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화법]은 겸재 정선에 의해 창안된 진경산수화의 조형원리이다.
진경산수화의 정수로 평가하는 [금강전도]는 금강산의 실제 사생을 바탕으로 암산과 토산을 태극 형태로 배치하고 부감법을 이용해 금강산 전체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실제를 바탕으로 했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관념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현실과 관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 낸다.
[진경화법]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보이지 않는 사물과 철학적 본질을 드러내는 조형방법이다.
이러한 진경화법의 전통은 김홍도, 신윤복으로 이어졌다.

진경화법은 결코 쉽지 않다.
사물을 왜곡하고 여기저기의 요소를 결합하며 없는 것을 드러내어도 감상자는 괴기하게 느끼지 않아야 한다.
서양의 피카소가 사물의 여러 시점을 결합하여 그린 입체파 그림이 괴상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신윤복은 진경산수화에 정통한 화원이었기에 [미인도]에도 진경화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미인도]는 가체를 줄이고, 두정골(頭頂骨)을 의도적으로 눌렀으며, 서있는 상체와 비스듬히 앉아 있는 하체를 결합해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실제 모습보다 더 한 현실감을 준다.

신윤복/미인도/비단에 채색/114.0x45.5cm/19세기 초/보물 제1973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미인도는 개인의 감정과 당대 철학이 융합한 명작이다. 이 작품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욕망을 억제한 끝 지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신윤복/미인도/비단에 채색/114.0x45.5cm/19세기 초/보물 제1973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미인도는 개인의 감정과 당대 철학이 융합한 명작이다. 이 작품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욕망을 억제한 끝 지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는 초상화인가, 아니면 풍속화인가?”

“내가 보기에는 초상화도 아니고 풍속화도 아닐세. 반대로 초상화이면서 동시에 풍속화이기도 하네.”

“왜 이렇게 애매하게 그린건가?”

“혜원은 그 둘의 구분이 의미 없다고 여긴 것 같네.
마치 율곡 선생이 현실에서는 이(理)와 기(氣)가 한 몸으로 드러난다고 여긴 것처럼 말일세.
지극한 외형은 지극한 내면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일세.“

신윤복이 [미인도]에 진경화법을 적용한 것은 젊은 여성, 기생이라는 현실적 존재를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 흠모했던 여인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배타적인 감정이 투영되기 마련이고,
소유욕에 따른 왜곡현상을 일으킨다.
신윤복의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개인의 감정에 묶어두면 그저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다가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그저 소유욕이 아닌 삶의 힘, 삶의 역동성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나는 도화를 사랑하지만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도화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풍류가 뭔지도 알았다.
나의 사랑이 집착과 소유욕이 아니라는 것을 그림을 통해 표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편적 조형원리라는 형식 안에서 그려져야 한다.”

이러한 [진경화법]의 요소는 작품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미인도]는 성적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림이다.
외세에 항거하는 자세도 아니고 한 연인을 향해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표정도 아니다.
여성의 성적매력은 눈빛, 입술, 얼굴, 가슴, 아랫배, 엉덩이, 다리에서 나온다.
춘화를 그렸던 신윤복이라면 가슴이나 엉덩이, 다리를 적절히 노출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미인도]에는 기생이 옷고름을 푸는 동작을 취하고 있지만 옷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풍성한 치마를 통해 큰 엉덩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다리는 발끝을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그친다.
아름답고 자극적이지만 추잡한 상상력은 허용하지 않는 기품이 있다.
욕망을 표현했지만 동시에 욕망의 억제라는, 감정과 이성 간의 팽팽한 긴장이 느껴진다.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림에 들어갈 화제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

盤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풀어헤친 화가의 가슴속에 봄기운이 가득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가슴 속 만 가지 춘심을 펼쳐내노라.
붓 끝으로 대상의 정신까지 그려보았노라.”

이 글을 편안하게 해석하면 이렇다.

“너를 보는 내 마음은 욕정을 넘어 삶의 의욕으로 가득하다.
너의 모습을 통해 능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에서 해석한 내용이다. 기생의 시선이 혜원이라는 글자에 고정된다.앞 글자를 의도적으로 길게 늘이고 공간을 남긴 것을 혜원의 의도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간송미술관에서 해석한 내용이다. 기생의 시선이 혜원이라는 글자에 고정된다.앞 글자를 의도적으로 길게 늘이고 공간을 남긴 것을 혜원의 의도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좌측에 유려한 붓질로 글을 써내려가다 마지막 글자를 두고 멈추었다.
바로 옆의 도화의 눈빛을 보자 욕망이 불끈 솟아났다.
다시 먹물을 머금은 붓끝이 떨려 한참 머뭇거렸다.
신(神)자를 쓰다가 마지막 획을 아래로 길게 내렸다.
도화의 시선이 닿는 그곳에 ‘혜원’이라는 호를 썼다.

이제 도화를 보내야 하고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또다시 흔들렸다.

“너도 어디선가 세상 풍파를 견디며 살아가겠지.
사람으로 세상에 나와서 그리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알게 되겠지.
복사꽃이 피면 너를 본 것처럼 할 것이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데로, 기쁘면 기쁜 데로 살 것이다.
이렇게 내가 널 보듯이, 너도 날 보았으면 한다.” (끝)

 

[참고]

[사진 제공 - 심규섭]
[사진 제공 - 심규섭]

신윤복의 그림은 이후 미인도의 표본이 되었다.
하지만 진경화법이나 철학을 담아내지 못해 어설프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미인도는 그저 화보가 되어 남정네의 눈요깃감으로 전락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사진 제공 - 심규섭]

채홍신의 그림으로 추정하는 팔도 기생도이다.
지극히 일본의 관점이 투영된 기생관광용 그림이다.
기품은 없고 욕망만 남았다. 이런 작품을 통해 신윤복의 [미인도]가 왜 명작인지를 알 수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