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 [통일뉴스 자료사진]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 [통일뉴스 자료사진]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서 장벽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정황이 정부 당국의 입을 빌어 최근 보도되고 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16일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식별되는 건 장벽이라기보다는 대전차 장애물 비슷한 방벽에 가깝고 길이는 아직 굉장히 짧다"고 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 지켜본 후에 장벽(여부)이나 대남 절연과의 연계성 문제를 판단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아직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대남노선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한 이후 군사분계선을 실질적인 국경선으로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곡괭이와 삽을 든 북한 군 20~30명이 경기도 연천 일대 군사분계선(MDL)을 50m 넘어 남하했다가  한국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 이후 퇴각한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남북간 무력충돌 위기를 직감하게 한다.

지난 9일 중부전선 DMZ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다시 살펴보자.

합참은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11일에야 관련 사실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9일 낮 12시 30분경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내에서 작업을 하던 북한군 일부가 MDL을 단순 침범했다. 경고사격 후 북한군이 즉각 북상한 것 외에 특이동향은 없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이미 정부가 9.19남북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를 선언했기 때문에 경고방송이나 경고사격없이 조준사격을 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합참 공보실장은 "DMZ는 현재 수풀이 우거져있고 MDL 표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길도 없는 상태”라고 하면서 "(북한군은) 그 수풀을 헤치고 움직이고 있었고 MDL에 근접하기 전부터 저희가 관측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무장을 하고 대부분 작업도구를 든 인민군이 작업을 위해 들어왔다가 수풀이 우거진 DMZ에서 길을 잃었던 '우발적 상황'이라고 애써 해석했다. 
 
이미 9일 새벽에는 북이 살포한 오물풍선이 서울과 수도권에 대거 날아들었고 용산 대통령실과 인접한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에도 한 뭉치가 떨어졌다. 당일 오전 10시 30분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는 이날 오후 즉시 대북 확성기방송을 재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남쪽이 대북 확성기방송을 준비하던 시각에 북한군은 DMZ안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남하한 석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날 오후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해 국군심리전단에 확성기방송 재개 명령을 내렸고 당일 오후 5시께부터 최전방에서 방송이 시작됐다. 

방송은 2시간 동안 진행되다가 9일 오후 7시에 중단됐고 이후 지금까지 잠잠한 상태이다.

확성기방송은 '단계적이고 세부적인 시행방침'에 따라 '전략적, 작전적 상황에 따라 융통성있게 시행'한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긴급 소집된 NSC 상임위가 결정하고 북한군의 특이동향까지 확인된 상황에서 국방부장관이 지시에 따라 시작된 확성기방송이 2시간만에 중단된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날 저녁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당초 9일 새벽 오물풍선을 끝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을 끝내려고 했으나 남쪽의 확성기방송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며 '새로운 대응'을 예고했다.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해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의 전주곡"이라고 하면서 "만약 한국이 국경너머로 삐라살포행위와 확성기방송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6월 9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오물풍선 수도권 낙하-△NSC 상임위 대북확성기방송 재개 결정-△북한군 MDL 침범-△국방부장관 확성기방송 지시-△확성기방송 2시간만에 중지-△김여정 당 부부장 '새로운 대응' 담화로 이어진 상황은 자칫 일촉즉발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DMZ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 주한 유엔사령부가 NSC 결정과 국방부장관의 지시 배경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나선 이유이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6월 12일 오후 유엔사 사령관을 겸직하는 폴 러캐머라(Paul J. LaCamera) 주한 미군사령관이 신원식 장관과 비밀회동을 갖고 '대북 확성기방송 재개' 과정에 대해 질의하고는 그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했다고 단독보도했다. 

다음날(6.13)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최근 오물풍선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비롯한 남북간 심리전과 북한군의 MDL 침범 사안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군사적 대응에 앞서 남북관계를 평화롭게 관리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 안보 책임을 위해서는 목청을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군사주권에 관한 책임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즈음에 드는 생각이다. 

북한군의 MDL 침범과 장벽 설치가 북의 '새로운 대응'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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