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언제쯤 평화체제로 전환 될 수 있을까? 냉전(Cold War)도 전쟁(war)상태인 것은 마찬가지다. 합의에 의한 정전(Ceasefire) 상태일 뿐, 현재도 한반도는 전쟁상태다.
전쟁(Hot War)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가?
전쟁은 전쟁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익이 군사 개입으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될 때 시작된다. 군사개입(전쟁)으로 인한 이익이 첫째 이유다.
북한의 경우 자국이 타국에 의한 핵공격을 받거나 받을 위협이 매우 높다고 신빙성을 가지게 된다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용을 주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상대국의 전쟁 개입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① 전쟁억지력 보유(1차 선제공격을 받은 후 곧바로 보복 능력 보유),
② 상대국이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억지력의 실행의지,
③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상대방에게 명확히 알리는 ‘의사전달’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북한의 경우, ①번 전쟁억지력 보유에 대해서는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 성공(수소폭탄)과 2017년11월 29일 사정거리 13,000km의 ‘화성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②번 실행의지 또한 매년 발표되는 신년사와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체제 유지 보존과 인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타국에 의해 북한이 공격을 받게 될 경우에는, 지체없이 즉각적으로 사용할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실행의지 표현이 단순 레토릭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Reputation(말에 대한 실행력)를 감안해 볼 때 충분히 Credibility(신뢰)할 만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언제부터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북한 고위급외교관 출신 탈북민 태영호의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성공 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상황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미군 등 유엔군의 전선이 매우 불리해지자 흥남부두 철수 작전이 개시되기 전, 북한 지역에서는 미군이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주민들의 심리적 공항 상태가 발생해 통제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김일성은 핵무기의 위력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핵무기 개발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당시의 핵무기의 위력과 공포로 1956년 물리학자 30여 명을 소련 합동원자핵연구소로 파견해 원자력 기술을 배우러 간 유학생들에게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42쪽)
중소관계가 우호적 시기인 55~57년 사이에 중국도 핵연구자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내 핵관련 기술들을 배워 오도록 하였고 소련도 많은 지원을 하며 도왔다.
하지만, 이념을 공유하는 중국과 소련의 분쟁이 50년대 말부터 격화되어 60년대 초에 파탄 나는 것을 지켜보던 북한에서는 1955년 ‘사상에서의 주체’, 56년 ‘경제에서의 자립’, 57년 ‘정치에서의 자주’, 62년 ‘국방에서의 자위’, 66년 ‘외교에서의 자주’를 표명하면서 ‘주체사상’을 정립해 나가면서 자체적으로 핵 개발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태영호의 위 책에 의하면, 1975년 베이징을 방문 중인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핵 개발 비용에 대해 묻자, 모택동이 “조선은 핵무기를 가질 꿈도 꾸지 말라”는 핀잔만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위 책 44쪽)
미국은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다. 즉, 자본(돈)을 최고 우위에 두는 국가체제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보면, 모두가 하나같이 자본의 축적과 관계가 깊은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다.
2020년 현재, 가장 많은 난민을 대표하는,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등은 미국의 전쟁개입이 있기 전까지는 지구상에서 최악의 인권탄압국도 아니었고, 가장 살기 어려운 최빈국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이 관여된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살아가기 어려운 국가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미국의 침공이 정의와 자유를 위한 전쟁이라 말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다수 북한전문가의 견해가 북한이 구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확고하게 결정한 계기가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라는 견해다. 이라크에 있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명분하에 정상국가 이라크가 침공당하고 지도자 후세인이 잡혀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 본 북한의 지도자 입장에서는 핵개발로 인한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핵무기 개발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많아야 이제 핵무기 20-50개 보유 중인 북한이 핵무기 보유수(5,800개)와 위력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미국을 선제공격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핵무기 보유의 목적이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자국에 대한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억지력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나, 북한 입장에서는 1994년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후 미국에 의한 정밀 핵타격(Surgical strike)의 대상이 되었고,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통해 듣게 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목표물로 종종 언급되는 기사를 접하게 되는 상항이다.
북한이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은 세계무역기구(WHO)에 가입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피할 수 없는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리비아에 취했던 사례를 북한에 적용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처 버릴 수 있는 확실한 ‘체제보장’과 ‘제재 해제’, 그리고 ‘내정불간섭’에 대해서는 국제법, 미국의회법 등은 물론 대한민국과 인근 6개국 등이 불가역적인 확실한 보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길고도 험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종착점인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중심을 단단하게 잡고 가야 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 접경지 북파주 파평출신 미군이 지어준 재건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로 중학/고등과정 수료
- 한국외대 졸업, 북한대학교대학원 석사(북한학), 경기대정치전문대학원 박사(북한학)
- 예술마을 헤이리에 2007년 ‘영토문화관 독도’를 사비로 개관 후 현재까지 운영중
- 15년 넘게 매년 독도탐방을 하고 있으며, 군부대/공무원/학교등 독도전문강사로 강연중
- 파주시 교육위원(현)
- 성서한국 공동대표(현)
- 파주 겨레하나 초대 및 2기 대표 및 고문(현)
- 철원 국경선평화학교 감사 및 건축위원
- 벤처기업 ㈜두레샘 대표이사
- 고향인 장파장로교회 장로(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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