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러면서 터득한 나만의 방안이 있다. 또한 많은 책을 보고 국내외 여기저기를 40년이 넘도록 나다녔기에 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과 판단력이 있다. 내가 터득한 방안과 내가 판단한 사물을 보는 관점을 얼마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다음 세대가 시행착오 없이 발전할 것이다. 나를 초월할 세대를 위하여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1.
청소년 시절의 나는 국민서관에서 나온 이희승(李熙昇, 1896~1989)편 『국어대사전』을 심심할 때는 꺼내서 뒤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 결과 뒤쪽의 어느 한 장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그 책을 산 인사동에 있던 서점 ‘문장사’에 교환을 요구하였는데, 결국 교환 받지는 못했다. 나는 이 『국어대사전』의 표지가 떨어질 때까지 보았고,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기억력은 예전과 같지 못하다. 그러나 판단력은 예전을 능가한다. 젊은 날에는 다섯 시간을 대화해도 그 대화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기억해 내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이 안 된다. 그래서 젊은 날과는 달리 침묵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제 나는 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나만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인적 네트워크가 아직 가동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 나는 장수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목표로 잡았던 생존 연도가 이미 한참 넘어섰다. 이제 더 주어지는 삶의 날들은 애서운동가로서 우리 시대의 애환을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다. 지금 나는 1980년대 초에 읽은 박목월(朴木月, 1916~1978) 시인이 쓴 『문장의 기술』이란 책의 한 문장이 떠 올린다. “한 마리의 고독한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글을 쓴다.”
2.
회상하건대, 25년 전 만 해도 고문헌이나 고서는 박물관의 수집 대상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박물관에는 도자기나 회화, 철물 등등의 문화재가 주요 수집 대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고문헌이나 고서로까지 확대되었고, 이제는 고문헌이나 고서는 여러 박물관의 주요 수집 대상이 되어 있다. 전문 박물관일수록 더하다. 그러나 학예관들이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생각 같아서는 내 수집품을 필요로 하는 각 박물관에 거저 주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집품은 나의 삶이고 내 가족이 희생하며 이룩한 그 실체이기 때문이다. 내 두 딸이 그 가치를 알고 다음 세대로 제대로 넘길 수 있다면, 아직 가야 할 길은 먼데 내 영혼에 낙조는 드리우고, 나는 헌 신을 벗지 못하고 끈을 고쳐 맨다.
애서운동가로서 나의 수집품은 몇 분야로 치중되어 있다. ①‘독립운동가 자료’와 ②‘민족사학 자료’, ③‘기독교 자료’, ④‘여러 성씨의 초간보’ 및 ⑤옛 ‘선인들의 유묵’, 그리고 ⑥‘약간의 미술품’이다. 내 인생의 족쇄였던 중요 자료의 아카이브와 해제(解題)는 남겨야겠다.
오늘따라 20년 전에 타계하신 사운 이종학 선생이 생각난다. 10월쯤 독도박물관에 가야겠다.
3.
내가 잘 아는 문화재 수집가로 이미 고인이 된 세 분을 언급한다. 일산(一山) 김두종(金斗鍾, 1896~1988)은 서양의(西洋醫)였지만, 최대의 우리 의서(醫書) 수집가이다.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 1917~2002) 선생은 독도와 이순신, 일제의 조선강점 등등 자료의 전문 수집가이다. 허동화(1926~2018) 선생은 우리나라 옛 자수품(刺繡品)의 최고 최선의 수집가이다.
김두종 선생의 수집품은 ‘국립중앙도서관 일산문고’과 ‘한독의약박물관’에 나뉘어 있고, 이종학 선생의 수집품은 ‘독도박물관’과 ‘순천향대학교’, ‘수원광교박물관’에 나뉘어 있다. 이 두 분은 개인 박물관을 세울 수 있는 능력 없이 자료만 수집하였다. 그런데 허동화 선생의 수집품은 자신이 설립한 ‘한국자수박물관’에 있다.
대개의 사설 박물관은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지금도 박물관을 꿈꾸며 자료 수집에 매진하는 여러 사람‥‥‥, 내가 잘 아는 김상석(62세)씨 처럼 ‘국립한글박물관’(2014년 개관)에 5년이나 앞서서 ‘우리한글박물관’을 설립(2009년 개관, 충주)한 경우도 있고, 나처럼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문제는 “설립한 이후의 운영이 원활하냐?”는 것이며, 특히 “설립자가 타계한 이후 박물관이 남아 있을 것이냐?”라는 것이다.
사설 박물관을 추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는 돈이나 많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개의 지자체에서는 지원하여 육성할 생각은 안하고 처음부터 기증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문화 후진국이 OECD에 달리 있는가?
이제라도 문화재 관련 당국과 지자체들은 이들 수준급의 사설 박물관 설립과 운영을 행정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문화 KOREA’로 가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