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파적도(破寂圖), 야묘도추(野猫盜雛)/긍재전신첩 내/22.4cm*27cm/종이에 엷은 채색/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 – 심규섭]
김득신/파적도(破寂圖), 야묘도추(野猫盜雛)/긍재전신첩 내/22.4cm*27cm/종이에 엷은 채색/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 – 심규섭]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 그렸다.
김득신...
영조 30년에 태어난 순조 22년까지 살았다.
조선 최고의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며 도화서 화원이자 자비대령화원이었다.

흔히 단원 김홍도와 비견한다.
단원보다 9살 아래였지만 단원의 그림을 좋아했고 따랐다.
김득신에 대한 평가는 제법 많이 남아있다.

정조 임금은 김득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붓을 마음대로 다룰 줄 안다.”, “속된 화가가 아니다.”, “영모(새와 동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화원들 가운데 으뜸이다.”

이만하면, 김홍도의 명성에 가려 만년 2인 자로 살다 간 화원이 결코 아니다.
당대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최고 화원인 것이다.

작품을 살펴보기 전에, 이 그림의 빌런(악당)은 고양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복사꽃이 핀 평범한 봄날이다.
집 뒤쪽에서 잔뜩 웅크리며 노려보던 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순간적으로 낚아챘다.

“야아아아옹~쉿, 꽉!”

“삐아악~”

병아리들이 혼비백산 놀라서 달아난다. 몸보다 본능이 앞서니 다리가 따라오지 못한다.

“삐삐삐~악, 삐삐악악~, 삐르르악~, 삐뽀삐뽀~”

새끼들의 비명을 들은 암탉이 홰를 치며 고양이를 쫓아간다.

“꼬꼬댁! 빠드득 푸드득 까오옥~”

김득신도 흥분했던지 암탉 다리를 사람처럼 그리는 오류를 범했다.
마루에서 돗자리를 짜던 남자가 이 모습을 보자, 순간적으로 장죽을 휘두르며 고양이에게 몸을 던졌다.

“네 이놈! 괭이 놈이 병아리를 물고가네. 게 서거라.”

이 과정에서 쓰고 있던 사방관(방건)이 벗겨지고 돗자리를 짜던 틀과 짚단이 넘어졌다.

“우당탕탕~”

아내는 갑작스레 쓰러지는 남편의 행동에 놀랐다.

“아이고, 여보, 이게 뭔 일이유.”

병아리를 채가는 고양이보다 쓰러지는 남편을 잡기 위해 두 팔을 뻗었다.
10초 상간에 일어난 상황이다.
마치 수십 대의 카메라가 사방에서 찍은 모습을 한 장면에 모은 것처럼 역동적이다.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는 단군 할아버지가 이 땅에 나라를 세운 이후로 움직임을 압축한 최초 최고의 그림이다.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난리가 났군. 남자의 장죽과 암탉의 공격에도 고양이는 여유 있게 쳐다보면서 도망가고 있군.”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겠네. 고양이가 처음 도망가는 방향이 어디였을까?”

“좌측으로 뛰고 있지 않은가? 암탉이 쫓아가는 방향도 그렇고.”

“시간을 순차적으로 꿰어보면, 고양이는 복숭아나무가 있는 뒤편이 숨어있다 병아리를 낚아챈 다음 다시 그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네. 그런데 남자가 장죽으로 공격하자 급히 방향을 좌측으로 틀었네.”

“김득신은 새와 동물그림을 잘 그린다고 정조 임금에게 칭찬까지 받지 않았나? 그런데도 암탉의 다리를 사람 다리처럼 안으로 굽게 그린 이유는 뭔가?”

“갑자기 방향을 튼 고양이를 쫓다 암탉의 다리가 뒤엉켜 버렸네. 그 상황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이네.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지만,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네. 그리는 화가의 마음과 암탉의 마음이 교감한다고 해야 하나,”

“너무 자의적인 평가가 아닌가? 그냥 잘못 그렸다고 하면 될 것을.”

“암탉의 다리는 그림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닐세. 그런데도 이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네. 글의 후반부에 설명해 줌세.”

“그건 그렇고. 보통은 동물에 사람의 생각을 투영하여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런데 우리 그림에서 동물과 사람이 동시에 등장하는 그림도 처음 보는군.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느낌적인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저 병아리를 잡아먹는 고양이를 그린 평범한 그림이 아닐세. 고양이를 따라가다 보면 이 그림의 핵심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네.”

“이 작품의 제목을 파적도, 야묘도추 두 개로 부르는 이유는 뭔가?”

“파적도(破寂圖)는 적막한 시공간을 깬다는 의미일세. 야묘도추(野猫盜雛)는 글자 그대로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친다는 말이네.
야묘도추가 고양이를 중심으로 그림을 설명한다면, 파적도는 조용한 집안이 중심이고 고양이가 깨고 있다는 의미이지. 사실, 두 제목 다 어설프네.
화제(畫題)는 그림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고, 감상자가 엉뚱하게 해석하지 않도록 역할을 한다네.
그런데,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는 화제를 잘못 지은 대표적인 그림일세.”

“결국 고양이가 악당일세. 고양이가 병아리나 쥐를 잡아먹는 것은 본능인데, 꼭 그렇게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우리 선조들은 고양이를 싫어했는가?”

“싫어하지 않았네. 오히려 좋아했지. 고양이는 이 그림에서 모든 행동을 유발하는 핵심 요소일세. 고양이가 없다면 이 그림은 애초에 그려지지 않았을 것일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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