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건국(668년) 1300년되는 해에, ‘발해1300호’로 명명된 뗏목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틱 항을 출항하였다.
길이 15m 뗏목은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졌고, 뗏목에는 탐사대원, 대장 장철수(당시 38살), 선장 이덕영(49살), 촬영 이용호(35살), 통신 임현규(27살)가 타고 있었다.
탐사대원들은 ‘무모해 보이는 뗏목탐사를 왜 하였는가?’에 대한 답으로 평소 장철수 대장이 외처오던, 아래 외침에서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본격적인 해양 시대가 될 것입니다. 바다 영토분할에 대한 싸움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독도 문제는 땅의 문제가 아니라 바다의 문제입니다. 독도를 빼앗기는 일은 한반도 넓이의 바다 영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주1]
1997년 12월 31일 출항 당시 장철수 대장은 출항사에서, “지금까지의 일들은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필코 해낼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개척의 용기입니다. 이것이 발해 1300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주2]라고 낭독했다. 그는 바다는 포용의 마음이고, 포용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항해 17일부터 이틀간의 심한 폭풍 후 19일부터 이틀간 잠잠하던 바다는 항해 21일째부터 다시금 폭풍주의보로 돌변하였고, ‘발해1300호’는 자력으로 항해 방향을 바꾸기엔 이번 폭풍은 너무나 거대했다.
발해 1300호는 사나운 폭풍에 밀리고 밀려 당초 목표로 했던 부산항을 크게 벗어나게 되면서 항해 24일째 되는 날 일본 오끼섬에 부딪치며 탐사대원 4명 모두는 바다에서 산화했다.
대장 장철수는 통영 출신으로 ‘바다에 미친 사람’으로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바다에 깊은 사랑에 빠져 살아왔다. 그는, 대학 학창시절에는, ‘외대독도문제연구회’를 발족해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궐기대회보다는, 논리적이며 과학적으로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왜 대한민국의 영토인지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졸업후에는, ‘21세기 바다연구소’를 만들어 독도와 바다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 깊은 관심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독도를 통해 바다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면서, 더더욱 바다영토의 중요성을 느끼며, “21세기는 해양 시대로 지구의 사분의 삼을 차지한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자원을 잘 활용하는 나라가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주3]
선장 이덕영은 울릉도 출신으로 평생 바다와 배 밖에는 모르고 살아왔던 진정한 뱃사람이었다. 장철수를 만난 이후부터는 우리 것에 더욱 심취되어 ‘푸른독도가꾸기’ 초대회장과 ‘푸른국토가꾸기운동본부’ 본부장들을 역임하였다.
촬영을 담당했던 이용호 대원은 마산 출신으로 창원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전국대학생미술대전에서 은상과 현대미술대상전에 입상할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다. 그는 ‘제1회 바다의 날’ 기념 행사장에서 장철수 대장을 만나게 되면서 발해1300호에 참가하게 되었다.
통신을 담담했던 임현규 대원은 구례 출신으로 한국해양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마추어 무선자격증을 취득했었으며 이용호 대원을 통해 장철수 대장을 소개받아 발해1300호 탐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임현규 대원은 아프리카 오지 6개국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는 도전가이자 모험가였다.
‘영토문화관독도(관장 안재영)가 주관하는 ‘범선 코리아나호(선장 정채호)’는 ‘끝나지 않은 항해 발해1300호’ 대원들의 도전정신과 바다정신을 기르고자 31명의 탐사대원과 6명의 선원들은 2024년 6월 18일 후포항을 출항하였다.
범선 코리아나호는 출항 후 14시간 동안 밤과 낮을 쉼없이 동해바다 한가운데를 달려 19일 오전 7시에 독도에 도착하였다. 울릉군청이 정해준 입도시간 오전 8시를 맞춰 입항하기 위해 ‘코리아나호’는 독도를 천천히 한바퀴 선회하였다. 코리아나호가 독도를 선회하는 도중, 동아지도 안동립 대표가 독도의 특색과 지명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독도는 참 묘한 장소이다. 어떤 고생을 하고 찾아가더라도, 독도가 눈에 보이는 순간, 모든 고생했던 기억들은 사라지고, 애국심이 불쑥뿔쑥 솟아나게 하기 때문이다.
