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요즘 기독교가 운영하는 공중파 FM 방송으로는 천주교 측의 평화방송(CPBS)과 개신교 측의 기독교방송(CBS), 극동방송(FEBC) 등이 있고, 케이블과 IP 방송으로는 평화방송, 기독교방송, 기독교복음방송(GOODTV), 기독교TV(CTS), CGN, C채널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인터넷 방송이 있고, 각 방송마다의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가 운영하는 방송은 CBS기독교방송이다. 1954년 12월 15일에 개국하였다. 그 다음은 FEBC극동방송인데 1956년 12월 23일 개국하였고, CPBS평화방송은 1990년 4월 15일 개국하였다.

21세기 초반의 현재는 기독교가 운영하는 방송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 방송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기? 평화방송(PBS)과 기독교방송(CBS)은 민주사회의 현실 참여성이 높다. 반면에 극동방송이나 기독교TV는 보수적인 방송, 즉 어느 면에서는 수구적인 방송이다.

대체로 이러한 방송에서 설교하는 교회의 목사들은 일정한 경비를 방송시간 사용료로 지급하는 것 같다. 다만 평화방송(PBS)과 기독교방송(CBS)의 경우 공익성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나 공공의 기독교 프로그램은 자체의 운영비로 기획 제작을 한다. 이 두 방송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독교 측 채널은 설교 일변도의 송출 방송이니, 직원 수도 적으며 규모도 작다. 이러한 방송이 기독교를 대중화하고는 있으나 이들 방송은 “대형교회의 이익을 대변하며 기독교를 세속화한다”라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1. 성탄절

『신찬초등소학(新纂初等小學)』 권6 제22과 「야소(耶蘇)」, 현채(玄采, 1886~1925), 1909년 10월 20일 현채가 사가본. pp.49~51. 계몽주의자 현채가 저술하여 발행한 대한제국시 교과서에서 예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신찬초등소학(新纂初等小學)』 권6 제22과 「야소(耶蘇)」, 현채(玄采, 1886~1925), 1909년 10월 20일 현채가 사가본. pp.49~51. 계몽주의자 현채가 저술하여 발행한 대한제국시 교과서에서 예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이 글이 게재되는 오늘은 성탄절이다. 예수의 탄신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성탄절은 개천절과 석가탄신일 등과 함께 법정 공휴일이다. 이 가운데 개천절만이 국경일이다. 예수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근거는 없다. 다만 예수를 기리기 위하여 이 날자를 정하여 성탄절로 기리는데. 서방교회와 그 영향을 받은 교회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리며,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동방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린다.

우리나라에서의 성탄절 역사는 기독교의 전래로부터 시작된다. 천주교는 1784년에 자발적 요청으로 인하여 전래하였고, 개신교는 1884년에 선교사 파견으로 전래하였는데, 이 당시부터 각각의 신자들은 성탄절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신자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성탄절이 조선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번성하고 성탄절이 일반적인 국가의 축일로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 미군의 한반도 진주 이후 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이다. 특히 CBS기독교방송을 위시한 여러 방송이 매년 연말에 캐럴을 송출한 것은 성탄절 분위기를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2. 신학자와 목회자

최근에 이르러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방송에서 일부 목회자(목사)들이 학문으로서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부흥 목회나 성령의 임재를 말하는 설교를 못 한다”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 목회자들이 이렇게 신학을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자가당착 행위이다. 즉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로 보인다.

신학에는 그 주요 관점에 따라 크게는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다문화신학으로 구분되며, 여기에 각 교파마다 신학적 관점에서 차이가 난다. 각 교파마다 전문의 신학자나 신학연구가가 있다. 과거에는 각 교파의 신학자나 신학연구가가 교리의 형성, 즉 교리신학을 주도하였다.

근래에 이르러 사회와 학문이 다원화되고, 그 다원화된 가운데 신학의 위치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교리신학의 모색점이 넓어졌고 민중신학도 나왔다. 이에 교단과 교단 소속의 학구적 신학자들 사이에 특정 사안에 관한 중요한 의견대립이 나타났다.

기독교의 근본 원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성령의 역사이다. 목회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지만, 신학자들은 성경이 기록한 말씀에 치중한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은 성령의 체험보다는 성경의 기록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이 목회자들이 신학자들에게 갖는 불만이다. 그러나 신학자, 특히 교리신학자들의 연구가 없이 기독교의 존속은 불가능하다. 성령의 체험만 강조한다면, 이단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각 교파의 특성은 자신들 교파와 교리나 주의 주장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교파를 이단시(異端視)하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 기독교의 각 교파는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을 눈여겨본다. 즉 같음보다는 다름을 찾아 비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각 교파는 예수의 가르침과 초기 기독교의 보편적 특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3. 교회의 변질과 종교개혁

성서신학에서 하나님과 예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예수가 어떠한 인물이냐? 그의 가르침은 어떠한 가르침이냐?”를 이해하는 수준과 관점에 따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척도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 가르침은 예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와 공생애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에 의하여 신학으로 형성되고 교회로 조직화하였다.

신약의 4복음서의 저자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바울·베드로는 신약의 주 저자이다. 야고보와 유다의 저술은 다른 저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작다. 기독교의 계시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예수의 원 가르침이 있었고, 바울과 요한의 교리 확장이 있었다.

