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2월 18일 오전 발사한 고체엔진 신형 ICBM '화성포-18'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12월 18일 오전 발사한 고체엔진 신형 ICBM '화성포-18'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2024년 새해를 맞는 마음이 뒤숭숭하다.

연말 당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할데 대한 노선'을 제시했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인식하고 '유사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대한민국' 것들은 통일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 등이다.

결론은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고 근본적으로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렸다.

투쟁원칙과 방향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전환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남한을 독자적으로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했다.

또 '전쟁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 다가오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군사적 대응과 해결도 불사한다는 강한 의지를 확인했다.   

강한 분노와 적개심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근본적 방향전환'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보아 단순 엄포로 끝날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 9월 핵교리를 명시적으로 변경한 북한은 '핵탄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밝히면서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터에 계속 핵무기 고도화와 실천배치를 단계적으로 실현하며 위협 강도를 높여왔다.

작년 한해 동안 하루가 머다하고 진행된 한미합동군사연습과 수시로 출동하는 미 핵전략자산의 준 상시배치로 인해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의 암운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 전장이 열렸고 그 다음 화약고가 터지는 곳은 대만 또는 한반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예사롭지 않게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연말 전원회의에서 북의 강경방침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실제 발표된 내용은 사뭇 심각하게 와닿는다.

김 위원장은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못박았다.

또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론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며 통일논의에서 한국 배제 의사를 명백히 했다.

일부에서 북의 발표에 대해 통일전략을 포기하고 '두개 국가론'을 수용하는 변화 조짐으로 읽는 견해가 있으나, '두개 국가론'은 '평화공존론'과 쌍을 이루며 '영구분열론'으로 흐를 우려가 있어 무리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현안보고에서 전원회의 결정에 대해 '북한의 공식적 통일방안인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고려연방제의 파탄을 인정하고 이를 폐기한 것'이라고 결론내린 것은 더욱 심각한 오독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전원회의 보고에서 "장구한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로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한 것은 명시적인 언명대로 역대 한국 정부의 '흡수통일'과 '체제통일' 추진에 대한 뿌리깊은 분노의 표출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력대 남조선의 위정자들이 들고나온 《대북정책》, 《통일정책》들에서 일맥상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북)의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이였으며 지금까지 괴뢰정권이 10여차나 바뀌였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왔다"고 하면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심각하게 와닿는 문제는 기존 집권세력 모두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북의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추구했다는 지적에 대해 그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지 않고,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남북간 체제경쟁은 끝났다며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던 때로부터 공공연하게 있어왔던 일이지만, 북은 더 이상 이같은 상황을 용인할 뜻이 없다는 것도 거듭 확인됐다.

분명한 건 앞으로 북은 한국 정부와 통일문제를 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혔고 그런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는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쪽에서 해석의 여지를 두지 않고 명확하게 표명한 바에 대해 억지로 행간을 읽어내려 애쓰는 고질적 태도로 인해 이같은 비정상적 갈등 상황이 초래된다는 생각이다.

대북제재와 코로나, 기후재난의 3중고를 극복하고 핵무력 고도화를 통한 안보기반 위에 '우리식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으로 가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식량난'이 보일 뿐이다. 12년째 접어드는 집권기간 동안 '북한 붕괴론'은 사실상 '붕괴'되었다는 것이 지배적 평가이다.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까 제대로 보려는 노력도 소홀해진다.
 
앞서 통일연구원 보고서는 북의 공식적 통일방안인 고려연방제에 대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라고는 하지만 인민민주주의혁명(남한체제 전복)에 의한 북한 주도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통일전선전술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는 "이러한 방안은 우리의 강력한 거부와 함께 남북한의 국력 차이로 인해 북한의 전술에 호응하는 세력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남북간 접촉과정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동요하는 상황(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에서 북한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는 독창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연말 전원회의 결론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남반부의 전 령토평정' 관련 대목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대결을 기도하려든다면 우리의 핵전쟁억제력은 주저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선언하고, "대적, 대외사업부문에서 적들의 무모한 북침도발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령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어나가기 위한 준비를 예견성있게 강구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순서대로 읽어보면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보인다.

'미·한의 군사적 대결 기도', '핵전쟁억제력의 중대한 행동 이행', '전쟁 발발 기정사실화', '남반부 전 영토평정' 모두 안보딜레마의 균형이 무너지는 어느 한 순간 우발적 충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른바 '통일대전'을 연상케 하는 이 발언에 대해 위 보고서는 "김일성 시대 초기에 추구했던 이른바 '민주기지론'과 '영토완정론으로 김정은 정권이 무력통일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했다.

국방부장관은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적 망동은 곧 파멸의 전주곡이 될 것"이라며, "말과 종이, 헛된 망상이 아닌 오직 '강한 힘'을 갖췄을 때 '진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그런데 한미동맹의 핵확장억지전략과 북한의 핵전쟁억제력이 상호 상승작용하는 '안보딜레마' 상황이 깊어질수록 '전쟁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쟁 발발 후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 다가오는' 전쟁을 막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