독도는 대한민국에 속한 3000개가 넘는 섬들중에 하나이지만 단순한 섬으로서의 가치만 보아서는 안 된다. 1994년부터 유엔해양법이 발효되면서 ‘바다영토’ 개념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 제121조 제1항에서 섬이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밀물과 썰물시에도 수면위로 보여야 하며, 제3항에서는,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곳만이 섬(island)의 지위를 갖게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섬(island)은 ‘배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200해리=약 370km)의 바다영토를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물이 없고 나무가 없는) 경우는 크기에 상관없이 암석(rock)으로 규정해놓고, 배타적경제수역(EEZ)은 물론, 대륙붕조차도 갖을 수 없는 것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독도에는 하루 약 400리터가 넘는 물이 나오는 물골이 존재하고 있으며, 나무도 자라고 있다,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 충분하기 때문에 당연히 섬(island)의 지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의 딴지걸기와 아직은 일본보다 열세인 국제적 지위로 인해 독도는 섬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지는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독도기점의 배타적경제수역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2월의 북미 하노이 회담의 실패 이후에도 6월 30일에 판문점에서의 북미정상대담과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정전 후 겹겹이 쌓여있던 북미간의 불신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을 뿐 아니라, 서로간에는 더더욱 골이 깊은 불신만이 쌓여지게 되었다.
급기야 2022년 12월에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를 ‘교전중에 있는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였다. 언제든지 남북간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2024년 5월 13일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은 “대북전단 30만장과 영상등을 저장한 USB 메모리 2,000개를 북쪽으로 보냈다”고 주장하였다. 박상학의 대북전단살포 이후 북한에서도 5월 28일부터 6월 26일까지 7차례에 걸쳐 남쪽 전역게 고루 떨어지는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정전협정 이후 북한에서는 북방한계선에서조차 제대로 된 철조망을 설치하지 않고 군사분계선(MDL)만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남북간에 오물풍선 살포이후 북한에서도 휴전선을 따라 일부 구간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다. 남쪽에 일부 언론에서는 초기에 북쪽에서 베를린장벽 같은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대다수 의견들이 상징적으로 남과 북이 서로를 관여하지 말고 살아가자는 결별의 상징성으로 쌓고 있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상징적 결별설’에 동의한다. 쌓고 있는 철책이 탱크방어용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술하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남북관계 개선은 남쪽에 정권이 교체된다고 개선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북한정권이 자력갱생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스스로 내기 전까지는 상당기간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은 2020년 새해우표 도상으로, 북한의 국수(國樹)인 소나무 위에 눈에 두텁게 쌓여있지만(주변환경의 어려움 상징), 과학기술전당 위를 노동자, 농민, 지식인이 함께(일심단결) 천리리마를 타고 비상하는 새해우표 도상 이후, 2021년에는 여전이 눈에 덮혀있는 소나무와 평양종과 평양시계를 새해우표 도상으로 하였지만, 2022년, 2023년, 2024년에는 연속적으로 동일하게, 발전하는 주택과 평양시내에 고층빌딩을 새해우표 도상으로 사용한 것을 통해 북한의 전략이 민간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게 될 것임을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정권의 전략이 남쪽과의 관계개선을 외면하면서 전통적 우호관계국들과이 관계개선을 통한 경제살리기에 집중된다고, 남북의 민간차원에서조차 손을 놓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 북한에서는 독도관련 우표를 3차(2004, 2005, 2014)에 걸쳐 발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독도를 지킨 조선 후기의 어민 안용복에 대해서는 역사소설 식으로 ‘독도지킴이 안룡복’도 발행하였다. 독도는, 남과 북을 이어지는 귀중한 보물같은 존재이고, 안용복은 남과 북에서 독도를 지킨 공통의 영웅이다. 정부 차원의 남북관계가 파탄 상태인 지금이 독도를 통한 남과 북의 민간차원 교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주
[주1] 발해1300호‘우리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2005, 명상(서울), p.36.
[주2] 위의 책, p.98.
[주3] 위의 책, p.219.
- 접경지 북파주 파평출신 미군이 지어준 재건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로 중학/고등과정 수료
- 한국외대 졸업, 북한대학교대학원 석사(북한학), 경기대정치전문대학원 박사(북한학)
- 예술마을 헤이리에 2007년 ‘영토문화관 독도’를 사비로 개관 후 현재까지 운영중
- 15년 넘게 매년 독도탐방을 하고 있으며, 군부대/공무원/학교등 독도전문강사로 강연중
- 파주시 교육위원(현)
- 성서한국 공동대표(현)
- 파주 겨레하나 초대 및 2기 대표 및 고문(현)
- 철원 국경선평화학교 감사 및 건축위원
- 벤처기업 ㈜두레샘 대표이사
- 고향인 장파장로교회 장로(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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