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인 북한 김정은 정권에 관한 고찰이 주로 정치군사 영역이나 경제 분야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료’ 분야를 집중 조명한 단행본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이미 1945~1970년 ‘북조선 보건의료체계 구축사’를 저술한 바 있는 엄주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이 『북조선 보건의료체계 구축사Ⅱ(2012~2023)』(도서출판 선인)를 내놓은 것.
모두 알고 있듯이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북한은 ‘자발적 봉쇄’로 이를 극복해 주목받았고, 이는 김정은 집권기의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이 책은 주로 2012~2021년 10년 간 북한 <로동신문>을 1차 분석자료로 삼았고, 코로나 시기는 부분적으로만 다뤘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은 2020년 1월부터 2023년 8월 26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의 방역 등급 조정으로 완화 조치를 통보하기까지 4년 가까이 북조선 사회를 휘몰아쳤다”며 “자발적 봉쇄 속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움직임을 본 연구에서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 예방의학 차원의 대략적인 모습만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전편에 이어 이 책 역시 각 장을 ‘WHO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구성요소 모형’을 토대로 정연하게 서술함으로써 보편성을 추구했다. 제1장 서론, 제2장 김정은 정권의 보건의료 정책 및 관리, 제3장 김정은 정권의 보건의료 자원 개발 현황, 제4장 김정은 정권의 보견의료 자원의 배치, 제5장 김정은 정권의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 현황, 제6장 김정은 정권의 보건의료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제7장 결론, 부록 및 참고문헌이 그것으로, 사실상 이 분야의 교과서가 쓰여진 셈이다.
김정은 시기는 1980년 6차 당대회이후 2016년 7차 당대회, 2021년 8차 당대회가 치러져 각 분야별로 대략적이나마 공식적인 총화(평가)와 계획들이 발표됐고, 저자는 <로동신문>에 근거해 이같은 흐름을 세밀히 추적함으로써 김정은 시기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저자는 특히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 주민생활 향상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보건의료 상황의 개선”이라며, “보건의료 시설의 정비와 보강으로 그 변화를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고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의 정상화는 그 혜택이 인민의 피부에 직접 가닿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은 집권 직후부터 ‘보건의료 부문 전반의 정상화’를 계획했고,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우리 당의 주체적보건사상과 정책에 의해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와 옥류아동병원, 류경치과병원을 비롯한 현대적인 의료기관들이 꾸려지고 전국적인 먼거리의료봉사체계가 세워져 인민들에 대한 의료봉사가 개선되었다”고 총화됐다.(43쪽)
먼거리의료봉사체계는 원격진료를 말하며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원을 받아 구축됐고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김정은 정권의 보건의료 분야 중요 치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책이 <로동신문>을 1차 자료로 삼는 등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에 입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공식적 ‘선전선동’류의 모범적 사례 연구에 치중되지 않은 것은 최근 김정은 정권의 기류 변화와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8월 묘향산의료기구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의료기구공장이 아니라 좋게 말하면 농기계 창고이고 정확히 말하면 마구간을 방불케 한다”, “당에서 경종을 울린지 2년이 됐는데 도대체 무엇을 개건하고 현대화하였는지 알 수 없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198쪽)
“묘향산의료기구공장의 사례는 특수한 현실이 아니었다. 당국이 설정한 정책을 실행하는 하부단위에서는 적당히 시늉만 하다가 완수 보고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완료 보고 이후에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199쪽)
결국 2022년 ‘허풍방지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허위 보고에 대한 처벌 규정 명문화”를 담은 법이다.
저자는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는 “북미관계와 경제 상황 개선 실패에 따른 인민의 불평과 변화 욕구를 잠재를 수 있는 매개라고 판단”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활용해 관료를 다잡는 기회로 삼았다”고 보았다.(46쪽)
더욱 심각한 사례는 ‘평양종합병원’ 건설이었다. 코로나19 팬더믹 기간인 2020년 추진된 이 병원은 김정은 위원장의 여러 차례 직접지도와 “책임자 전부 교체”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공하지 못했다. 정면돌파나 자력갱생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남은 셈이다.
