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제주도의 여섯 권역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제주도」 부분, 김정호, 사진은 1861년 초판본을 1991년에 이우형이 영인한 것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제주도」 부분, 김정호, 사진은 1861년 초판본을 1991년에 이우형이 영인한 것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2006년 6월까지는 제주도(濟州道)의 행정단위가 2개 시 2개 군, 즉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러던 것이 제주시가 북제주군을, 서귀포시가 남제주군을 흡수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제주도의 산북(한라산 북쪽)은 중앙에 제주시가 있고 북제주군이 동과 서로 양분되어 있었고, 산남(한라산 남쪽)은 중앙애 서귀포시가 있고 남제주군이 동과 서로 양분되어 있었다. 북제주군이나 남제주군의 동과 서는 말만 같은 군이지 생활 영역은 분리되어 있었다. 사실상 제주가 여섯 개의 권역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당시든 지금이든 이 여섯 권역이 자연적으로 인위적으로 차이가 있다. 자연적으로는 강우량이나 바람세기 및 조류 등의 기후와 토질 및 생산물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인위적으로는 지역민들의 풍습이나 성품에서도 약간의 다름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제주는 섬 하나이지만, 제주가 갖는 개성과 특성은 하나라 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 제주도(濟州島)는 행정단위가 1목 2현, 즉 제주목(濟州牧), 대정현(大靜縣), 정의현(㫌義縣)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구가 적은 조선시대에 행정을 위한 단위 구분이다. 인구가 70만에 이르는 현재는 자연적으로든 인위적으로든 최소한 여섯 권역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2. 제주도의 문화 편중 현상

『제주고지도(濟州古地圖)』, 조선후기(18C), 1점, 목판본, 92×135cm, 지본(紙本), 국립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제주고지도(濟州古地圖)』, 조선후기(18C), 1점, 목판본, 92×135cm, 지본(紙本), 국립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2006년 6월 이후로 제주도의 행정단위가 2개 시로 개편됨으로써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도시 중심부와 농촌은, 즉 제주의 도농(都農)은 사회‧경제‧문화면에서 편차가 심화되었다. 문화적 편차 하나만 살펴보자. 제주도가 운영하거나 제주도와 관련이 있는 도민을 위한 중요한 문화시설은 인구 밀집의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도심부에 편중되어 있다.

제주시의 구(舊)시가지와 신(新)시가지, 즉 옛 제주 성안(城內) 및 그 언저리(구제주, 제주시 동부)와 제주도청을 포함한 그 서쪽의 신시가지(신제주, 제주시 서부) 등에서도 구제주 시가지에 문화시설의 편중을 보이고 있다. 구제주와 제주시 동부 도심에는 ‘예술공간 이아’, ‘재밋섬’,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문예회관’, ‘제주교육박물관’, ‘제주학생회관’,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문학관’, ‘제주아트센타’ 등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신제주와 제주시 서부 도심에는 ‘제주도립미술관’ 달랑 하나이다. 구제주의 도심 밖 옛 북제주군 동부지역에는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 ‘제주해녀박물관’, ‘제주항일기념관’, ‘제주돌문화공원’‘ ‘제주세계자연유산센타’ 등등이 있으나, 옛 북제주군 서부지역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제주현대미술관’과 ‘김창열미술관’, 여러 화가의 화실 등등이 있다. 반면에 서귀포시는 도심권에 ‘서귀포 예술의 전당’과 ‘기당미술관’,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 거리, ‘소암기념관’, ‘서귀포감귤박물관’ 등등이 있고, 옛 남제주군 서부지역에는 ‘추사기념관’과 ‘제주항공우주박물관’ 등이 있다. 제주시 도심 동쪽의 구좌읍과 서귀포시 도심 동쪽의 성산‧표선‧남원읍에는 공립문화시설이 전혀 없다.

물론 제주도와는 관련이 없이 개인이 운영하는 문화시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콘텐츠는 있어도 운영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제주도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문화시설의 문제점은, 제주 지방적인 것‧예술적인 것‧문화적인 것‧민족적인 것 등등 바람직한 것들도 상당수 있지만, 테마파크나 테마관인 경우에 제주도의 정체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외래의 것(키티, 스누피 등)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더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3. 문화 결핍증과 ‘15분 행복도시’

내가 제주도에서 제8기 오영훈 도정이 추진하는 ‘15분 행복도시’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이유가 있다. 제주도가 지역적 문화시설 편중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제주도의 행정단위가 현재의 2개 시에서 3개 시와 4개 군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3개 시와 4군으로 세분되어 있으면, 각 시‧군에서는 사회‧경제‧문화면에서 독립적인 사업을 추구하게 되고, 현재의 제주시와 서귀포시 도심의 편중 현상은 완화되리라고 본다.

