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이활웅 선생. 사진은 2007년 12월 자신의 저서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통일뉴스 발간)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통일뉴스 자료사진]
생전의 이활웅 선생. 사진은 2007년 12월 자신의 저서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통일뉴스 발간)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통일뉴스 자료사진]

재미 통일운동가이자 [통일뉴스] 상임고문을 역임한 ‘통일지향인’ 이활웅 선생이 별세했다. 향년 98세.

재미 인터넷 언론 [민족통신]은 지난 1월 5일자에서 “미주지역 통일운동의 원로이며 민주민족언론인 이활웅(향년 98세) 선생의 장례식이 1월4일 오전 9시30분 헐리우드힐의 포리스트라운 장의사에서 제퍼슨 비이커 씨 집례, 막내딸 이진선 씨 가족인사로 거행되었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1925년 북간도 용정에서 출생했으며, 6.25때 육군 정훈장교로 입대해 1955년 대위로 예편했다.

1955년부터 1971년까지 외무부에 재직했다. 외무부 재직 중 한일회담과 각종 무역회담에 참여했으며, 1961년 뉴욕대학원에서 석사학위(국제경제학)를 받았다.

외교관 시절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의 총영사관에 부임해 그곳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과의 남북정부의 정통성 문제 시비에 있어서 북한을 이기는 일을 해오다, 남북은 결국 한 민족인데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남들 보기에 얼마나 어리석고 흉한 것인가를 깨닫고 그때부터 남북 간의 문제를 분단지향적이 아니라 통일지향적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1971년 외무부에 사직서를 냈으며, 미국으로 건너와 1972년부터 LA에서 제조업체를 설립, 경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1984년부터 재미 언론인 민족통신, 코리언 스트릿 저널, 크리스천 헤럴드, 라성 한국일보, 그리고 국내에서는 통일뉴스와 기자협회보 등에 통일문제 위주로 왕성하게 칼럼과 기고 등의 글을 써 왔다.

고인은 2005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술활동에 대해 “나는 무슨 운동을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 자신을 철저한 통일지향인(統一指向人)으로 닦아간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2007년 자신의 저서 출판기념회에서 “‘통일지향인’으로 다듬기 위해 통일에 관한 글을 써왔다”며 “통일지향인이란 말하자면 통일의 렌즈를 통일의 초점에 맞춰서 모든 것을 보고 생각하고 또 처신하는 사람”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즉 “통일지향인이 되면 남한만 내 나라고 북한은 딴 나라인 것이 아니라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같은 내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서 “미국이나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를 보는 눈도 달라진다”는 것.

1990년 제1차 범민족대회 미주동포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1995년에 ‘통일마당’ 창설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6.15공동선언실천 미주본부’ 고문 및 ‘통일뉴스’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고인은 [통일뉴스]에서 발간한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외 4권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은 2007년 위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비기는 통일’에 대해 “비긴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실제로는 어려운 결단을 요하는 일”이라면서 “쓰디 쓴 것도 대의를 위해서는 꿀컥 삼킬 수 있는 인물이라야 비긴다는 결심을 할 수 있다. 통일운동을 이끌어 가시는 여러분들은 꼭 이런 덕목을 갖추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바람을 표한 바 있다.

고인은 미국에서 통일운동권의 행사에는 가급적 참가하고 협조하는 자세를 취했으나, 통일운동 단체에서 권유를 받아도 가입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절제와 중용의 미덕으로, 특히 주변의 통일운동 인사들이 어떤 사상과 입장을 갖든 편견을 갖지 않고 두루 인간관계를 폭넓게 하는 어른으로 평가받아 왔다.

[민족통신]은 고인에 대해 “영어 문장력이 뛰어나 미국 주류사회에 영문기고문을 투고하여 코리아반도 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평소 매일 걷기운동을 하고 90이 훨씬 넘는 연세에도 자동차 운전하는 데 지장이 없는 노익장 과시한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슬하에 1남3녀의 자녀와 5명의 손주, 2명의 증손주를 두었다.

 

고 이활웅 선생 약력

북간도 용정 출생. 함경북도 선봉 및 나진에서 성장.
해방 후 월남해서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
6.25때 육군정훈장교로 입대. 1955년 대위로 예편.
1955년부터 1971년까지 외무부 재직.
1972년부터 1991년까지 LA에서 제조업체 설립, 경영.
1984년부터 현재까지 통일문제 관련 기고 활동.
1995년 재미동포통일단체 ‘통일마당’ 창설회장.
‘6.15공동선언실천 미주본부’ 고문.
<통일뉴스> 상임고문.
뉴욕대학 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2024년 별세.

저서 : 『통일의 뜻과 통일의 길』(1993), 『그렇다! 그들도 우리들이다』(1996), 『비기는 통일의 구상』(1999), 『미군이 나가야 통일이 된다』(2002) , 그리고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통일뉴스) 등.

[자료-통일뉴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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