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세월호’에서 만난 윤미향 의원

2020년 3월 총선 전까지 ‘윤미향’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국회의원 당선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윤미향으로 인터넷에 도배되고 나서야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윤미향, 『윤미향과 나비의 꿈』, 내일을여는책, 2023.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윤미향, 『윤미향과 나비의 꿈』, 내일을여는책, 2023.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나도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를 보고 ‘혹시’ 하는 의심을 했었다. 기사를 비교하고 검토하고 나서야 ‘혹시’는 ‘역시’로 바뀔 수 있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어떻게든 위로하고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윤미향 의원을 실제로 처음 본 건 2021년 7월 5일 서초동에서 있었던 <4.16세월호 참사 판결 및 특수단 1차 수사 발표>에서였다. ‘세월호국민고소고발대리인단’으로 활동했던 변호사들이 그간 세월호와 관련된 수사 재판이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보고하고 토론회를 하는 자리였는데, 그 발표와 토론은 무려 4시간이나 진행되었다. 나는 수원4.16연대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보통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은 시작할 때 인사말을 하고 10~2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특이하게도 윤 의원은 끝까지 앉아 경청하고 있었다. 행사를 마친 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났던 건 2022년 여름 또다시 ‘세월호’에서였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안산 세월호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윤 의원 부부는 뒤쪽에 조용히 앉아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정치인이기 전에 시민으로 유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가 여느 국회의원과 달리 세월호 참사에 함께하고 있었던 때가 1심 판결(2023년 2월 10일) 전이라는 점이다. ‘정의연’ 내부 결정으로 계획에 전혀 없었던 비례 국회의원으로 지원하게 된 직후(2020년 3월)부터 시작된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 그리고 수없이 이어진 압수수색과 수사와 기소와 재판으로 사경을 헤매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 팔아 앵벌이“, ”집 다섯 채를 현금으로 구매“, ”반미 외치더니 딸은 미국 유학-할머니들 돈으로”와 같은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그런 상황에서, 15년 동안 쉼터에서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식사와 잠자리와 건강 등 모든 것을 챙겼던 자신의 동지 손영미 소장의 죽음을 경험한 상황에서,―손 소장이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에 견디다 못해 생을 마감한 날이 6월 6일(2022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이승만의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한 날(1946년 6월 6일)이기도 하다―‘기레기’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기자들 수십 명이 미국까지 날아가 윤 의원의 딸이 다니는 대학과 한인 사회를 들쑤시는 바람에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서 귀국한 그런 상황에서 그는 세월호 참사에서 자녀들을 잃은 부모님들에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과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날(1심 판결 2023년 2월 10일 – 필자) 이전까지 3년여 동안 나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경계인으로 살았다. 매일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새벽에 습관적으로 눈이 떠지면 그때부터 오늘 하루 살아내야 할 시간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아침마다 국회의원회관 530호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십 명의 기자와 카메라 셔터 소리 그리고 인터넷에 도배되는 내 모습들…, 내가 마치 그들의 장난감이 된 것 같았다. … (중략) … 차라리 침대에 붙은 채 영원히 눈을 감아버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눈을 감아버리면 내 가족도, 재판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많이 아픈 나의 옛 동료들도 자유를 얻게 되지 않을까?(52~54쪽)”

이렇게 죽기보다 더 힘들었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살아야 할 동기를 부여해 준 분은 2019년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였다고 그는 고백한다. 암과 싸우다 죽음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에도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 싸울 것이라며 “나는 희망을 잡고 산다. 희망을 잃어버리지 말자”(54쪽)라고 하셨던 말씀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법원의 판결

윤 의원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난 진즉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거주하는 아파트에까지 찾아와서 확성기 대고 온갖 저주를 퍼붓는 걸 속절없이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의원회관 530호 방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중에 윤 의원의 가방을 뒤에서 잡아당겨 자빠지는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 수십 명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비롯해서 함께 활동했던 분들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난 살 희망을 진작에 버렸을 것이다.

