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구좌읍 하도리의 난도리여(문주란섬) 인근의 굴동포구’에서 열강(熱講)을 하는 제주포구와 갯밭 전문가 고광민 연구자. [사진 제공 - 이양재]
‘구좌읍 하도리의 난도리여(문주란섬) 인근의 굴동포구’에서 열강(熱講)을 하는 제주포구와 갯밭 전문가 고광민 연구자. [사진 제공 - 이양재]

7월 3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사)제주문화역사나들이’에서 주최한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와 함께 하는 제주 포구 및 갯밭 기행2」에 참여하여 제주시 동쪽의 포구를 여러 곳을 보았다. ‘기행2’에서 그의 전문적인 강의를 들으며 확인한 것은 고광민(高光敏, 70) 연구자는 제주포구와 갯밭을 꿰뚫고 있는 전문학자였다. 진작 그를 알았어야 했는데‥‥‥,

내가 ‘기행2’에 참여한 것은 제주의 옛 선창(船廠) 사적지를 찾기 위한 기본 지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번 10회 연재는 「제주의 옛 선창 사적지를 찾아라」로 정하였고, 이미 초고(草稿)도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잡아 놓은 상태였다. ‘기행2’에 참여한 후에 그 초고의 제목부터 “제주에 ‘탐라국해상왕국박물관’을 만들자”로 수정하게 되었다.

1.

‘조천읍 신흥리의 북쪽 바닷가 밭담 유적’인데, 이 유적은 제주에 남아 있는 최선(最善)의 밭담 유적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조천읍 신흥리의 북쪽 바닷가 밭담 유적’인데, 이 유적은 제주에 남아 있는 최선(最善)의 밭담 유적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조천읍 신흥리의 북쪽 바닷가 밭담 유적’인데, 이 유적은 제주에 남아 있는 최선(最善)의 밭담 유적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조천읍 신흥리의 북쪽 바닷가 밭담 유적’인데, 이 유적은 제주에 남아 있는 최선(最善)의 밭담 유적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해상왕국 탐라(耽羅)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고대 탐라인은 필연적으로 배를 만들었을 것이다. 고기를 잡기 위한 원시적인 ‘테우’에서부터, 신라와 백제 및 대륙까지 왕복할 수 있는 화물용 목선(木船)도 만들었을 것이다.

고대의 탐라가 해상왕국이라는 명제에서 육하원칙에 맞게 살펴보면, 누가(who-제주원주민),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화물용 선박을), 왜(why-무역선으로 쓰기 위하여), 어떻게(how-목재를 사용하여) 만들었는가에서, 언제와 어디서 만이 남게 된다.

즉 제주에서 고대의 선박 조선소(造船所), 즉 선창(船廠)을 찾는 문제는 해양왕국 탐라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언제부터 어디에 선창을 두었는가? 각 시대마다 복수(複數)의 선창이 있었을 것이다.

2.

내가 생각하기에는 제주역사의 시기구분은 한국사의 시기구분과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탐라국은 삼국시대에는 별개의 국가였고, 이후 고려말까지는 고려에 속하기는 했지만 고려의 완전 지배를 받는 국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제주역사에 있어서 시기구분은 제주역사에 적절히도록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제주 태생이 아닌 내가 제주역사의 시기구분 한다는 것은 매우 적절치가 않다. 만약 제주인이 제주역사에 맞도록 시기구분을 한다면, 나의 시기구분은 의미를 잃을 것이니, 나는 제주인의 시기구분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나는 임시로 탐라국 시기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이후 삼성인(三姓人)에 의하여 탐라국이 성립하고 성주제(星主制)가 폐지되는 1402년까지의 시기로 본다. 삼성인(三姓人)을 단군보다 4년이나 앞선 기원전 2337년의 인물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탐라국은 대체로 철기시대가 시작하는 기원전 3세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추정이다.

3.

어쨌든 해상왕국 탐라국이 활발한 활동을 한 시기는,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기원후 15세기 초까지의 1,700여 년간이다. 이 가운데 가장 전성기는 백제에 예속된 498년 이전부터, 즉 5세기 이전부터, 1105년 탐라군으로 개칭되기까지의 약 800년 정도가 아니었겠는가 여겨진다.

탐라국의 선창은 한라산이나 인근의 숲으로부터 목재의 이동이 쉬운, 그리고도 조류가 세지 않은, 목선을 만들어 바다에 띄우기가 쉬운 원만한 포구에 있었을 것이다. 탐라국 초기의 선창은 고인돌 유적지에서 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국가가 만든 해양 관련 박물관으로 부산 영도에 ‘국립해양박물관’이 있고, 경북 울진에는 ‘국립해양과학관’이 있다.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는 ‘목포해양유물전시관’이 있고, 인천에도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

나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의 역사를 제조명하려면 탐라국의 선창 유적지를 찾아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고려나 조선시대의 선창 유적지라도 찾아내서 ‘탐라국해상왕국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제주도가 미래의 위상을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일에는 제주포구와 갯밭 전문가인 고광민 연구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한다.

4.

‘구좌읍 하도리의 난도리여(문주란섬) 인근 바다’에 세계 유일의 놀라운 어획(漁獲) 유적이 있다. 이곳을 수십 차 왕래하면서도 꿈에도 몰랐는데‥‥‥, 전문가의 연구가 빛을 발한다. [사진 제공 - 이양재]
‘구좌읍 하도리의 난도리여(문주란섬) 인근 바다’에 세계 유일의 놀라운 어획(漁獲) 유적이 있다. 이곳을 수십 차 왕래하면서도 꿈에도 몰랐는데‥‥‥, 전문가의 연구가 빛을 발한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이번에 ‘(사)제주문화역사나들이’에서 주최한 ‘기행2’에서, 내가 가장 인상이 남도록 배운 것은 ①‘조천읍 신흥리의 북쪽 바닷가 밭담 유적’과 ②‘구좌읍 하도리의 난도리여(문주란섬) 인근 바다’의 놀라운 어획(漁獲) 유적이다. 이 두 유적은 서둘러 제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 보호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고광민 연구자는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에 ‘감동포에는 병선을 감출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감동’은 ‘구좌읍 하도리의 난도리여(문주란섬)가 보이는 굴동포구 안쪽 해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창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주도에 선창은 각 시대별로 복수로 있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찾을 수 있다면 찾아야 한다.

그것이 해상왕국 탐라의 실체 및 정체를 규명하는 일이자, 제주에 요트(Yacht) 건조(建造) 산업과 해양 레저를 진흥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창을 찾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서기에, 새로 시작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오영훈 도정(道政)과 도의회에 이 사업을 제안한다. ‘탐라국해상왕국박물관’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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