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다음에 뒤늦게나마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50년이 된 7.4남북공동성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헤겔은 그의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 날개를 편다’라는 경구를 남겼나 봅니다.

7.4성명은 남과 북이 최초로 합의한 문서입니다. 1972년에 합의했으니 당시로서는 남북 분단 27년 만에 성사된 것입니다. 7.4성명이 있었기에 이후 남북 합의가 가능했습니다. 7.4성명 이후 남북 사이에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어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 10.4선언을 거쳐 2017년 들어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등의 합의가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합의에서 첫째가 되는 7.4성명의 위력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50년이 지난 지금 7.4성명의 의미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서문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6.15선언을 이끈 그해 ‘박지원-송호경’ 사이의 4.8합의문 서두에 각각 명시된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고’라는 구절에서 확인됩니다.

이처럼 남북기본합의서와 6.15선언의 기본은 7.4성명에서 비롯됐는데, 특히 7.4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 즉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남북기본합의서나 6.15선언 모두가 7.4성명에 적시된 조국통일 3대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북측에서는 7.4성명에서도 특히 조국통일 3대원칙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김일성 주석이 3대원칙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국통일 3대원칙은 모든 남북 합의의 뿌리, 즉 모태와도 같은 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최초이자 또 완벽한 것 같은 7.4성명에도 그 합의 과정과 해석에서 몇 가지 엉뚱한 면이 있기도 합니다.

먼저, 3대원칙의 순서 문제입니다. 그해 5월 3일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접견한 김일성 수상이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통일문제 해결의 기초로 될 수 있는 근본원칙을 옳게 세워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는 반드시 외세의 간섭이 없이 자주적으로,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 원칙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 수상이 ‘어떻소’ 하고 묻자 이 부장이 ‘순서를 좀 바꾸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순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인 ‘민족대단결’과 ‘평화적 방법’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즉 ‘자주, 민족대단결, 평화(통일)’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순서로 말입니다.

당시 북측은 이 부장의 변경 제의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제의를 먼저 하면 상대편에서 당연히 수정제의가 있을 터인데, 내용 수정이 아닌 순서만 변경하자는 것이니 말입니다. 북측으로서는 남측이 난감해하는 ‘자주’를 빼달라거나 아니면 ‘자주’ 대신 ‘민주’나 ‘자유’로 바꾸자는 게 아니라 순서만 바꾸자고 했으니 안 들어 줄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남측의 체면도 살려줘야 하니까요.

다음으로, 7.4성명 발표 후 남측의 태도 변화입니다. 7.4성명의 내용, 특히 3대원칙이 북측의 의도대로 됐다고 판단했음인지 남측이 금세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남측은 7.4성명 후 공공연히 앞으로는 ‘대화 없는 대결시대’로부터 ‘대화 있는 대결시대’로 상황이 변했을 뿐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또 하나는, 조국통일 3대원칙의 정확한 내용(용어)입니다. 북측은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 하는데 남측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고 규정합니다. ‘평화’와 ‘평화통일’로 차이가 있습니다.

7.4성명이 합의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고, 나아가 발표 후 남측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됐으며 또 ‘평화’와 ‘평화통일’이라는 용어 차이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7.4성명은 그 안에 남북이 합의한 조국통일 3대원칙이 들어 있기에 또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기에, 그 생명력과 활력은 지속될 것입니다. 7.4성명이라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라도 날개를 펼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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