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도의 연원을 말하다

별제가 화원들을 모두 모아 조회를 한다.

“오늘은 특별히 홍문관 응교 나리를 모시고 십장생도의 연혁에 대해 듣고자 하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학술과 언론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문관직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이었으므로 출세가 보장되었다. 정승, 판서 중에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응교(應敎)는 정4품 관직이다.

“[십장생도]의 연원에 대해 강독을 해 달라는 예조판서 대감과 별제의 특별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문헌을 찾고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더군요. 하지만 이 일도 홍문관의 업무와 무관하지 않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강독 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요지연도(瑤池宴圖)/종이에 채색/각 폭 145x54cm/18~19세기/조선/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제공 - 심규섭]
요지연도(瑤池宴圖)/종이에 채색/각 폭 145x54cm/18~19세기/조선/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제공 - 심규섭]

중국 고대국가인 하나라(BC 21세기?~BC 17세기?), 상(은)나라(BC 1600~BC 1046년), 주나라(BC 1046∼BC 771)가 있다. 목왕은 기원전 1000년 경 주나라 5대 왕으로 55년간 재위했다.
목왕에 대한 평가는 학자에 따라 다르다.
목왕을 정점으로 주나라가 망해갔다는 설과 목왕 때 전성기였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고대국가였던 주나라를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시킨 사람은 공자였다.
공자는 BC 551년 9월 28일에 태어나 BC 479년 3월 4일(향년 71세)에 사망했다.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인물로 유학의 창시자이다.
주나라의 제도와 풍습인 예(禮)와 악(樂)을 정리하여 유학의 기초 경전을 정립하였다.
이후 주나라는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국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주나라와 유학은 아주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다.

“일전에 예조판서 대감께서 임금에게 십장생도가 한동안 그려지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합니다.
하지만 십장생도는 수없이 그려졌고 초본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감께서는 십장생도에 도교적 내용이 많다고 여겨 그리 말한 것 같습니다.”

“봉림대군을 아시오? 나중에 효종대왕이 되신 분이오. 봉림대군은 병자호란이 있은 후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8년 동안 청나라에 있었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사이가 돈독했습니다. 두 분이 귀국할 때, 중국의 여러 보물과 서화를 가져왔지요.
그 중에는 요지연도(瑤池宴圖)와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가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요지연도 부분. 주나라 목왕과 최고 여신 서왕모가 만나 연회를 하는 장면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요지연도 부분. 주나라 목왕과 최고 여신 서왕모가 만나 연회를 하는 장면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저도 많이 보았고, 여러 화원들과 그려본 적도 있습니다.”

“1644년 명나라가 망하면서 조선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오랑캐에게 군자국이 망했다며 자결을 한 선비들 여럿 있었다고 들었고 북벌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습니다.”

응교의 이야기를 듣던 젊은 화원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명나라가 망했다고 자결까지 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이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선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이든 나라든 생겨나면 반드시 망합니다.
명나라는 유학의 중심 국가였지요. 명이라는 국가가 망한 것보다는 철학의 중심이 무너진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선비들은 평생 공부했던 철학적 신념이 부정당했다며 좌절했습니다. 꿈이 사라졌다고 여긴 것이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요지연도 신선부분. 여러 신선들이 3000년마다 열리는 천도복숭아를 얻기 위해 약수라는 물을 건너 곤륜산으로 오는 장면을 그렸다. 이 신선부분은 따로 독립된 갈래로 분화한다. 신선도는 단원 김홍도가 가장 잘 그렸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요지연도 신선부분. 여러 신선들이 3000년마다 열리는 천도복숭아를 얻기 위해 약수라는 물을 건너 곤륜산으로 오는 장면을 그렸다. 이 신선부분은 따로 독립된 갈래로 분화한다. 신선도는 단원 김홍도가 가장 잘 그렸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어차피 명나라가 망한 이상, 선비들은 조선이 군자국의 적통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다시피, 요지연도는 주나라 목왕과 최고 여신인 서왕모가 곤륜산에서 연회를 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전설 속의 여신과 현실의 인간이 만나는 이야기는 황당무계하지요.
핵심은 서왕모가 아니라 주나라입니다.
하상주는 중국의 고대국가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공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전쟁과 살육, 약탈이 끊이지 않는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공자는 이런 난세를 극복할 방도를 찾고 있었는데, 기록과 유물이 비교적 상세히 남아있는 주나라에 주목합니다.
주나라는 백성을 가족처럼 사랑하며 평안하게 하는 민본정치를 펼치고자 했고 좋은 제도를 마련했다고 평가합니다.
이 때문에 공자는 주나라를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군자국이라고 여겼고, 조선의 선비들도 이를 따랐습니다.

