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갈등관계 속의 소강상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윤석열 정부 현재에 이르기까지 5년여에 걸쳐 남과 북은 첨예하게 대립해 오다가 지금 잠깐 주춤하며 쉬고 있는 참입니다.
이러던 터에 남북 간에 두 가지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비교적 ‘익숙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다소 ‘어색한’ 장면입니다. 전자는 파리올림픽에서 나왔고 후자는 북측의 압록강 수해에서 비롯됐습니다.
‘익숙한’ 모습이란 지난달 30일 2024 파리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남북 선수들이 함께 사진을 찍은 사건(?)입니다. 은메달을 받는 북측 선수들과 동메달을 받는 남측 선수들이 금메달을 받는 중국 선수들과 함께 시상대에 섰는데, 시상식 이후 남측 선수의 주도 하에 함께 셀카를 찍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언론은 “남북이 하나 되는 역사적인 셀피(셀카)”,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뜻깊은 이미지”라는 평을 합니다. 이 같은 장면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허용한 “빅토리 셀피”(Victory Selfie)가 처음 도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남과 북의 선수들이 스스럼없이 함께 사진을 찍는 장면은 최근 남북 간 분위기로 봐서는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남북 탁구사를 일별해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저 유명한 1991년 ‘현정화-리분희’ 데자뷔 때문입니다.
당시 남북 단일팀은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현정화와 리분희를 앞세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남북 탁구사에서 ‘전설’이 된 남측 현정화와 북측 리분희를 본받은 후배 선수들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단일팀을 이루진 못했어도 시상대 위에서 만난 김에 함께 셀카를 찍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어색한’ 장면이란 지난달 28일 집중호우로 인한 압록강 범람 등으로 신의주시와 의주군 일대에 입은 북측의 수해를 둘러싼 남북 간 공방입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김정은 위원장이 즉각 홍수 피해현장을 찾아 수해지역에서 3일간 머무르면서 주민구조와 대피를 직접 지휘할 정도였습니다.
북측은 4,100여 세대에 달하는 주택과 약 3,000정보의 농경지를 비롯해 여러 시설물과 도로, 철길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남측 일부 언론이 북측 인명피해가 1,000명 또는 1,500명이 넘는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며, 남측 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형식적인’ 대북 수해지원을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북측은 남측의 수해지원 제의에는 묵묵부답하면서, 김 위원장이 2일 “(남측 언론이)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면서 남측에 대해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표현은 올해 초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남북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는 언명의 연장입니다.
남북 간에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도왔던 역사가 있습니다. 1984년 남측이 수해를 입었을 때 북측이 지원했으며, 이후 북측이 수해를 입었을 때에도 특히 남측 민간이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북측이 압록강 수해를 입었는데 남북이 서로 돕는 익숙한 광경이 아닌 서로 데면데면하거나 비난하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남북 스포츠 선수들엔 경계선이 없는데 당국 사이엔 장벽이 있는 것일까요? 앞에서도 밝혔듯이 올해 초 북측의 ‘남북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관계’ 선언 이후 남과 북이 전략적 조정기에 접어든 지금, 당분간 남북 간에는 익숙하거나 어색한 장면이 번갈아 일어날 것입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