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우리 민족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이다.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은 북부여에서 말을 키웠다는 신화적 기록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말이 등장하며 가야토기에서도 말 모양의 토기가 있다. 철령에서 고구려시대 지층에서 무쇠로 만든 말 모습이 출토된 바 있다.

말은 고대의 무사에게는 전차(戰車)를 끄는 동력이었으며, 20세기 전반기까지만 노동력이었으니, 1960년대 후반까지도 서울에서 마차가 운용되었다. 말은 소만큼이나 인간에게 유용한 가축이었다.

1. 마을이 세운 리립 박물관

박물관을 나라(國)가 세우면 ‘국립박물관’이고, 시나 도가 세우면 시립이나 ‘도립박물관’이며, 구나 군이 세우면 ‘구립박물관’이나 ‘군립박물관’이 된다. 우리나라에 면이 세운 ‘면립박물관’은 없다.

리(里)의 주민들이 주도하여 세운 ‘리립박물관’(里立博物館),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리립 가시리 조랑말박물관’. [사진 제공 - 이양재]
리(里)의 주민들이 주도하여 세운 ‘리립박물관’(里立博物館),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리립 가시리 조랑말박물관’. [사진 제공 - 이양재]

그러나 리(里)의 주민들이 주도하여 세운 ‘리립박물관’(里立博物館)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리립가시리조랑말박물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확인해 보니 아직 박물관으로 인가가 나지는 않았다. 아마도 박물관 요건에 미달된 것 같다. 건축물이나 서설 규모로는 충분히 인가가 날 만한데, 아마도 학예사가 없거나 유물이 부족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리립가시리조랑말박물관’은 최근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운영이 일시 중지되었다가 최근에는 다시 문을 열었다.

2. 가시리 조랑말박물관

가시리는 조선시대 최고의 말을 키워내던 국영목장인 ‘갑마장(甲馬場)’의 한 중심부에 있다. 제주에 말 박물관이 선다면 당연히 그 최적지가 되어야 할 장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첫 말박물관은 현재 경기도 과천시 서울경마공원(현 렛츠런파크) 내에 1988년 9월 13일에 개관한 ‘한국마사회’의 ‘마사박물관(馬事博物館)’이다.

나는 2006년 가을부터 제주 출신의 김재윤(1965~2021) 의원과 ‘이준열사순국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을 한 바 있다. 당시 나는 김재윤 의원에게 여러 번 “제주에 말 박물관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피력하며, “제주에 경마장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가 그 사업에 투자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2009년 당시의 농림부가 지원하는 ‘신문화공간 조성사업’ 대상지로 가시리가 선정되어 지역의 역사와 경관과 어울리는 조형 시설로 목축박물관을 설립하기로 결정되었고, 2009년 7억 4천만원을 투입하여 연면적 495㎡의 2층 규모로 착공하여 2012년에 ‘조랑말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이다.

3. 가시리 조랑말박물관에 학예관을 지원하자

‘가시리조랑말박물관’이 개관한 이후, 박물관 측에서는 문광부에 박물관 등록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으나 전술한 바와 같이 아직도 박물관으로 인가(認可)가 나 있지는 못하다. 건축물이나 시설 규모에서는 박물관 등록 여건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유물 소장품이 일백 점은 넘어야 한다는 최소 규정 면에서는 박물관 요건에 미달된 것 같고, 역사학이나 박물관학을 전공한 학예사를 고용하지 않은 때문일 수 있다.

2009년 당시의 농림부에서 한 번 지원하여 박물관을 개설한 것은 좋다. 그러나 지금의 농림축산식품부나 제주도에서 후속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은 깊이 자성해야 할 일이다.

제주도의 역사와 자연환경에서 조랑말이나 말이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가시리조랑말박물관’의 운영과 유지의 모든 책임을 지금 가리리 주민들에게 지우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경언해』,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때 이서(李曙, 1580~1637)의 말의 질병에 대한 수위학서(獸醫學書)로 중국에서 전해온 『신편집성마의방(新編集成馬醫方)』과 마사문(馬師文)의 『마경대전(馬經大全)』 등에서 중요한 것을 뽑아 원문(原文; 漢字)에 주음(注音)과 토(吐)를 달고 한글로 언해(諺解)한 책이다. 본문은 목활자본인데, 사진 부분은 목판에 말 그림을 그려 말의 경혈(經穴)을 표시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마경언해』,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때 이서(李曙, 1580~1637)의 말의 질병에 대한 수위학서(獸醫學書)로 중국에서 전해온 『신편집성마의방(新編集成馬醫方)』과 마사문(馬師文)의 『마경대전(馬經大全)』 등에서 중요한 것을 뽑아 원문(原文; 漢字)에 주음(注音)과 토(吐)를 달고 한글로 언해(諺解)한 책이다. 본문은 목활자본인데, 사진 부분은 목판에 말 그림을 그려 말의 경혈(經穴)을 표시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나는 ‘제주민속박물관’이나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학예관 1인을 지원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도 생각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제주문화재단’에서 제주 출신의 퇴직한 역사학자를 명예 관장이나 전문 학예관으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채용해도 좋다. 아니면 제주도 공무원 가운데 역사학을 전공한 공무원을 선정하여 겸직 근무하게 하는 방안도 있다. 꼭 상시 근무할 필요는 없다.

4. 가시리 조랑말박물관의 유물 확보를 위하여

가시리 주민들이 나서서 ‘리립박물관’을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는 당연히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박물관 소장유물이 부족한 것은 박물관 후원회를 만들거나 유물 구입비를 세워서 법적으로 정하는 질량 이상을 충족하면 된다. 제주의 몇몇 개인 수집가들에게 적정한 예우를 해 주고 유상 기증이든 무상 기증이든, 아니면 영구 기탁이든 유물을 확보하는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기증이나 기탁된 자료가 유실되지 않고 영구히 소장되는 것이다. 소장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상 기증이나 영구 기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 모양』, 무쇠, 삼국시대말(고구려?), 출토품. 1980년대 후반에 골동품상 ‘정승당’에서 매입하였다. 필자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말 모양』, 무쇠, 삼국시대말(고구려?), 출토품. 1980년대 후반에 골동품상 ‘정승당’에서 매입하였다. 필자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나는 제주도에 향후 최소한 3년간 ‘조랑말박물관’의 유물구입예산을 연간 최소 1억원 이상 책정하여 주기를 제안한다. 그리하여 ‘리립가시리조랑말박물관’이 우리나라의 가장 작은 행정단위인 리(里)의 최초이고 유일한 ‘리립박물관’의 위상을 갖추어 제주도민들의 자랑스러운 작은 명소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가시리는 갑마장이라는 역사적 명소의 중심부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5. 가시리의 트레이드마크를 위한 미술품을 찾자

과거 10여 년간 국내외 미술시장을 살펴보면 말 그림이 심심치 않게 유통되고 있다. 전통적인 고화(古畫)에서부터 현대화, 공예품이라든가 조각품, 사진 등등 다양하다. ‘리립가시리조랑말박물관’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로 대접받을 수 있는 그러한 수준의 유물이 몇 점은 필요하다. 필자는 “수준급의 국보적 작품이 시중에 매물로 나올 경우, 그러한 작품을 확보하기 위한 특별 예산을 긴급히 세울 필요도 있다”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시리 ‘리립 박물관’을 육성하고자 하는 도정의 의지이다. 제주도는 다른 광역시도와는 달리 도정의 의지와 결단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것은 문화제주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