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실 이리 금치산자로 10년 세월을 지낼 줄은 전혀 예상못했다. 2010년 전격 발표된 5.24조치로 내 사업은 완전히 끝나버렸다. 여기에 더해 내 경우는 2011년 일본 쓰나미 재해로 50대는 그야말로 잿빛 인생 그 자체였다. '황금의 50대'라는 수식어는 발에 채는 길거리의 자갈만도 못했다. 2011년 일본 쓰나미가 천재지변이었다면, 5.24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른 '남북경협의 제초제'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1995년 시화물산을 창업해 금강약돌과 북측 수석을 처음으로 반입해 판매했다. 이후 활조개 반입으로 업종을 확대해 한때 재미도 봤지만 2010년 5.24조치로 한 순간에 길거리에 나 앉은 황창환 목민어소시에이션 대표 이야기이다.

11명의 남북경협인들이 청춘을 묻은 대북 경협 도전과 좌절의 연대기를 모아 『남북경협기업들의 도전과 좌절』을 펴냈다.

△위탁가공교역기업 △금강산투자기업 △경제협력사업 기업 △일반교역 기업으로 나누어 각 장을 구성했다.

정태원 지피 대표, 곽인건 케이엔케이소울 대표(위탁가공교역), 최요식 채널라인 대표, 임희석 천호에프엔비 대표, 손창용 금강교육개발원 대표(금강산 투자), 김기창 백두산들쭉술 대표(경협), 양민호 한반도광물자원연구센터 이사장, 김세병 상하씨엠 대표, 이종근 드림이스트 대표, 황창환 목민어소시에이션 대표, 정한우 나래필름 대표(일반교역) 등 11명이 겪은 남북경협 그 뜨거운 현장의 박동이 오롯이 담겨있다.

책을 펴낸 사단법인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는 위탁가공교역은 가공임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반출입하는 원부자재, 설비, 가공물품의 교역을, 금강산투자는 금강산관광지구 내 경제협력사업 승인업체로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해 반출입하는 물품교역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사업은 경제협력사업 승인업체가 경제협력과 관련해 반출입하는 교역을, 일반교역은 위탁가공교역과 경제협력을 제외한 상업적 반출입 교역으로 정의했다.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남북경협기업들의 도전과 좌절』, 2022.10. [사진-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남북경협기업들의 도전과 좌절』, 2022.10. [사진-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박스속에 처박혀 있던 빛바랜 사진들도 오랜만에 꺼내보고 한창때 주고 받았던 계약서도 다시 들춰보았다.가슴 뜨거운 열정과 아련하고도 생생한 추억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절망의 나날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도저히 앞날을 알 수 없었고 채권자들의 독촉에 나 자신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두번이나 시도했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이니었던 건지, 두번 다 살아남았다. 스스로 모진 목숨이라고 생각했다...지나온 15년이 아련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난 지금 공황장애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가끔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병이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괴로운 상황을 피하려고 나 자산이 만들어낸 병인지, 잃어버린 <광개토>의 꿈을 되찾는다면 완치될 수 있는 병인지, 누구도 대답해 줄 수가 없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온정각 동관에서 '광개토'라는 식당을 운영했던 임희석 (주)천호 에프앤비 대표는 절망을 말하는 순간에도 "예기치 않게 닥친 돌발사태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만나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뇌의 시간과 고통속에서도 인내하며 보통의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첫 남북 접촉의 과정에서 어쨌든 그들은 분단 현실을 온몸으로 절감했고 어느새 분단 극복의 염원도 가슴속에 새겨졌다.

북측에서 볏짚과 짚신을 반입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2000년 3월 중국 단둥의 민경련사무실을 찾아간 김세병 상하씨엠 대표는 그때의 소회를 이렇게 썼다.

"저 멀리 신의주가 시야로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압록강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막상 눈앞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니 '저 강만 건녀면 북한 땅이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들었다. 민족의 분단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압록강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아났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민경련 대표부 사무실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그들과 대면했을 때 조금은 낯설고 어색했지만 곧 편안해졌다. 아마 통역 필요없이 그냥 말이 통했기 때문이리라."

1992년 어느 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는 신문기사를 우연히 접하면서 사업영역을 북으로 넓히려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김기창 백두산들쭉술 사장은 1997년 통일부의 방북허가를 받아 난생 처음 가본 평양 순안국제공항의 트랩을 내려오는 순간을 "내 인생의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으로 기억했다.

건채류와 농임산물 반입사업을 필두로 예술품 반입과 백두산들쭉술 투자, 개성공단 입주로 이어진 파란만장 일대기를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놓았다.

1994년 대북교역을 시작해 합작(백두산들쭉술), 합영(개성상점 면세점), 개성공단 입주까지 남북경협의 4개 형태 사업을 전개한 김 사장의 다양한 경험은 다른 곳에선 들어보기 어려운 귀한 이야기다.

대북사업 28년을 겪은 그로서는 숱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남북경협 중단 결정을 내린 우리 정부의 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죽녘에 투자한 기업인들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컸기 때문이다.

1989년 LG상사 북한팀장으로 북측과의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2008년부터 드림이스트라는 대북교역 전문회사를 차려 직접 일선에 뛰어든 이종근 대표는 초기 남북경협의 형태부터 변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해지는 여러 유형의 사업경험을 풀어서 설명하고, 의류전문업체 출신의 정태원 지피 대표는 의류 봉제사업에 특화된 사업경험을 세밀하게 소개했다.

이종근 대표는 "언젠가, 우리 한반도에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고 통일, 통합의 열풍이 불어 올 때가 오리라 믿는다. 그때 후발주자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했다.

도전과 좌절을 모두 겪은 이들의 가슴 한켠에는 한평생 잊지 못할 감동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지금은 절망이더라도 마음 속 그 기억이 있는 한 희망은 싹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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