그가 버틴 건 이재명 대표의 추천사에도 나왔듯이 ‘할머니들과의 약속’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과 모욕 속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고통의 현장에 찾아다니며 위로하면서 묵묵히 재판에 집중했던 것은 자칫 지난 30여 년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폄훼되고, 평화운동과 전 세계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쟁과 성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을 돕는 활동에까지 의식을 확장해 온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서 그는 처절하게 버티고 버텨야 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윤미향에 대한 온갖 혐의와 기소는 전후좌우 맥락을 살펴보면 무죄라는 것을. 검찰이 처음에 기소한 혐의 8가지에 대해서 1심 재판부는 7개는 무죄이고 하나는 1,500여만 원의 벌금으로 판결했다. 그 벌금은 2심에서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제출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너무 이상했다. 1심이 무죄로 했던 여성가족부 보조금 사업을 유죄로 변경한 게 아닌가. “해당 보조금 사업 담당 활동가가 여성가족부와 협약서를 체결한 대로 사업을 추진했고, 그 노동의 대가로 인건비를 받았으며, 그 후에 본인의 뜻으로 정대협에 기부했다고 검찰 조사에서도, 법정에서도 증언”(28~29쪽)했는데도 재판부는 이를 무시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건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관련 유죄판결이다. 장례비를 지출하고 남은 조의금을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여성·인권·평화단체 활동가와 시민단체에 기부한 건데, 이것을 2심 재판부는 시민사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지원금을 모금한 것이기 때문에 유죄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장례식 조의금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경우도 다 유죄란 말인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다.

식민지 모순과 분단 모순, 그리고 윤미향의 고통

그러므로 그가 당한 고통은 무고한 사람, 아니 의인이 당한 고난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고난을 받아야 했던 걸까. 그 원인은 우리 시대의 핵심 모순인 식민지 모순과 분단 모순에 그가 온몸으로 저항하고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친일파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주류 언론과 공안 사정 기관, ‘애국’을 늘 입에 올리나 사실상 ‘매국’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 보수정당,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아니라 분단 고착과 갈등과 불안을 증폭시키려는 미국과 일본에게 윤미향은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라. 시민단체의 대표가 아닌 국회의원으로서 윤미향이 반성과 사과 없는 일본을 향해 펼쳐갔을 왕성한 활동을. 생각해 보라.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쟁에서 우리나라 군인이 베트남 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에 대해 정부를 대신해서 곡진히 사과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UN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회의에 국회의원 자격으로 위안부 할머니들과 참여해서 발언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성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발언하는 윤미향을.

그가 ‘정의연’에 있을 때도 해왔던 이런 활동들을 국회의원이 되어서 했더라면 한국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를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그러므로 ‘국회의원 윤미향’은 저들에게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윤미향처럼 우리 사회의 핵심 모순인 분단 모순과 식민지 모순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자기 삶 전체를 투신한 인물이 있었던가 하고.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남편도 결혼한 지 반년이 조금 넘은 1993년 9월, 그러니까 아기가 윤 의원 배속에 있던 때에 안기부 남매간첩단 조작사건으로 온갖 고문을 당하고 4년 동안 형을 살았어야 했었으니―그의 남편은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따지고 보면 가족 전체가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의 ‘담당자’를 자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으로 됐습니다!”

재판에서 그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자신의 무죄 입증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할머니들의 명예였다. 2023년 2월 10일 길원옥 할머니와 관련된 자신의 준사기 혐의가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의 심경을 밝히는 데서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잘 나타난다.

“정대협은 지난 30년 동안 피해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아주 중요하게 인식하고 활동했고,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대협 대표로 일하면서도 할머니들 앞에 서기보다 늘 할머니들의 그림자가 되고, 지팡이도 되어주고, 할머니들 옆에 서서 같이 걷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와 기소, 언론보도는 지난 30년의 우리 노력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유엔인권이사회의 숱한 보고서에 수록된 피해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인권운동을 무력화하고 피해자들의 주체성과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어떤 무죄 판결보다 길원옥 할머니의 치매를 이용한 준사기 혐의가 무죄로 판결된 것에 눈물이 나도록 기뻤던 것이다(50~51쪽).”

준사기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동이 주체적 결단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므로 결국 이 혐의는 할머니들의 활동을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준사기죄 무죄 선고에 대해서 그는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됐습니다!’”(45쪽)라는 기도가 터져 나온 것이다.

