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 있어 1945년 8월 15일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날입니다. 하나는 해방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의 얼굴입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민족해방을 이뤘으나 외세로 인해 38도선이 그어져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이 분열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8.15 광복절이 우리 민족에게는 환희이기도 하고 애통이기도 한, 가장 의미 있는 날이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축사를 발표합니다. 일반적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8.15 경축사에는, 진보적 성향이든 보수적 성향이든 설사 독재정권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일제 식민지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또한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고, 나아가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내용이 들어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78주년 경축사가 당일은 물론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 영역에도 후폭풍이 일면서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8.15 광복절 경축사가 아닌 6.25 전쟁 기념사나 공안정국에서의 대국민 선언문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8.15 경축사는 일제 식민지를 규탄하기는커녕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면서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미화하면서, 일본에 최대의 면죄부를 부여합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일제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세 문장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듯이 민족과 국민입니다.

먼저, 경축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추구한 대한민국과 공산전체주의를 선택한 북한의 극명한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면서, 남과 북을 갈라치기 합니다. 졸지에 8.15 경축사의 타킷이 일제에서 북한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경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는, 우리 사회에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 즉 반국가세력들이 엄존해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럼 누가 반국가세력들입니까? 경축사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면서 반국가세력의 정체를 아주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나라의 진보와 민주화 그리고 인권을 중시하는 국민을 한순간에 파렴치범으로 몰아넣습니다.

이외에도 경축사 전문을 보면 잘못된 근거, 부실한 내용, 허약한 논리, 생뚱한 상황인식 그리고 천박한 표현으로 차고도 넘칩니다. 하나하나 지적하기에도 벅찹니다. 대통령의 언어와 표현이 아닙니다. 일부에서 뉴라이트 논리와 극우 유튜버의 인식으로 꽉 차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 정도라면 윤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78주년 경축사는 잡으라는 일제는 안 잡고 애꿎은 민족과 국민만 잡는, 역대급 저질 경축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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