김정은 시기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2022년 5월 오미크론 확진자 발표 이후에는 병원 명칭을 모두 변경하는 변화를 보였다. 도인민병원은 종합병원으로, 그 산하의 인민병원은 인민을 빼고 호칭했다”며 “보건의료 발전 방향으로 병원을 예방이 아닌 치료에 중점을 두는 전문병원 기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었다. 이는 만성질환자가 늘고 노령화가 진행되는 북조선의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현재의 병원 상태로는 인민의 건강을 담보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205쪽)
나아가 “이러한 움직임이 북조선의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인 무상치료제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방향까지 나아갔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인민보건법과 의료법 수정 및 보충’에 주목을 돌렸다. “물질적 조건을 보장하고 보건의료산업을 발전시키는 주체였던 ‘국가’를 삭제했다”는 것. 저자는 “김정은이 2024년 1월에 개최한 최고인민회의 당시 시정연설에서 ‘보건보험기금’에 의한 의료보장제의 실시를 언급해 국영 보건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짐작된다”고 짚었다.(206쪽) 실제로 일부 온라인 의료서비스가 유료로 운영되는 경우도 등장했다.
이같은 흐름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실시로 강원도의약품관리소의 경우 “경영활동의 정규화와 규범화 실현을 통해 의약품 공급계획을 평균 170%로 완수하는 결과를 얻었고 의약품관리소 운영의 정상화는 당연히 종업원들의 생활비와 복지 증대로 이어졌다”는 것.(239쪽)
“김정은 정권은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 문제를 각 지방자원으로의 해결과 확대재생산을 위한 경제적 공간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240쪽) 이는 합성의약품(양약)을 생산하는 제약공장 보다 천연자원을 이용해 고려약(한약)을 생산하는 고려약공장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의약품의 원료를 자국 내에서 확보해야 하는 환경으로 인해 고려약공장이 아닌 제약공장조차 생산한 의약품은 대부분 고려약이었다”는 것.(249쪽) 실제로 자체 개발한 우웡항바이러스제는 2022년 북한에 오미크론 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했다.(248쪽)
저자는 “김정은 집권기에 고려약공장이 증가한 데에는 의약품 판매의 활성화가 한몫을 했다”며 “이전 시기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특징은 적극적인 판매에 있다”고 평가했다. 제약공장과 고려약공장이 ‘직영 약국’까지 개설하면서 의약품과 건강식품 판매에 나섰고 이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도입에 기인한다”는 것이다.(250쪽)
김정은 시기에도 의료분야의 현실은 선진의료기술 도입 추진 등에도 불구하고 “북조선 보건의료인들은 21세기를 20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와 피부를 제공했고 심지어 뼈와 망막까지도 기증하고 있었다”, “자발적 자력갱생의 자급체제를 강요받으며 국가의 부족한 자원을 온몸으로 대신하고 있었다”는 진단이다.(277쪽)
물론 북한은 기본적으로 무상의료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고아와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하는 조직적, 개인적 지원체제가 작동하기도 하며, 전쟁노병과 영예군인 등 국가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체계적으로 가동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 건설현장이나 생산 현장 등에 보건의료인이 직접 현장치료를 담당하는 등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우월한 점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꼼꼼한 각주와 <로동신문>을 분석해 도표화한 표와 부록자료 등을 통해 직접 접하지 못한 김정은 시기 북한의 보건의료 분야의 실태와 변화 방향을 포괄적으로 담기 위해 힘을 기울였고,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방북 시의 사진자료 등은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저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현장감을 제시하고 있다.
『북조선 보건의료체계 구축사Ⅰ(1945~1970)』(도서출판 선인, 2020.3)에 이은 『북조선 보건의료체계 구축사Ⅱ(2012~2023)』의 출간은 당연히 1971~2011년 기간의 연구를 기대하게 하고, 나아가 코로나19 시기 북한의 보건의료 분야에 관한 본격 연구도 요청하게 된다.
북한이 기존의 민족통일론을 폐기하고 ‘두 개의 국가’를 선언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직접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확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북한의 실상과 고민, 지향점 등을 곰곰이 살펴보다 보면 조금은 더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