었다. 9시가 넘어가고 인파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밤이 늦어지고 열기는 줄어갔으나, 울분에 돌아서지 못하고 구호와 노래로 자리를 지키는 인파는 국회를 바라보며 버텄다.

여의도공원을 빼곡히 메운 탄핵촉구집회 참가자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여의도공원을 빼곡히 메운 탄핵촉구집회 참가자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이때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주로 젊은 학생, 직장인들이 아이돌의 응원봉을 흔들고, 민중가요가 아닌 K팝으로 대표되는 노래들이 스피커에서 울려퍼지자 젊은 군중들은 떼창으로 따라 부른다. 마치 콘서트장이 열린 착각이 들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즉각퇴진을 외치는 구호도 나왔다. 소위 대단한 장관이 펼쳐지고, 퇴진할 때까지 참석하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퇴진하는 그날까지 역사의 현장에서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맹세했다.

기성세대가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화를 시작하였으나 신세대는 오직 노래와 외침으로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이제야 들불이 타오른 것이다.

전에 집회와 행진을 ‘젖은 장작’과 같다고 평가를 하였으나 이제야 ‘마른 장작’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장작을 넘어 산과 들판에 번지고 강력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온 세상을 태워버릴 기세를 보였다. 역시 젊은이들이 붙어야 결판이 난다는 역사의 진리가 나타났다. 매일 매일 나오고 결판 2차 탄핵의 날을 기다린다.

무당이 계엄령 선포하라 하드나?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무당이 계엄령 선포하라 하드나?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송년모임을 뒤로하고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송년모임을 뒤로하고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토요일이라 대학교 동아리 송년모임을 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집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집회 후에 여의도에서 진랭하기로 하였으나, 모임을 다음으로 연기하고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중학교동창 송년 모임도 하려고 했으나 친구들에게 집회 끝나고 늦게 간다고 하였다. 1박2일로 진행해서 밤 늦게 참석하였다. 이를 위해 걸어서 대방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야 했다.

가족들도 참석했으나 얼굴은 못 봤다. 딸은 카드를 달라하고 친구들과 참석했다. 카드 결제시간이 11시 30분이 넘은 것을 보니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다음주에 또 나온다고 했다. 모든 모임의 대화 내용은 탄핵 뿐이다. 선후배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이런 것을 보니 곧 탄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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