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군신신부부자자와 진짜 제목
 

이보다 앞서 배우 공길(孔吉)이 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고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60권, 연산 11년 12월 29일 기묘 2번째 기사)

“광대 공길이 연산군 앞에서 말한 내용을 한자로 쓰면,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이네.
쉽게 설명하면, 맡은 역할에 충실 하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라는 그림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다시 그림을 살펴보세.
고양이가 병아리를 낚아채 도망가고 있네. 고양이의 역할이 뭔가? 쥐를 잡는 것일세. 쥐를 잡아야 하는 고양이가 엉뚱한 병아리를 해치고 있네. 병아리는 사람에게 유익한 가축일세. 따라서 결코 고양이의 먹이로 주지 않네.”

“그동안 쥐를 잡았던 공적도 있고 친하게 지냈을 고양이에게 장죽을 휘두르며 몸을 던지는 남자의 행동은 너무 과하지 않는가?”

“핵심을 짚었네. 바로 이 지점이 이 작품의 격일세.
앞서 정조 임금은 ‘속된 화가가 아니다’라며 김득신을 칭찬했네. 과연 김득신은 타협하지 않았네. 고양이가 아무리 귀엽고 앞선 공적이 있다고 하나 쥐를 잡지 않고 병아리를 해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지.”

“문득,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그린 것인지 의문이 드네.”

“정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일세.
먹이 경쟁에 밀린 들고양이가 닭이나 병아리를 잡아먹는 일은 흔했을 것이네. 그러니 튼튼한 닭장을 만들고 병아리는 망태기 같은 곳에 넣어 키웠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고양이는 들고양이가 아닐세.
벌건 대낮에 사람이 있는 마당의 병아리를 공격했네. 평소 쥐를 잡도록 접근을 용인한 고양이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네.
달리 말하면, 내용을 만들기 위해 상황 연출을 한 것이지.”

“헐~ 병아리를 물고 도망가는 고양이가 뒤를 돌아 사람을 보는 것도, 뭔가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군.
그러니까, 들고양이는 외부의 적이지만, 백성이 용인한 집고양이는 관료, 벼슬아치를 뜻한다는 말이군.
결국 김득신은 들고양이가 아니라 집고양이를 의도적으로 그렸다는 말이군.
아무튼, 사람들은 이 그림을 그저 한바탕 소동으로 감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림을 보며 웃을 일이 아니군.”

“아주 심각한 그림일세. 당시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는 공자의 군군신신부부자자와 연동된 정치적 사안이었네. 이 그림은 철저히 정치적인 그림인 셈이지.”

“김득신은 중인계층인 도화서 화원이 아닌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중인이 정치적인 그림을 그리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김득신/책묘도(責猫圖)/긍재전신첩 내/22.4cm*27cm/종이에 엷은 채색/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작품의 제목을 잘못 정했다. 야묘도추, 파적도라는 제목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알기 어렵다. 진짜 제목은 책묘도라고 해야 한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김득신/책묘도(責猫圖)/긍재전신첩 내/22.4cm*27cm/종이에 엷은 채색/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작품의 제목을 잘못 정했다. 야묘도추, 파적도라는 제목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알기 어렵다.
진짜 제목은 책묘도라고 해야 한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두 가지 바탕이 있네.
김득신의 벼슬은 초도첨사(椒島僉使)이네.
초도는 남포의 군사기지가 있는 섬이고, 첨사는 종 3품의 무관직일세. 그러니까 초도라는 섬에 있는 부대의 수장이라는 말이네.
하지만 도화서의 최고 직급은 종 6품으로 더 이상의 진급은 없네.
이 말은, 김득신이 초도첨사라는 벼슬을 돈을 주고 샀다는 것일세. 물론 실제 근무하지 않는 명예직이네.
알다시피, 공명첩과 고신첩은 태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있었던 공식 제도였네.
당시 중인들의 매관매직(공명첩, 고신첩)은 광범위하게 일어났네.
법적으로 양반과 중인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지.
김득신뿐만 아니라 당시에 활동했던 신윤복을 비롯한 수많은 화원이 매관매직을 통해 양반이 되었다네.
중인들은 정치에 개입할 법적 장치를 스스로 만들었네.
따라서 김득신이 정치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법적인 문제 삼아 탄핵하거나 비난하지 못했네.”

“김득신이 스스로 판단하여 정치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말인가? 놀랄 일이군.”

“선배였던 단원 김홍도도 독자적인 정치 그림을 그리지 못했네. 그보다는 좀 더 확실한 근거가 있네.
정조 임금의 정치 행위를 뒷배로 하여 창작했을 가능성이 있네.
정조 임금이 한 말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정조 임금은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쥐를 잡기 위한 것인데, 쥐가 있어도 잡지 않는다면, 그런 고양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지금의 포도청은 실로 이와 비슷한 형국이다.’라고 비유했네.”

“포도청(捕盜廳)은 그야말로 도둑을 잡는 관청이 아닌가. 쌀을 훔쳐먹는 쥐를 잡는 고양이와 같은 역할이네. 나라의 곳간을 훔쳐먹는 탐관오리를 잡지 못한다면 백성이 고통받겠지.”

“군군신신부부자자처럼 포도청이 제 역할을 하라는 취지로 비판한 것일세. 이런 임금의 생각을 자비대령화원이었던 김득신이 그림에 담았을 가능성이 크네.
임금이 직접 명령했거나 규장각 관리가 기획했을 수도 있네.
정조 임금이 김득신을 신뢰한 점, 김득신이 왕의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자비대령화원이었다는 점이 근거가 되지.”

“정치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그림치곤 너무 가볍지 않은가?”

“정조 임금은 평소에도 화원에게 대중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했네. 껄껄 웃음이 나는 풍속화, 수려한 채색의 십장생도, 광통교 미술시장에서 팔릴 만한 그림을 원했네.
이런 임금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김득신은 무거운 내용을 유쾌하면서도 역동적인 붓질로 표현한 것이지.”

“지금까지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게.”

“김득신의 야묘도추의 철학적 내용은 군군신신부부자자이고, 소재는 쥐를 잡지 않고 엉뚱한 병아리를 잡아먹는 고양이는 내쫓는 것일세.
그림 속의 남자는 방건이 벗겨지고 무릎이 깨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병아리를 낚아챈 고양이를 응징하고 있네.
그림 속의 남자는 강직한 포도청 관리이자 왕이고 관료의 상징일세.“

“백성을 위한 그림이 아니군.
대통령, 국회의원, 검찰, 경찰, 고위 관직자의 집무실에 걸어두고 자신의 역할을 다짐하는 그림이네.”

“정확하네.”

“오세창이 지은 야묘도추, 파적도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제목을 다시 정한다면 뭐로 할 건가?”

“고려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이규보의 시 제목이 가장 적당하네. ‘책묘도(責猫圖)-고양이를 나무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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