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을 떠올렸다. 관음보살은 천수천안이 의미하듯 중생의 고통을 다 살펴보고 어루만져 주는 자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지금도 지옥문 앞에서 그곳 중생들이 다 나갈 때까지 구제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공동체를 자신보다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사는 자가 바로 보살이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보살들이 사회 곳곳에 있어 붕괴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의 고통을 온 몸으로 껴안고,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자신의 것인 양 인류의 채무를 갚아나가는 그들이야말로 내가 평생 공부해온 불법의 주인공인 불보살들이다. 인간의 무명(無明)을 타파하기 위해 쏟는 그들의 고난의 발걸음은 우리가 경외하는 세계 모든 종교 경전의 진정한 주석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주인공은 인간 탐욕의 중심부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공멸에 이를 것이라며 그 욕망의 해체를 외치고 있다. 인간이 핵(核)을 건드린 것은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린 것이다. 우리는 길옆에 활짝 핀 꽃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왜 저 꽃이 하얀색이며, 이 꽃은 노란색인지 모른다. DNA의 구조는 현미경으로 볼 수는 있어도 누가 그렇게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자연의 신비를 알기 위해서는 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소유한 신처럼 행위한다. 핵무기와 핵발전소는 가짜 신이 된 인간이 이 신비를 파괴하며 저지른 죄악이다.
책 제목인 ‘싸놓은 똥은 치워야지 않것소’는 노병남(이하 존칭 생략) 영광농민회 회장이 한 얘기임을 본문에서 알게 되었다. 그는 현재 6기를 운영하는 영광 한빛 핵발전소 부지 내에 고준위 건식저장시설을 만드는 것에 대해 “화장실 없는 집을 지어 놓고 임시화장실은 짓고 살다가 40년 된 낡은 집을 부술 때가 되니 추가로 임시화장실을 짓고 10년 더 살겠다는 짓거리예요”라고 말한다.
여기에 핵발전소의 본질이 다 들어있다. 그렇게 청정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이라는 핵에너지는 핵마피아들이 만든 거짓 신화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핵발전소를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이나 경기도 한 복판에 짓지 않는가.
이미 1986년의 체르노빌이나 2011년의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고장과 붕괴는 핵발전소가 이떻게 인류문명을 황폐화 시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핵발전소의 방사능 방출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보여주듯 지구를 인간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적으로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높은 암발생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고·중·저준위 핵오염물질을 영구히 보관할 장소를 찾아 묻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특히 수만 수십 만 년에 이르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는 후손들에게 막대한 빚을 물려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는 에너지 정책에 있어 그 폭력을 지방에 행사하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증인들이다. 무모하고도 반문명적인 핵발소의 거짓됨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황분희, 장마리, 이규봉, 장영식, 김용호, 김영희, 노병남, 이옥분, 오하라 츠나키, 용석록은 거대한 골리앗에 당당하게 대항한 다윗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 심지어는 언론의 폭력에 맞서며, 이웃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우창과 이태옥은 2023년 한 해 동안 발품 팔아 전국의 탈핵 및 반핵 운동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그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한국의 사회학은 지금까지도 외국의 이론을 들여와 이 사회에 적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나라의 사회학은 그 나라의 현실을 분석한 것이다. 당연히 이 나라의 현장이 바로 한국 사회학의 근거가 된다. 이 책은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 문제가 있으며, 현장에 답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주인공들은 핵정책의 모순, 핵발전소의 건설과정과 운영의 부조리, 핵마피아들의 기만과 불의와 비겁함을 폭로하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고통과 절망을 짊어진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피눈물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주고 있다. 그들의 숭고한 행위가 이렇게 활자로 기록되고 기억되도록 한 것에 언어의 참된 가치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의미를 한 마디로 한다면, 지금까지 나온 많은 탈핵 교과서가 주장하는 그 당위론을 현장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문 없이 매일 전기를 소비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이들 탈핵 운동가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탈핵 전문가들이다. 물론 이들의 주위에는 양심 있는 학자, 언론인, 정치인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연대하며 탈핵의 최전선에서 위험에 처한 인간을 위해 자애(慈愛)의 마음을 쏟고 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월성 핵발전소 최 인근에 사는 황분희는 후쿠시마 원전폭발 이후 가족을 지키고자 탈핵운동가가 되었다. 그녀는 10년 넘게 핵발전소 앞에서 상여를 이끌고 있다. 방사능 오염지에 가족들을 끌어들여 함께 살자고 한 것에 미안해하면서 손자들이 집에 놀러 오는 것에 대해서도 망설인다. 이미 피폭이 된 자신은 그렇다고 쳐도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손자가 걱정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심정으로 고통의 부메랑이 이웃과 후손들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반문명적인 핵발전소의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몸으로, 펜으로, 카메라로, 법률로, 때로는 경찰과 발전소 용역들에게 짓밟히며, 자본의 주구인 언론의 거짓과 싸우며 이 거대한 폭력의 쓰나미 앞에 거연히 마주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소중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이옥분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홍보실장은 주민들과 함께 세 번의 반핵투쟁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원전 백지화를 이끌어냈다. 절망을 희망으로 뒤집은 것이다. 지구 곳곳에는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이옥분들’이 분연히 싸우고 있으며, 따라서 머지않아 세계 420여 기의 핵발전소도 해체될 것이다.
자연이 주는 순환에너지를 소중하게 사용할 날이 반드시 온다. 인류를 향한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한 그들의 지혜와 용기와 행동이 곧 기도이며 불공이자 참된 종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불장난인 핵발전소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고, 그 사이 고통받는 모든 이웃들을 치유하는 길만이 지구 전체가 후쿠시마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야말로 탈핵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진하는 선구자이자 선지식이다. 평범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두 손 모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