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통일문화’를 생각한다

나는 제8회 연재 “‘한국문학관’ 사업을 확장하여야 한다”에서 “진정한 ‘국립민족문학관’으로의 확장”을 언급하며 “아직 남북의 문학이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거리감과 현실적 제한이 있으나. 미래지향적인 문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는 언젠가는 통일문학의 범주 내에서 상호 공존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국립한국문학관’에서 일단은 북측의 사회주의 및 주체문학도 수집의 대상으로 확대하기를 권고”하였다. 이러한 사업이 “향후 20년을 목표로 확대를 진행할 경우 ‘국립한국문학관’은 남북을 통틀어 진정한 ‘국립민족문학관’으로 위상을 갖게 될 것”으로 주장하였다.

나의 이러한 주장은 “당장 북측 문학작품을 함께 전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확장성을 가지고 북측 문학작품도 사상과 이념을 넘어서 차츰 수집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 영화 무용 등등에도 적용된다.

2. ‘통일문화’의 이론적 근거를 생각한다

‘황영준 탄생 100주년 - 봄은 온다’ 서울전시회 개막식이 2019년 12월 26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렸다. 이양재 총감독이 대표작 [백두산 천지](199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황영준 탄생 100주년 - 봄은 온다’ 서울전시회 개막식이 2019년 12월 26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렸다. 이양재 총감독이 대표작 [백두산 천지](199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나는 2019년 12월에 첫 전시를 연 「황영준전 – 봄은 온다」전의 도록에 기고한 “- 조선화가 화봉 황영준을 중심으로 본 – 조선미술60년의 궤적”의 서언에서 아래와 같이 ‘통일문화’의 이론적 근거를 논한 바 있다.

“종군미술, 전쟁미술, 전후미술, 분단미술, 통일미술. 이 용어들이 뜻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종군미술이란 전쟁의 현장에서 창작한 미술품을 의미하고, 전쟁미술이란 전쟁을 소재로 하여 그린 것이다. 종군미술은 전쟁미술에 포함된다. 그리고 전후미술은 전후시기를 소재로 하여, 분단미술은 분단의 결과를 소재로 한다. 그러나 통일미술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통일적 지향적 의미와 의지를 담은 것이다. 종군미술이나 전쟁미술 전후미술 분단미술은 시대적인 부분 형상이나 이들 표현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통일의 시대에는 통일미술의 한 부분이라 할 수도 있다. 분단을 소재로 한다는 것은 통일을 지향한다는 광역적 의미가 내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미술의 미래는 명백하다. 지난 수천 년간의 우리 역사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는 그 시대를 벗어난 현대에서는, 모두 우리 민족문화의 본류로 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식민지사학자의 한 후예는 고구려어와 신라어 백제어가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는 마치 조선어와 한국어가 이질화되어 다르다는 정치적 목적의 반통일적 주장과 같은 것이다. 현대 육지어와 소통이 어려운 제주어는 방언이라 하면서 북의 언어가 이질화되어 소통이 어렵다는 식으로, 마치 북의 언어가 남의 언어가 아닌 듯이 말하였던 과거의 일부 식민지학파 학자들의 논리는 뭐라고 해야 할지.

일부 사학자들은 지난 역사속에 후기신라와 발해가 있던 시대를 남북국시대로 정의한다. 분명 지금은 현대의 남북국시대이다. 현대에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하고자 하는 현실 속에서 냉철히 바라볼 때 이남과 이북은 공동운명체로서 서로 적대적이든 호혜적이든, 결과적으로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남과 이북이 과거 분단의 역사 속에 함께 공생하였듯이, 통일이란 것은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공조의 대상이다. 적대적인 대립이 아니라 공존(共存) 공생(共生) 공영(共榮)으로 나가는 길이, 곧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인 통일의 길이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선 통일의 시대에는 남과 북의 미술은 모두 통일시대의 미술로 정의될 것이고, 종군‧전쟁‧전후‧분단의 미술은 어느 때 인가는 통일미술의 한 부분으로 포함하는 정의가 내려질 것이다. 분단은 기념되어 질 수가 없고, 기념되어 져서도 안 된다. 예술에서 그려지는 분단의 상대적 이면에는 분단의 비판적 의식이 내재 되어있다. 분단을 비판하거나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시대의 민족적 민중적 민주적 문화 운동은 통일로 가는 실사구시의 시대에 여러 제한이나 한계가 있더라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위의 글은 원래 통일문학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2019년 12월 17일에 써서 이듬해 1월 15일에 나의 페북에 게재한 글(갈무리 사진 참조)을 통일미술의 관점에서 다시금 쓴 글이니 만치, 통일미술을 통일문학으로 바꾸어 읽어도 그 의미에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통일미술이나 통일문학은, 곧 통일문화의 한 분야인 것이다.