그러던 것을 정치세력화한 것이 로마 황제 콘스탄틴 1세(Constantinus I, 272~337)이다. 그는 기독교를 공인하였고, 이후 기독교 세력은 차츰 정치 세력과 가까워지며, 기독교는 콘스탄틴 1세 황제의 기증장을 위조하여 교회가 정치 위에 군림한다, 기독교의 제1차적 변환점은 콘스탄틴 1세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다. 기독교사는 콘스탄틴 1세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전의 박해받던 역사와 공인받은 이후의 교회로 나뉜다.

제2차적 변환점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리이며, 제3차적 변환점은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끊임없는 자성과 변화를 불러왔지만, 또한 교파의 난립을 불러왔다.

4. 봉건주의의 교회, 자본주의의 교회, 공산주의의 교회

기독교 역사는 발생할 때부터 오랜 기간을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의 그늘에서 함께하여 왔다. 그러했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완전한 천국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세속의 권위와 권력에 복종하라는 교리는 정치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없었고, 대영제국은 가톨릭에서의 독립교회를 추구하여 성공회로 독립시켰다.

성공회에서는 자신들을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와는 독립된 별도의 기독교 종파로 본다. 조직적 체계는 로마 가톨릭과 같지만, 로마 가톨릭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는 전 세계 성공회의 ‘Spiritual Leader(영적 지도자)’이고,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Supreme Governor(최고 통치자)’이다. 또한 과거에는 국왕을 ‘Supreme Head(최고 수장)’라고 하였다. 영국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의 정치적 지배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는 미국에서 미국화된 교회이다. 미국의 청교도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서구 열강의 노예 정책을 받아들이고 인정한 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노예해방 이후 산업자본의 그늘에서 자본주의화 한 미국주의적인 기독교가 그대로 들어왔다.

미국 기독교의 특성은 미국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식과 시온주의(Zionism),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화 된 기독교에서는 미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건국한 나라이므로 “미국의 지배로 세계의 평화 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을 추구한다(Pax Americana).” 따라서 그들은 친유태적인 시오니즘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한 첫 인간 아담을 백인으로 보며, 흑인은 아담의 아들 카인의 후손으로 보고, 여성은 첫 남성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므로 남성의 부속물이라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목사와 기독교인은 친미국이며, 친이스라엘인 이유가 한국 기독교가 미국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2000년 이맘때, 즉 성탄절에 필자는 북경의 역사적인 남천주당(南天主堂)을 가 보았다. 성탄예배에 입장권을 가진 등록된 중국 천주교인과 초청을 받은 공산당 간부만이 성탄절 예배에 입장할 수 있었고, 인근에서는 입장권 암표도 팔고 있었다.

필자는 건축물만 바라보고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중국의 성탄절을 체험한 것이다. 2~3년 후에 북경 조선족 교회에서의 성탄예배를 참석한 바 있고, 연길에서의 조선족 교회에 참석해 보기도 하였으며, 첫 한글 성서를 간행한 심양시 도심부의 중국인 교회도 가 보았다.

현재 중국에서의 교회는 삼자교회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자(三自)란 자치(自治)·자양(自養)·자전(自傳)을 의미한다. 그 요점은 외국의 정치적 재정적 선교적 지원 없이 중국 스스로 존재하는 중화 민족적인 교회라는 의미이다. 중국의 삼자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즉 중국공산당 안에 교회와 목회자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진정한 목회자도 많다. 중국의 삼자교회에는 친미국도 친이스라엘도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중국의 삼자교회는 교회에서의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유풍(遺風)을 없애겠다는 자주적 선언이었던 셈이다. 이런 중국교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의 기독교는 중국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선언하며 중국인에게 한국 교회의 선교를 밀어부쳐서 한중 교회 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5. 상대를 인정하고 교회의 평화적 교류를 모색하여야

엄밀하게 본다면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천민 자본가의 속성이 교회나 사찰을 지휘한다. 반면에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에서는 당(공산당이나 노동당)이 교회나 종교를 지휘한다. 즉 당 안에 하나님이 있고, 부처님이 있는 것이다. 물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헌법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신학적 본질로 보면 자본가나 당 안에 하나님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공산당과 자본가가 있는 것이다. 『서유기』에서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이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불교가 너도 옳을 수 있고, 나도 옳을 수 있다는 입장의 종교라면, 유태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자신만이 옳다는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독선적인 종교이다. 그리고 교세 확장을 위한 선교에 치중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는 문어발식의 교세 확장이 아니라, 상호 공존의 교류와 협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은 북한선교라는 이름으로 천주교는 로마 천주교의 중앙집권적인 조직체의 진출에 있고 개신교는 교세 확장 차원에서의 자(自) 교파의 진출에 있다. 즉 “사회주의 국가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전제하에 공격적으로 포교하려 도전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TV(CTS)와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수구적인 극동방송(FEBC)이 그 선두에 서 있다.

그들의 무모한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빚는다. 할 말이 많지만, 이번에는 이 정도 선에서 이번 글을 마치겠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온 세상에 평화(平和)와 평강(平康)과 평등(平等)이 가득차기를 축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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