검찰과 언론의 목표는 윤미향과 정대협을 모욕하는 일이다. 윤미향이 처음엔 순수하게 시작했을지 몰라도 결국엔 할머니들을 이용해 부와 명예를 얻고, 그걸 디딤돌 삼아 국회의원까지 되려고 했던 것이지 할머니들의 위안부 문제, 나아가서 이 땅에 전쟁과 폭력이 없는 사회를 형성하려던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윤석열 검찰은 윤미향의 헌신적 활동을 모욕하고, 윤미향과 할머니들, 윤미향과 다른 활동가들의 갈등을 만들고 키워 활동 자체를 와해시키려는 것이었으니, 우리의 윤미향은 온 힘을 다해 이 만행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활동가들에게 피해가 될까 싶어 “수요시위 30주년이 되던 2022년 1월 5일,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홀로 그곳을 찾아 소녀상 옆 빈 의자에 앉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니들과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목놓아” 우는 윤미향의 모습을(175쪽). 나는 이 부분에서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이로운 ‘상호 의식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윤미향 의원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개별적’ 아픔을 ‘보편적’ 고통과 슬픔으로 승화시키면서 진정한 평화운동가와 인권운동가로 거듭나는 장면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면서, 그중에 제3장 “할머니들과 함께한 30년”은 특별히 묵상하며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목사의 꿈을 안고 1983년 한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한 윤미향은 “해방과 분단의 역사, 여성 노동자들을 포함한 분단상황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공부하면서 내가 사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 폭력들에 대해 비로소 알게”(179쪽) 된다. 학습과 토론을 통해서 한국 사회 문제의 뿌리에 다가간 것이다. 이런 지적 노동과 실천은 쉽지 않은 것이지만, 1980년대 청년 중엔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윤미향의 놀라운 점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인데, 그것은 할머니들과의 ‘참된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통해 세상의 고통과 모순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피해자들을 만나긴 하지만 대개 일정한 거리를 둔다. 피해자들을 돕기는 하지만, 그분들의 삶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책으로 이해하는 것과 피해자들을 ‘참되게’ 만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런 까닭에 추천의 글을 쓴 양징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일본)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일본군의 성노예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보통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이해도 불가능한 피해입은 여성들은 풀리지 않는 분노와 의심을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한다. 그 상처를 마주한 자는 너무 괴로워서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간혹 피하지 않고, 아니,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서 그 상처를 어떻게든 아물게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나타난다. 윤미향이 그런 사람이다(11쪽).”

윤미향은 할머니들과의 이런 만남의 과정을 통해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한국 역사의 틀에 갇혀 있던 나의 의식을 해방할 수 있었다.”(180쪽)고 고백한다. 할머니들과 만나면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별이 종식되고 인권이 신장되어야 하며 분단체제가 끝나고 평화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었고, 나아가서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벌어진 성착취・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문제와 미국을 대리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자행한 성폭력 문제도 보게 되었으며, 우간다와 콩고 등처럼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 중 벌어진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문제에도 눈을 뜨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참된 만남으로 마침내 윤미향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할머니들의 변화다.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는 피해로 괴로워서 아무 활동도, 살아갈 의미도 이유도 찾지 못하던 할머니들이 마침내 활동의 주체로 서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경이롭다. 처음에 할머니들의 활동 목표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는 것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 없는 평화’, ‘차별 없는 인권’이 전제되어야 자신들의 문제도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내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 활동가로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180쪽).

이것은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발언에 그대로 녹아있다. 두 분은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서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하고 있지만, 한국군에 의해 베트남 여성들도 나와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한국 사람으로서 너무나 미안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나비기금을 지원하겠습니다.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에게도 “여러분이 잘못해서 그런 삶을 산 것이 아니다. 국가가 잘못해서 그런 피해를 입었으니 힘내서 싸우라”고 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재일조선학교에 계속 기부금을 보내고 직접 재일조선학교를 찾아가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차별받는다고 슬퍼하지 말고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 “장학금을 지원할 테니 열심히 공부해서 꼭 남북통일과 평화를 만드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 달라”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180~181쪽). 이보다 더 아름답고 숭고한 장면이 또 있을까? 세계 역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내용을 읽어보면 할머니들이 그 단단하고 고통스러운 ‘벽’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얼마나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는지 알게 된다. 할머니들이 당한 고통의 경험을 가만히 앉아서 듣고 공감하고 함께 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존엄하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공감과 사랑과 겸손의 자세로, 그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소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윤미향과 활동가들은 할머니들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전화로 1시간이나 넘게 심한 욕을 듣다가 온몸에 마비가 오는 경험도 해야 했으며 “우리 때문에 빌어먹는 년”이라는 욕도 들었어야 했다(356쪽).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할머니들은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되어 주체적인 활동가로, 세계로부터 영웅으로, 희망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통 속에 있는 분들이 알을 깨고 나와서 나비가 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윤 의원, 그 과정을 도왔던 윤 의원의 눈물 나는 헌신은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인간으로서 의식이 가장 고양된 상태, 즉 자기의 고통을 극복하고 그 고통을 보편화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장면은 거룩함 그 차제다.

