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김수복 통신원 / 6.15미국위원회 대표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이하 6.15미국위원회)가 준비했던 ‘민족자주통일기원 남북유엔대표부 인간띠잇기’ 행사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서 뉴욕 그랜드센트럴 역(Grand Central Station) 실내 광장으로 자리를 급히 옮겼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행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한 분들이 여럿이 있어서 예정대로 4월 29일 뉴욕 함마슐드 광장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아침에 너무 큰 비가 쏟아졌다. 행사를 그대로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참여도 급감할 것이고 쌀쌀한 비에 흠뻑 젖게 되면 감기 몸살이 걱정되었다.

이런 와중에 장소를 실내로 변경하자는 눈이 번쩍 띄는 제안을 받았다. 함마슐드 광장에서 10여분 걷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랜드센트럴 역 구내 광장이었다. 한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을 행사장 변경을 알리는데 집중하고 집을 나섰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걱정이 컸다.

그랜드 센트럴 역은 여러 지하철과 장거리 철도 노선이 만나는 초대형 역사이다. 백년 전에 건설했지만 현재 년간 1억 명 이상이 통과한다고 한다. 역사는 야구장 십여 개의 크기에 중앙 천정 높이는 야구장 못지 않게 드높고 고급대리석으로 건축해서 벽과 바닥이 반들거린다. 역사라기 보다는 박물관 같은 곳이다.

시위 장비를 현장에 하차하는 사이에 옷이 젖었다. 6.15 각 지역위 회원들이 나와 있었다. 곧 우리 동포와 타민족 참여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소가 워낙 넓어서 2층 계단에 통일기를 내걸어 우리 위치를 알려야 했다.

아침 출근으로 복잡한 역 구내에서 아무 사전 통보도 없이 시위를 하게 되니 마치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학내 기습시위가 연상되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새로운 장소에서 ‘민족자주통일기원 남북유엔대표부 인간띠잇기’ 행사를 11시에 선포했다.

40여 개의 피켓과 150개의 통일기를 들고 “우리는 하나다” “One Korea” 구호를 외쳤다. 어리둥절한 미국인들이 응시하는 한가운데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인간띠잇기와 문화행사는 불가능하고 간단한 연설과 구호를 외치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바로 경찰들이 와서 철거를 요구했다. 경찰 허가를 신청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담당 변호사도 도착하지 않았을 때였다. 이주연님이 여행객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평화적인 모임을 하겠다는 설명에 확성기를 사용하지 말고 짧게 끝내는 조건으로 행사허락을 일단 받았다.

의외였다. 안전을 위해서 노둣돌 회원 여러 명이 참가자들의 외곽에 보호막을 쳤다. 29일 아침에 일어난 작은 기적이었다.

우리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예림이 행사 진행을 맡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구호를 힘있게 외치며 첫 번째 발언자인 Veterans for Peace의 타락 카프가 강정과 평택에서 배웠다는 코리아 역사를 설파했다.

1948년 미점령군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외쳤던 제주도민 3만명을 살해한 4.3 만행을 단죄하며 현재도 자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국을 괴뢰라고 질타했다. 우리는 중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전쟁은 답이 될 수 없다고 미국 제국주의를 질타했다. 코리아 평화조약 체결을 촉구했다. 참여자들은 우렁찬 박수로 호응했다.

멀리 인디아나폴리스에서 불원천리 올라 온 박성윤은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인데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민족분단 모순을 파헤치고 통일을 촉구해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발언자들의 외침과 구호가 역 구내로 퍼져나가면서 많은 행인들도 우리 행사에 관심을 보였다. 나눠줄 인쇄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대형 통일기를 바닥에 펼쳐 놓고 참여자들은 몸을 굽혀 각자의 통일 염원을 통일기 위에 적었다. 남과 북 조국에 깃발을 전달할 예정이다.

우리의 외침이 그랜드센트럴 역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러한 열정이 비를 맞더라도 가두행진을 하자는 의견으로 표출 되었다. 차에 두고 온 우비를 가지러 갈 시간도 없어서 여러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최측은 걱정이 되어 행진을 말렸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귀한 통일행사에서 가두시위는 필수라며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ONE KOREA’, ‘우리는 하나다’,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반대’, ‘조국통일’, ‘자주통일’, ‘평화협정 체결’, ‘미국의 대북제재 철폐’ 등의 팻말을 앞세우고 거리 행진이 시작되었다. 가장 가까운 북측 유엔대표부 앞을 지나서 미국 유엔대표부와 남측 유엔대표부 순으로 행진을 어어갔다.

옷은 이미 흠뻑 젖었고 신발까지 젖었다. 중간에서 되돌아 갈 것을 권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동안 준비했던 행사 일정의 반이라도 실행하겠다며 행렬을 선도했다. 우렁차게 외치는 조국통일 함성이 빗속의 맨하탄 거리로 울려퍼졌다.

미국 유엔대표부 앞에서는 우리의 분단을 악용하며 한미일 전쟁훈련을 주도하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질타했다. 남측 유엔대표부 앞에서는 “윤석열 탄핵” 구호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전쟁광 윤석열 퇴진” 함성이 우렁차서 쏟아지는 빗발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미국 동포들의 윤석열 정권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코리안들의 군사훈련 반대와 자주통일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인식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29일 빗속에 진행된 통일기원 행사를 말로 쓰기에 너무 부족하다. 여러 사진과 동영상이 조금이나마 현장을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첨부한다.

초등학생 자녀들과 일가족이 필라델피아와 와싱턴에서 빗속을 뚫고 새벽에 운전해서 올라왔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엘에이에서 통일시위의 생생한 현장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 왔다. 목사님과 스님도 오셔서 비를 함께 맞았다.

이러한 많은 참여자들의 열정이 우리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애국적인 동포들을 보면서 어찌 통일이 인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통일은 민족사적인 명령인 것이다.

이러한 뜨거운 통일 열정들을 귀중하게 모아서 내년 봄에는 1,000명을 목표로 준비를 하겠다. 자주통일을 이룰 때까지 이 행사를 연례 행사로 하라는 제안도 많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실천할 수 있는 행사를 하라는 8천만 민족이 내리는 명령으로 받아드린다.

오늘 행사를 지지하며 함께 손잡아 준 Veterans for, Peace Action, Women Cross DMZ, Korea Peace Now, Peace Treaty Now, 노둣돌, 뉴욕 민화협, 흥사단 뉴욕, 우리학교와 함께하는 동포모임, 동포연합 뉴욕, 양심수 후원회, Stand with Okinawa, Leonia Vigil, World beyond War, International Action Center, 늘푸른 연대, 필라세사모, 통일을 여는 보스톤, 진보련위, 오픈포룸, 통일시대 연구원, 통일의 길 등 여러 참여 단체들과 많은 개인 참여자들에게 큰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