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기괴한 8.15기념식입니다. 광복회와 야당 등이 불참한 가운데 열려 ‘반쪽 행사’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는 기괴한 8.15기념식이 된 터에 경축사에서도 기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해서는 사실상 한마디 언급 없이 오직 ‘북한’만을 때렸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북한을 향한 ‘통일’ 메시지만 난무합니다. ‘통일!’ 물론 환영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기괴하게도 ‘자유통일’만 무성합니다.

이번 8.15경축사를 두고 일부에서 ‘통일 담론’ 제시니 ‘통일 독트린’ 발표니 하는 평들이 난무한 데, 모두 언어의 유희일 뿐 그럴만한 내용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무릇 담론이란 어떤 중요한 의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논의를 펼치는 것인데, 통일 문제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할 아무런 이야깃거리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트린의 경우에도, 윤 대통령이 북측에 대해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는 맞겠지만 그게 ‘통일 독트린’이 아니라 ‘통일’이란 외피를 쓴 사실상 ‘대결 독트린’이란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 모두에서 “완전한 광복은 통일”이라며 그럴듯하게 시작하다가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 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별안간 북측을 압박하면서, ‘자유 만능주의’를 앞세워 예의 ‘자유의 북진’을 통한 ‘자유통일’을 주장합니다. 이는 ‘자유’를 매개로 해 일방이 타방을 먹겠다는 ‘흡수통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거창하게 3대 비전, 3대 추진 전략, 7대 통일 추진 방안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추구하겠다면서 이른바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합니다. 이 독트린에서 핵심인 3대 추진 전략은 “첫째,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더욱 확고히 가져야 하고, 둘째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며, 셋째는, 국제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내·북한·국제사회에 오직 ‘자유통일’만을 난사합니다.

특히, 둘째 ‘북한편’에서는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하고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는데, 이는 북측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 넣어 흡수통일을 이루겠다는 전투적 의지입니다. 게다가 북측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란 북 체제 붕괴 시도를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재개 방송을 넘어 그 이상을 시도하겠다는 심사입니다.

통일에는 상대방이 있습니다. 북측의 현실과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게다가 ‘자유’는 중요하지만 통일의 가치나 원칙이 ‘자유’ 하나일 수만은 없습니다. 나아가 통일원칙과 관련해서는 남과 북이 이미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해 천명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 있습니다. 물론 북측이 올해 초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라고 선언하면서, 위 ‘조국통일3대원칙’을 폐기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통일은 여전히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이 북측에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가 아닌 자유의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것은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북측이 반발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났으니 다행(?)이기도 합니다. 8.15 이전부터 언론에 나돌던, 통일방안을 건드렸다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지러웠을 것입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제시되었다가,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재정립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말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사라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윤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 발표로 통일을 염원하게 된 것이 아니라 민족갈등을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 난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 대북 적대정책을 펴온 윤 대통령이 갑자기 통일을 말한다고 해서 화해의 따뜻한 소리가 아닌 대결이라는 음습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8.15경축사는 ‘통일 독트린’이 아닌 ‘대결 독트린’으로 전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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