현재의 도심 편중 현상은 계속 도심 편중 현상을 불러왔다. 나는 14년 전 제주로 이사와서 문화결핍증을 느끼고 있다. 이 문화결핍증을 극복하기 위하여, 즉 문화 향유(享有)와 문화활동 참여를 위하여 서울과 타 도시를 자주 오간다. 서울이나 타 도시를 자주 오가기 때문에 나는 공항과 가까운 도심에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제주 15분 행복도시의 3개 시 4개 군(안)은 아래와 같다. 2022년 7월 현재 제주도의 총인구수는 699,303명이고, 제주시 인구수 507,737명이며, 서귀포시 인구수 191,566명이다.

내가 생각하는 3개 시는 ①‘제주시’(구제주)와 ②‘신제주시’ ③‘서귀포시’인데 구체적으로는, ①‘제주시’: 약 225,000명 (건입, 아라, 오라, 일도1, 일도2, 이도1, 이도2, 삼도1, 삼도2, 용담1, 용담2, 화북), ②‘신제주시’: 약 132,200명 (연동, 노형, 외도, 이호, 도두), ③‘서귀포시’: 약 89,500명 (송산, 정방, 중앙, 천지, 효돈, 영천, 동흥, 서흥, 대륜, 대천)이다.

4개 군은 구체적으로는, ④옛 ‘북제주군의 동쪽지역’: 약 74,100명 (삼양, 봉개, 조천, 구좌), ⑤옛 북제주군의 ‘서쪽지역’: 약 74,500명 (한림, 애월, 한경, 추자), ⑥옛 ‘남제주군의 동쪽지역’: 약 50,600명 (우도, 성산, 표선, 남원), ⑦옛 남제주군의 ‘서쪽지역’: 약 53,100명 (중문, 예래, 안덕, 대정)이다.

현재 제주도의 두 개 시가 15분 행복도시 5~7개로 개편된다면, 나는 기꺼이 문화시설이 없는 군 지역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신설하는 군에서는 당연히 문화시설의 신설 및 확대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지자체와 밀접하게 공동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제주시나 서귀포시는 동서(東西)로 길다. 현재의 두 개의 행정시의 상황에서는 동쪽끝과 서쪽끝이 문화 향유라는 면에서는 결핍 및 괴리되어 있어도, 시 전체로 보아서는 현재 정도의 문화시설로 만족해하기 때문이다.

4. ‘문화 제주’로의 확장을 위하여

제주도민을 위한 15분 행복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각 시군에 독자적인 경제 활동권 및 문화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옛 전통적인 문화권으로 볼 때 대체로 6개의 문화권으로 보인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 6개의 문화권이 제사 풍습에서도 차이가 나고, 사람들의 성품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물론 기후나 토질도 다르다.

인구수보다는 제주 내에서 문화의 흐름이 같은 곳을 묶는 것이 좋다. 각 권역이 특색있게 번영하도록 하는 것은 제주도와 시군이 협의하여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적어도 6개 이상, 많으면 7개 시‧군으로 세분하는 것이 좋다. 일단 분할 할 수 있을 때 미래를 위하여 최대한의 지자체 숫자로 나누는 것이 좋다. 인구가 5만이 되지 않는 군(郡)도 많이 있다.

만약 나의 의견대로 제주도가 최대 3개 시 4개 군으로 개편되고, 그 시‧군의 중심부에 버스터미널이 자리잡고 각 시‧군 광역을 거의 직선에 가깝도록 연결한다면, 그리고 각 시‧군 내에서는 마을버스가 각 방향으로 구석구석을 연결한다면, 지금의 버스 노선은 실질적으로 개편하는 효과를 볼 수 있고, 도민들의 대중교통은 편리해질 것이며, 이러한 개편이 제주도의 강점이 될 것이다.

14년 전 내가 제주로 이주할 때 육지에서 수집가 5~6명 이상이 공동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단지를 만들어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제주도의 한 지역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지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미래의 제주를 위해서는 제주문화의 보존과 보급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제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제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은 많다. 문제는 그 방안을 귀담아 듣고 합리적으로 시행할 어공과 늘공의 의욕적 실천이다.