왜란과 청나라의 침략, 명나라의 멸망으로 조선의 선비와 백성들은 물심양면으로 피폐했습니다.
황폐해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선비들에게는 유학과 민본정치 대한 자부심을 주고, 백성들에게는 태평성대의 꿈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임금은 도화서에 요지연도를 그리게 하여 궁궐을 장식했습니다.”

도화서 별제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화원들은 요지연도 때문에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수입한 요지연도를 베껴 그리는 일조차 힘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다양한 모습의 신선의 모습을 그리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평소 그리지 않았던 말(馬)까지 묘사했지요.
도화서 화원 전부가 동원되어 1년 동안 요지연도 4좌를 그린 적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모두 지방 관청으로 내려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화원이 묻는다.

“요지연도의 목왕은 선비의 꿈이고, 서왕모는 백성의 꿈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서왕모, 곤륜산, 학과 사슴, 신선, 천도복숭아 따위는 백성들의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원초적 생명력을 발동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모두 도교와 관련되어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끝까지 들어보시오. 효종대왕은 즉위한 지 10년 만에 승하하셨습니다.
뒤를 이어 현종대왕께서 즉위하는데, 즉위식에 사용할 병풍그림에 요지연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홍문관에서 요지연도의 도상 중에 서왕모을 두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미신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두고 홍문관 관리들과 예조 사이에 논쟁이 벌어집니다.
무작정 요지연도를 베껴 그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지연도를 그려야 한다고 논지가 모아집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그때 언급되었겠네요. 몽유도원도는 그야말로 도교적 요소를 제거한 순수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그림이니까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몽유도원도는 왜놈들이 훔쳐가서 실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상이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요.
몽유도원도는 조선의 꿈과 희망을 담은 그림이니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지요.”

“화원들은 몽유도원도와 요지연도를 결합해 여러 초안을 내었습니다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요.
가장 큰 이유는 요지연도에는 서왕모와 무희, 신선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몽유도원도에는 사람이 한 명도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그리면 숭배하는 미신으로 전락할 수 있고, 특정 인물을 절대적 존재로 만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모두 없애버리기로 했습니다. 사람이 없으니 연회 장면 자체도 없어집니다.
이 초안을 본 관리들이 이미 있는 그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요지연도에서 인물을 모두 제거하면 해학반도도가 된다. 큰 호수는 신선, 학과 영지는 신선세계, 복숭아나무는 서왕모, 기암괴석은 곤륜산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붉은 해는 영원성의 상징이다. 요지연도와 해학반도도는 동아시아 유학권 채색화의 원형이나 다름없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요지연도에서 인물을 모두 제거하면 해학반도도가 된다. 큰 호수는 신선, 학과 영지는 신선세계, 복숭아나무는 서왕모, 기암괴석은 곤륜산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붉은 해는 영원성의 상징이다. 요지연도와 해학반도도는 동아시아 유학권 채색화의 원형이나 다름없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젊은 화원이 말을 자르며 외친다.

“요지연도에서 사람과 연회 장면을 모두 빼버리면 해학반도도가 되지 않습니까!”