물론 윤 의원이 일방적으로 할머니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푼 것만은 아니다. ‘만남’은 역동적이고 상호적이었다. 윤 의원은 그 힘든 과정을 어떻게 버텼냐는 질문에 “우리 할머니들이 주신 사랑으로 견뎠습니다.”(176쪽)라고 고백한다. 그렇다. 윤미향과 할머니들은 서로를 의식화한 것이다.

빚진 마음과 부끄러움, 그리고 새로운 사회

책을 읽어가는 내내 두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빚진 마음’과 ‘반성’이다. 무엇보다 윤 의원과 할머니들과 정의연과 정대협 활동에 우리 사회 전체는 큰 빚을 졌다. 30년 넘게 수요집회가 이어져 오고 평화의 소녀상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곳곳에 세워진 것은 결코 저절로 된 게 아니다.

일본 공안과 내통하는 안기부(국정원)의 사찰에 시달려야 했고, 죽음의 공포가 뒤따랐으며, 종북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고통을 당했어야 했고,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말 못 할 수많은 일들을 겪었어야 했다. 이런 활동이 밑바탕이 되어 전쟁과 성폭력 문제, 평화와 인권 이슈가 널리 퍼져나가 그 열매를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성이다. 반성(反省), 즉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윤 의원이 속해있었던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가? 80년대 학생운동에서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정당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도 그런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았나? 80년대 학생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식민지 모순과 분단 모순 극복이었다.

그래서 정말 묻고 싶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아니 문재인의 청와대는 윤 의원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수사가 마녀사냥이란 걸 몰랐을까? 저들이 윤미향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를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냉담하고, 때론 마녀사냥에 은근히 가담까지 하고, 더 나아가 출당 조치까지 했을까.

조금만 조사해 보면 거짓인 걸 알 수 있는 윤 의원의 부동산투기 의혹, 그것도 ‘50억 클럽’에 빛나는 곽상도가 퍼트린 유언비어에 휘둘려 출당을 결정한 직후에 있었던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행한 윤 의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가슴을 치게 만든다.

“언론과 검찰의 공격에 함께 싸워달라는 요구는 안 합니다. 옆에 서 있어 달라는 요구도 안 합니다. 그저 홀로 싸우며 의정활동을 해갈 테니 언론과 검찰이 쏘는 화살을 덩달아 같이 쏘지는 말아주십시오(100쪽).”

게다가 당시 당 대표였던 송영길 의원은 국회 윤리특위에 윤 의원을 제명하라고 요청까지 했으니 그가 느꼈던 배신감과 고통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80년대 학생운동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연대’의 정신으로 윤미향을 보호하고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권한을 최대로 활용해서 검찰과 언론과 맞서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쯤에서 묻게 된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말 정치란 무엇인가? 하고.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청와대 인사들은 먼저 부끄러워해야 하고 진정으로 미안해해야 한다. 최소한 이재명 대표처럼 윤 의원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사회는 오직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반성 위에 존립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지금 검찰과 맹렬하게 싸우는 송영길 대표도 이 부분에 있어서 철저히 반성하길 바란다. 송 대표는 윤미향을 죽이려고 했던 그 검찰이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윤 의원과 할머니들과 정의연을 찾아가 곡진히 사과해야 한다. 용기가 없었다고, 비겁했다고,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제 달라지겠다고. 그 길이 송 대표 자신이 살고 사회가 개혁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윤미향 의원이 2023년 4월에 <수원촛불행동> 정치학교 강사로 왔던 적이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시민이 한동안 윤 의원을 의심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부끄럽다고 고백하는 게 아닌가. 장내는 숙연해졌다. 그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반성이 윤 의원에게는 큰 위로로, 우리 전체에게는 ‘연대’ 의식의 고양으로 이어졌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호소하고 싶다.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읽자고. 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자고. 그리고 반성하자고. 나는 참으로 이 마음만이 우리를 새로운 사회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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