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에게 묻고 답을 얻다 ②

 

별제가 묻는다.

“소나무는 변치 않는 절조, 대나무는 화목, 태양과 학이나 사슴은 양심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장생도는 양심이 만드는 이상향, 태평성대이겠군요.”

겸재가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그냥 좋은 세상일 뿐입니다.”

“예?”

화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라니요? 양심을 가진 군자가 없다면 결코 태평성대는 오지 않습니다.”

“수신을 통해 군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올바른 정치의 바탕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태평성대,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겸재 선생께서는 수단과 목표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문인화(文人畵)는 선비들이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그림입니다.
선비 화가나 화원들이 그리는 수묵화는 양심, 지조와 절개, 풍류, 유유자적 따위를 표현합니다.
수묵화는 인격의 완성과 태평성대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장생도는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라 최종 목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양심은 사람의 우주적 본성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뜻합니다. 이를 사단(四端)이라고 합니다.
양심은 완성형이 아닙니다. 좋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키워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항상 욕망과 충돌하여 흔들립니다.
작은 양심과 큰 양심이 있고, 깊은 양심과 얕은 양심도 있지요.
양심을 제법 키웠더라도 세상 풍파에 무너지고 파탄 나기도 합니다.”

겸재 정선/노송영지도/비단에 담채/1755. 소나무를 마치 목숨 수(壽) 모양으로 그렸다. 겸재는 선비화가로 성리학과 주역에 능통했기에, 수(壽)를 사회적 존재인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철나무인 소나무의 ‘항상 푸름’과 사회적 존재인 사람을 결합하여 양심을 가진 군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영지는 불로초가 아니라 군자의 향기를 뜻한다. [사진 제공 -심규섭]
겸재 정선/노송영지도/비단에 담채/1755. 소나무를 마치 목숨 수(壽) 모양으로 그렸다. 겸재는 선비화가로 성리학과 주역에 능통했기에, 수(壽)를 사회적 존재인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철나무인 소나무의 ‘항상 푸름’과 사회적 존재인 사람을 결합하여 양심을 가진 군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영지는 불로초가 아니라 군자의 향기를 뜻한다. [사진 제공 -심규섭]

“그렇습니다. 그래서 항상 올곧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만약 양심과 태평성대를 십장생도에 함께 표현한다면, 흔들리고 불안한 양심으로 구현하는 세상도 흔들리고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세상을 태평성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향, 무릉도원, 태평성대는 어떠한 변수나 흔들림이 없는 완벽한 세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양심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태평성대도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철학적 존재입니다. 관념과 생각이 현실보다 더 중요합니다.
현실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지요.
이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태평성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곧 성리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임금을 비롯한 조선의 모든 선비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십장생도/심규섭/디지털그림. 십장생도는 생명력이 풍부한 태평성대를 뜻한다. 조선이 민본정치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십장생도를 장생하는 그림이라고 여기는 것은 백성들의 현실적 욕망인 풍요와 건강장수를 반영한 것이다. [사진 제공 -심규섭]
십장생도/심규섭/디지털그림. 십장생도는 생명력이 풍부한 태평성대를 뜻한다. 조선이 민본정치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십장생도를 장생하는 그림이라고 여기는 것은 백성들의 현실적 욕망인 풍요와 건강장수를 반영한 것이다. [사진 제공 -심규섭]

별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네에? 저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니옵니다. 성리학에 문제가 있다니요?
저는 국가의 녹을 받는 화원입니다. 철학과 민본정치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사옵니다.”

젊은 화원이 별제를 보며 말한다.

“별제께서 도화서에 첫발을 들인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화원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정치가 추구하는 완벽한 세상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별제가 자세를 가다듬고 겸재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십장생도에 표현되어 있는 학이나 사슴, 거북, 태양의 상징도 달라지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학과 사슴, 거북은 온 세상의 짐승을 상징합니다. 학은 하늘 짐승, 사슴은 육지 동물, 거북은 바다생물을 대표합니다.
십장생도의 사물은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풍요한 환경을 뜻합니다.
물(바다)은 생명의 핵심 요소이며 구름은 비, 괴석과 수풀, 영지는 비옥한 땅을 의미하지요.”

“풍요한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조건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호수에 파도가 치고, 기이하게 흘러내리는 폭포, 붉은 색은 소나무, 거대한 복숭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상세계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호수에 파도가 친다는 것은 거대한 호수, 신비한 호수를 표현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붉은 소나무는 범상치 않는 느낌을 주고, 거대한 복숭아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릇, 그림이란 현실보다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표현해야 합니다.”

십장생도는 특정한 시공간을 드러내지 않고 통합한다. 사철나무나 애매하게 그린 숲나무를 통해 시간성을 숨긴다. 꽃은 공간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계절을 드러내기에 아예 그리지 않았다. 특별히 복숭아는 계절성이 드러나지만 꽃과 이파리, 열매를 함께 그려 특정 시간을 극복했다. [사진 제공 -심규섭]
십장생도는 특정한 시공간을 드러내지 않고 통합한다. 사철나무나 애매하게 그린 숲나무를 통해 시간성을 숨긴다. 꽃은 공간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계절을 드러내기에 아예 그리지 않았다. 특별히 복숭아는 계절성이 드러나지만 꽃과 이파리, 열매를 함께 그려 특정 시간을 극복했다. [사진 제공 -심규섭]

“별제에게 묻겠습니다. 십장생도에는 어느 계절이 표현되어 있습니까?”

“음, 겨울은 아닌 것 같고... 수풀이 울창하고 복숭아가 열렸으니 초여름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특정한 계절이나 시간에는 감정이 개입되어 호불호가 생깁니다. 십장생도에는 계절이나 시간을 특정할만한 요소는 모두 배제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공간을 통합하고 있지요.
소나무, 대나무와 같은 사철나무가 주를 이루고, 특정 계절에 피는 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물은 계절과 관련이 없고 바위에 있는 수풀도 품종을 알 수 없도록 애매하게 표현하지요.”

“복숭아는 초여름에 열리지 않습니까?”

“복숭아는 신선세계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려야 합니다.
자세히 보면, 꽃과 이파리, 열매를 함께 그렸습니다.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이파리가 생기며 몇 달 후에 열매를 맺는 보통 복숭아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계절이라는 시간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지요.
젊은 화원, 붉은 해는 아침 시간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 네. 계절을 드러내지 않는데 굳이 아침 시간을 뜻하는 붉은 해를 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침 해는 양심을 상징한다고 들었습니다. 겸재 선생께서 십장생도는 흔들리는 양심과 관련이 없다고 하셨으니...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영원성이라고 봅니다.
아침에 해가 뜨지 않는다면 태평성대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평성대는 영원해야 합니다.”

“정답입니다. 이 젊은 화원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별제가 무릎을 치며 말한다.

“드디어 십장생도의 모든 요소가 완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십장생도의 상징을 찾기에 급급했고, 학이나 사슴, 거북의 도교의 내용을 벗겨내려고 했지 태평성대의 본질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뭇 생명이 좋은 환경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태평성대일 것입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보다 구체적이며 생동감이 더해졌습니다.
이런 세상을 한 마디로 뭐라고 해야 합니까?”

겸재가 붓을 들어 글을 써서 보여준다.

‘십장생도-뭇 생명이 생동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완전한 세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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