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헌법화 필요성을 제기하며 대한민국을 철저한 타국,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다는 전제 아래 두개 국가론을 선명하게 설명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헌법화 필요성을 제기하며 대한민국을 철저한 타국,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다는 전제 아래 두개 국가론을 선명하게 설명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헌법화 필요성을 제기하며 밝힌 기본 전제이다.

지난해 연말 9차 당전원회의 보도에서 "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였다"고 한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김 위원장은 헌법에 북의 국가주권이 행사되는 영토, 영해, 영공에 대한 정치적, 지리적 정의를 반영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령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영토조항의 핵심내용을 언급했다.

또 새 헌법 조문에 △'삼천리 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을 사용하지 말 것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명기하고 △현행 헌법의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할 것 등을 주문했다.

다음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개정된 헌법을 심의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헌법 개정과 함께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인 경의선 북측 구간을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을 것 △접경지역의 모든 남북 연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단계별 조치를 엄격히 실시할 것 △평양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도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이날 최고인민회의에서 "근 80년간의 북남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두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우(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다"는 발표도 나왔다.

9차 당전원회의 결론에 이어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할데 대한 노선'에 대해 한층 선명하게 언급한 것이다.

예상했지만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특히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담긴 조국통일3대원칙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하고, 조국통일3대원칙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1980.10),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1993.4)을 묶어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규정(1997)한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의 철거를 지시한 것에 대해서는 '두개국가 병존'을 상수로 인정하는 '평화공존론', 나아가 '통일포기론'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에 해당하는 '통일'원칙과 방안, 강령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듯한 연설내용이 촉발한 반응이다.

분명 '수령의 유훈통치'를 절대규범으로 삼고 있는 북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그동안 '선군정치'를 당 중심으로 정상화시키고 특수부문(당·군사분야)의 개입을 배제하며 내각이 경제사업 전반에 대한 장악력과 지도력을 꾸준히 강화하도록 해 온 것을 감안하면 상황변경에 따라 선대의 통일노선에 대담한 변경을 가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10월 금강산을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국력이 여릴(약할)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며, 금강산관광사업을 현대그룹과 함께 추진했던 선대의 결정을 뒤집는 과감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발상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다시 9차 당전원회의 결론을 살펴보자. 

"장구한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로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이며 "우리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론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15일 시정연설의 관련 대목은 이렇다. "쓰라린 북남관계사가 주는 최종결론은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꿈꾸면서 우리 공화국과의 전면대결을 국책으로 하고있고 나날이 패악해지고 오만무례해지는 대결광증속에 동족의식이 거세된 대한민국 족속들과는 민족중흥의 길,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전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추구하며 '대결광증속에 동족의식이 거세된' 대한민국과는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

같은 민족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조선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병존한다'는 현실 인식이 자리잡은 다음엔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북의 입장에서 볼때,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란 '동족(같은 민족)'이라는 수사속에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온 '착오'이기 때문이다. 

2018년과 2019년 운전자론을 주창한 문재인 정부에 호응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 나갔다가 성과없이 수모를 당한 뒤 더욱 굳어진 불신이 배경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향후 장기간 남북간 교류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북이 평화공존론을 주창한다거나 통일의 길을 포기했다고 예단하는 것은 여러가지 무리가 따른다. 

내용이야 어떻든 시정연설에서 '민족중흥과 통일의 길'을 이상적인 목표로 언급하고, 불가피하게 전쟁이 벌어지면 대한민국을 완전 점령, 수복해 '공화국영역'에 편입하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결국 '통일'의 문제이다.

'대한민국 완전 점령, 평정, 수복 후 공화국영역에 편입' 언급을 근거로 북이 무력통일 노선으로 전환했다고 해석하는 것 역시 과잉으로 보인다.

"전쟁이라는 선택을 할 그 어떤 리유도 없으며 따라서 일방적으로 결행할 의도도 없지만 일단 전쟁이 우리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절대로 피하는데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정연설은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데 따른 실제 안보 위협에 대한 표현이자, 억제를 위한 강력한 경고로 읽힌다.

어쨌든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북의 의지가 확고한만큼 '대남 부문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은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철저히 미국을 상대하는 기조로 전개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강력한 핵무력 보유에 더해 발전하는 북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두개 국가로 남북이 병존하는 가운데 통일문제에 비우호적인 남쪽의 여론환경도 일거에 해결하려는 계획일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된다.

러·중과의 전략적 협력이 최상의 수준에 도달한 대외 환경의 호기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중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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