“젊은 나인인데 만만치 않은 재능을 가졌네요. 그렇습니다. 사람을 빼고 간결하게 그리면 해학반도도가 됩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해학반도도와 거의 같았지요.
중국과는 다른 새로운 도상을 원했던 홍문관 관리와 도화서 화원들은 낙담합니다.
이때, 체아직(遞兒職)이던 노련한 화원이 이렇게 제안합니다.” (*체아직-일종의 비정규직 관직)

“저는 도화서에서 십장생도를 가장 많이 그렸습니다. 십장생도는 수백 년 동안 이 땅에서 그려졌던 그림입니다.
비록 도교 성격이 강하여 큰 관심을 얻지 못했습니다만 도상을 참조해 보는 것이 어떨지요?
허락하신다면 제가 직접 초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체아직 화원에게 초안제작이 맡겨졌습니다.
체아직 화원은 화면을 크게 둘로 나누고 오른쪽에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있는 땅을 그렸습니다.
왼쪽에는 요지연도의 커다란 호수와 복숭아나무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요지연도와 십장생도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학, 사슴, 거북, 영지, 구름을 적절히 배치했습니다.”

“이 초안을 본 사람들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해학반도도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심히 그림을 살피던 홍문관 대제학이 특이한 형상을 발견합니다.”

“오른쪽 육지 부분에 동굴과 왼쪽 호수의 붉은 해는 무슨 뜻으로 그려 넣은 것이냐?”

“몽유도원도에 나오는 동굴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동굴은 현실과 태평성대를 구분하는 경계이자, 무릉도원을 뜻합니다.
호수의 붉은 해는 영원한 양심의 뜻으로 그렸습니다.”

“홍문관 대제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습니다.
중국의 요지연도보다 간결하고 해학반도도보다 풍성하다. 특히, 몽유도원도의 동굴은 민본정치의 통하여 태평성대의 내부 세상으로 들어온 것처럼 표현했고, 성리학의 핵심요소인 양심을 붉은 태양에 대입한 것은 탁월하다. 이로써 도교적 내용을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림이 되었다.
이 초안을 바탕으로 그림을 완성하도록 하시오.”

이번에도 젊은 화원이 끼어든다.

“이렇게 십장생도가 완성된 것입니까?”

“아니오. 하나가 더 남았소.”

“체아직 화원이 대제학에게 묻습니다. 십장생도에는 열 가지 사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물들이 장수와 관련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그림에는 특정 숫자를 상징으로 사용하지도 않는데 십장생도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제학께서 대답합니다.

“장수와 풍요의 갈망을 담은 그림은 모두 장생도라고 부른다. 비록 미신의 성격이 강하지만 백성들은 이런 세상을 태평성대라고 여긴다.
장생도를 십장생도라고 부르는 것은 간절한 욕망이 반드시 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십(十)은 많다는 뜻으로 백(百)이나 천(千)보다는 소박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번 그림을 해학반도도와 구별하여 백장생도나 천장생도라고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 해학반도도. 큰 호수보다 육지를 더 크게 그렸다. 복숭아나무가 화면 중앙에 배치되었다. 태평성대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 작품에 반영되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 해학반도도. 큰 호수보다 육지를 더 크게 그렸다. 복숭아나무가 화면 중앙에 배치되었다. 태평성대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 작품에 반영되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십(十)은 많다는 뜻도 있지만 완성됨을 뜻하기도 한다. 몽유도원도, 요지연도, 해학반도도를 모두 합쳐 그려 완성했으니 십장생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꿈꾸는 태평성대의 주인공은 만백성들이다. 백성들이 십장생도라고 부른다면 우리도 그리 부르는 것이 맞다.”

젊은 화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십장생도의 십(十)은 완성됨과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것이군요.”

“이렇게 십장생도의 도상이 만들어진 이후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도화서]에서는 요지연도나 해학반도도보다 십장생도를 주로 그렸지요. 많은 십장생도가 제작되면서 조금씩 변주되기를 반복하면서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곰곰 생각하던 젊은 화원이 별제에게 묻는다.

“이미 완성되어 창작되고 있는데 임금께서 새로운 십장생도를 제작하라고 하명한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또한 예조판서 대감은 왜 십장생도를 세화로 그리는 것을 주저하는 것입니까?”

별제가 일어서며 대답한다.

“좋은 질문이다.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겸재 선생을 찾아 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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