5. 2% 부족이 아니라 50% 부족한 사업

나는 10여 년 전부터 서울 인사동이나 청담동에 제주의 미술가들을 위한 전용전시공간이 필요함을 제주의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역설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5년 전인 2017년 10월 7일 자로 인터넷 ‘제주투데이’에 ‘[제주담론] 변방 미술에서 동북아 미술, 세계 미술로’를 기고하면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전략) 도민들이 나서든, 도 정부가 나서든 서울의 인사동이나 청담동 등등 미술거리 권역에 제주 미술가들 전용(專用)의 전시장을 개설하여야 한다. 전라북도에서는 ‘전북도립미술관’의 서울전시장을 인사동 ‘가나아트센타’ 6층에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전북작가들의 초대전을 개최한다. 제주도 미술계에서도 제주출신작가들 전용의 서울전시장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제주도 미술계가 전라북도 보다 작가수가 적어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재경제주도민들의 사랑방으로서의 휴식 공간(Tea Room)이자 미술 공간(Art Space)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한다면, 개관 2년 차부터는 채산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후략)”

나의 이러한 주장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확산하였고, 제주도는 드디어 2022년 3월 16일 오후 4시 인사동의 가나아트센타 지하 1층에 ‘제주갤러리’를 개관하였다. 물론 도에서는 그 장소를 개관하면서 내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인사동에 그런 장소를 만들자는 나의 제안을 제주대학교 양 모 교수가 2008년경에 어느 재경 제주도 출향인을 인사동에서 만나 말하였더니 “이 동네가 얼마나 부동산 임대료가 높은지 아세요?”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런 반응을 보인 당사자는 초대하면서 내게는 ‘제주갤러리’의 개관 기미도 안 보인 것이다.

내가 주장하였던 제주출신 작가들 전용의 서울전시장은 ‘제주갤러리’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나는 “재경제주도민들의 사랑방으로서의 휴식 공간(Tea Room)이자 미술 공간(Art Space)으로서 역할”을 하는 공간을 원한 것이다. 즉 내가 기획한 것은 적당한 건물의 한 층이나 반 층(半層)을 임대하여 조용한 차담(茶啖)과 전시 및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자전(自轉)시키자는 의도였다.

원래 인사동의 임대전시관은 차담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사동 초입의 하나로빌딩이나 대화빌딩은 종교재단의 소유이므로 임대가가 저렴하다, 이러한 곳의 지상 2층이나 3층에 먼저 사랑방을 오픈하고 사업자등록을 하면, 전시를 겸하는 문화공간으로 쓸 수 있다. 그럴 경우 방문객의 찻값으로 최소한의 자전적(自轉的) 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제주갤러리’는 실행 단계에서 나의 제안을 흉내만 낸 것이니, 개관을 내게는 알려 줄 필요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차담이 가능한 전시공간으로 기획한 이유는 대담 및 약속 장소로 만들어 도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가면 2% 부족한 사업이 아니라 50% 부족한 (자급자족이 더딘) 사업이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제주작가들을 위한 작품 전시공간이 서울에 생겼다는 것만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조만간에 내가 생각하는 제주 화단(畫壇) 진흥책을 다시금 제시하며 지금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풀어내야겠다. 이런 사업은 문화제주를 위하여 누구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전문가들, 즉 아마추어들은 전문가를 흉내 낼 수는 있으나, 전문가의 확장적 사업에는 따라 올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사업은 처음 주장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여 수행하였으면 한다.

6. ‘15분 행복도시’로의 행정개편은

제주에서 15분 행복도시로의 행정개편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시장이나 군수를 직선제로 선출한다면 그것은 제주 선량(選良)들의 정치의식 및 행정 역량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쟁점은 “시‧군 의회까지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다. 나는 도민들의 정치의식과 행정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시‧군의회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도의 인구가 70만 남짓하므로 시‧군 의회는 만들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시‧군 의회가 없을 경우 도 의회에 각 시‧군의 감사까지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다. 과다 업무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

분명한 사실은 제주도의 15분 행복도시로의 행정개편은 도민들의 정치적 위상과 발언이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바로 이 점에서 각 정당의 이해득실이 갈라진다. 대체로 보수 및 수구정당에서는 15분 행복도시에 대해 냉소적 분위기를 띄우려 애쓰고 있다. 반면에 민주 및 진보정당에서는 15분 행복도시에 대해 긍정적 판단을 하고 있다.

원래 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도 보수파이지만, 15분 행복도시는 제주도의 미래를 변혁시킬 원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 제8기 제주도정의 행정개편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제주 발전을 목표로 한 행정개편은 정파의 이해득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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