3. 남측미술과 북측미술의 연결점을 생각한다

나는 2005년 재단법인 송암문화재단에서 주최하였던 광복 60주년 기념 『북한유화전』 도록에 「조선(북한)미술의 시기 구분과 그 정치적 특성」을 기고하면서 그 서언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중략)‥‥‥. 북한은 분명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것보다는 같은 것을 더 쉽게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존재이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정세로 볼 때 남한의 우리가 싫든 좋든 이북은 우리의 공동운명체로서 서로 화해하고 교류하며 통일의 역사를 함께 만들고, 험난한 외세의 파도를 함께 헤치며 나가야 할 존재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시점에서 이남에서 이북의 미술을 모으고 정리하며 연구한다는 것은 문화를 통하여 통일시대를 열어나가는 하나의 시도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의 남과 북의 미술인들이 남긴 많은 미술작품들을 살펴보면, 서로 다르기도 하고 서로 같기도 하다. 다르기도 하다는 것은 서로 달리 발전해 왔음을 의미하며, 서로 같기도 하다는 것은 서로 같은 민족적 감성과 역사인식을 가지고 작품을 그려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과 북의 미술이 서로 다른 면은 다른 대로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서로 같은 면은 서로의 공통분모로서 발전시켜 나갈 때, 우리 남과 북의 미술계는 통일의 민족미술사를‥‥‥, 더 나아가 민족사를 이미 써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남북 간 관계 개선의 가장 적기였던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 발목이 잡혀 힘겹게 미국을 질질 끌고 앞으로 나가다가, 결국에는 미국 네오콘의 거대한 덩치(體軀)를 견인하지 못하고 쓰러진 형국이다. 앞으로 지난 5년과 같은 이러한 적기가 반드시 다시 오리라는 신념으로 통일미술과 통일문학 등등의 통일문화를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확산하여야, 그 적기가 올 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작품은 대체적으로 직설적이므로 상호 소통에 정치 이념적 문제점이 초기부터 발생할 수 있지만, 미술은 한 화면에 그려내는 단면 현상이 주가 되므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정치 이념적 문제를 피해 나갈 수 있다.

4. 통일미술의 다양성을 생각한다

현존하는 그대로의 남북미술, 그 다른 점을 서로가 배척하기보다는, 서로가 받아들일 때 현대의 통일미술은 다양하게 확산한다. 즉 통일미술은 다양성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나는 지난 30여 년간 중국과 일본 등 해외의 여러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미술품 경매장을 빈번하게 가 보았다. 남측은 몇 가지 한정된 분야, 한정된 작가에 미술시장이 갇혀 있는데, 세계의 미술시장은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 세계의 미술시장은 남측처럼 몇 가지 한정된 분야, 한정된 작가에 갇혀 있지 않다. 세계의 미술시장은 남이든 북이든 그 미술과 미술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남측이 북측 미술과 미술품을 받아들여 우리 것 화(化)할 때, 우리 민족의 미술은 다양해지고 미술시장은 세계로 확장될 것으로 본다. 남측 미술계와 미술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술품의 다양성과 미술시장의 확장성에 겁을 먹는 것이다. 남측 미술시장의 큰 손 화상과 큰 손 수집가가 특히 미술품의 다양성과 미술시장의 확장성에 겁을 먹는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보장될 수 없으므로 애써 다양성과 확장성의 문을 닫으려 하는 것이다.

내게 국가든 지자체이든 독지가든 전폭적 지원만 주어진다면, 나는 우리나라 미술과 미술품의 세계시장 진출을 시도하여 왜곡된 국내의 미술시장을 5년 내로 바꾸어 낼 수 있다. 나는 나의 이익이나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추진할 수 있기에 그 길이 보인다.

5. 추기(追記)

지난 20년 사이에 통일운동(統一運動)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통일운동이란 단어를 거부한다. 극우나 극좌의 통일운동도 거부한다. 나는 통일은 한 때의 운동이 아니라, 민족지향적인 생활이고 삶이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통일은 한 무리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하여야 할 과정으로 본다.

나는 이러한 과정에 문화예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통일문화는 문화를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의 문화를 합쳐 다양화하는 과정이 통일문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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